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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성조 Apr 23. 2023

구독자 1명의 SNS

그것은 바로 일기 쓰기

  sns는 왜 이렇게 매번 어려울까? 싸이월드도 도토리를 몇 번 사다 흥미를 잃었고,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모두 마찬가지다. 호기롭게 아이디도 만들고, 밀려오는 게시물들에  좋아요도 하트도 눌러보지만, 정작 핸드폰 용량이 부족해질 때 즈음에 가장 먼저 작별을 고하는 애플리케이션. 딱 그 정도 에너지 밖에 투자하지 못했다.


 뭐 그렇다고 퍼거슨 감독의 말처럼 "sns는 인생의 낭비"라며 온 동네방네 배짱 좋게 말하고 다닌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가볍게 일상만 올리면 되는 것을. 나 혼자 쓰는 비밀 일기장을 매번 전교에 공개하는 것처럼 여겼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치 신포도를 보는 여우처럼 sns에 비정상적으로 몰두하는 사람들의 뉴스 기사나 고민 해결 프로그램 같은 걸 보게 될 때면 괜히 안타까워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웃었다.


 그러나, 나는 sns를 자유롭게 즐기는 이들 보다도 더 자신을 꾸며내고 싶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sns 따위에 일상을 올리지 않아도, 인생을 너무나 잘 살고 있는, 자존감 높은 인간!'이 고픈 마음인거지.


sns를 하지 않아도 이상하게 공감이 되는

 

 어쩌다 보니 혼자 끄적이던 글을 사람들이 보는 플랫폼에 처음 올리기 시작하면서 몇 년 전에 한참 유행했던 sns별 특징을 알려주는 밈에 이제야 공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 인스타그램이 인생의 외적 하이라이트를 잘 편집해 모아둔 플랫폼이라면, 내가 써온 글들은 인생의 내적 하이라이트를 조각조각 뜯어내 모아둔 플랫폼이다.


  긍정적이면서도, 솔직하게. 유머 있지만, 가식은 없어 보이게! 조금 어려운 난항이 펼쳐지더라도 결국은 웃으며 끝나는 시트콤의 에피소드들처럼, 보이고 싶었다. 


  이상하게 브런치에서 만큼은 잘 정리된 마음만 보이고 싶었다. 어질러지고 엉망진창인 방구석을 아무에게나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화가 나고, 슬프고, 힘들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최대한 숨기고 싶었다. 어쩌다 쭈글거리는 모습을 슬쩍 드러내더라도,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는 요상한 욕망이 꿈틀댔다.


 그러니깐, 독자가 있는 글에서 필연적으로 완벽하게 솔직할 수가 없었다. 하기사 부득부득 이를 갈며 블로그 비공개 일기장에 (브런치에는 결코 올리지 못할) 글을 뚜들댈 때도, 다음날 출근길에 적나라한 어휘 상태에 지레 놀라 자빠지며 글을 수정하곤 했으니-


 무작정 입 밖을 도망쳐 튀어나와 나를 당황시키는 말에 비하면, 글 이란건 도무지가 솔직하기 참 어려운 매체이다.  




  그런데 또 은밀하게 잘 정리된 마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엿보는 것은 또 그렇게 즐겁다.


 일기 검사는 학교에서 칼퇴를 반납하고도 인상을 구기지 않으며(?) 일하는 거의 유일한 업무다. 일일이 코멘트를 다느라 욱신거리는 팔과 다섯 손가락만 대가로, 도대체 뭐가 들어앉았는지 알 수가 없는 사춘기 학생들의 머릿속을 늦게까지 해석한다.


 질풍노도 사춘기 13살 아이들이 담임에게 검사받는 일기에 자기 마음을 얼마나 써보이겠냐만은, 그걸 감안해도 일기는 무진장 재밌다. 독자가 있는 글에는 완벽한 솔직이 없는 대신, 전하고픈 마음이 있다. 단 1명이라도 읽는 사람이 생기는 순간, 글은 변할 수밖에 없다. 혼자 일기장에 마음을 토해내듯 휘갈기던 글과는 엄연히 달라진다.


 겉으로는 별거 없는 일상이 대충 몇 줄 있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마음이 보인다.


선생님, 요즘 나는 잘한 게 있어요.
선생님, 요즘 나는 좀 까칠해요.
선생님, 요즘 나는 이렇게 잘 지내요.
선생님, 요즘 나는 이런 게 힘들어요.
선생님,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해요.


 아이들이 아무리 괴로움에 몸부림쳐도 일기 쓰기 숙제는 계속된다! 글쓰기 능력 향상도 좋고, 글씨체 교정도 좋고 다 좋다. 하지만 사실, 일기 읽는 재미가 그중 제일이다.

 

 '검사받는' 일기의 독자는 꼴랑 담임 1명이다. 학생들이 적어내는 일기는 결국, 아이들이 담임인 내게 보여주고픈 자신이고, 들려주고픈 자신이다. 오로지 한 명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업로드되는 SNS! 그러니 단 1명의 구독자이자 팔로워이자 이웃인 나는, 고마운 마음에 이번주도 일기장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혼자 낄낄대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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