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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so May 30. 2022

stray.ed <와일드>

길을 잃을 때면 또 찾아올게요.

영화의 거의 모든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기록용에 가깝습니다.



와일드


원제

Wild : From Lost to Found

on the Pacific Crest Trail.


미국의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가

PCT를 도보 여행한 경험을 쓴 책이 원작이다



PCT는 남미에서 북미를 가로질러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약 4300km의 악명 높은 코스다.




**

셰릴의 여정은 책과 음악이 함께였다.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신발이 작아 발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셰릴.

발톱을 뽑기 위해 신발을 벗어뒀는데 그만

절벽으로 신발 한 짝이 굴러 떨어진다.

절망에 빠진 셰릴은 나머지 한 짝도 집어던지며 소리를 지른다.


뻑 유 !!!


고함과 함께 과거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나오며 영화가 시작된다.




주인공 셰릴을 모텔 앞에 내려주는 한 여자.

책을 쓴 작가, 진짜 셰릴이다.


자신의 경험을 재현해 줄 주인공 셰릴과

그 여정에 동참할 우리에게 행운을 빌어준다.


"굿 럭"


**

나는 이런 깜찍한 특별 출연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




Day 1. 내가 미쳤지


다음 날 아침, 셰릴은 트레킹 출발지로 가기 위해 차를 얻어 탄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다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들어봐.

흔히 듣던 얘기지?

넌 아침마다 일어나 학교에 가고

밤이면 구석에 앉아 시간만 보내.

장난감 없는 아이처럼 외로운 인생이지

그때 기적처럼 남자가 나타난 거야

기쁨이란 이름의 남자

다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셰릴은.. 돌아갈 곳이 없다.


 

노래를 들으며 추억에 젖는 셰릴




그녀는 트레킹 코스 각 지점마다 설치된 방명록에 짧은 글귀를 남긴다.


몸이 그댈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


그녀의 첫 다짐



**

작가 이름 뒤에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를 매번 붙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의 말로 대신하기도 하니까



얼마나 걸었을까.

셰릴은 봇물 터지듯 모든 말을 세 번씩 반복한다.


미치겠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터벅터벅)

언제든 그만둬도 돼. 언제든. 그만둬도 돼. 언제든 그만둬도 돼.


결국 자릴 잡고 앉는다.




오늘은 엄마를 생각했어.

몸이 녹초야.

무슨 생각에 자신했던 걸까.

내가 포기해도 화내지 말아 줘.



일기를 쓰곤 책을 집어든다.

에이드리언 리치 <공통 언어를 향한 꿈>

학교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녀(에이드리언 리치)는 유명한 여인으로 죽었다.

자신의 상처를 부인하면서.

상처도 능력의 원천에서 비롯됐음을 부인하면서.




Day 5. 염병할


연료를 잘못 챙겨 

  며칠을 차가운 죽만 먹는다.


"차가운 죽은 맛있다

견과를 넣은 차가운 죽

참치포를 넣은 차가운 죽

차가운  . 차가운  

 차가운 죽이 좋아"


 (~mile 30)


"하이킹     하죠, 셰릴?

진짜 변기에 앉는 걸 좋아해요.

물 내리는 것도.

요리도 좋아하고

사람들과 같이 먹는 것도 좋아해요.

사람 자체를 좋아해요.

사람들과 얘기를 주고받는 것도 좋아해요.

이런 취미들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염병할 사막에 오기 전까진."




Day 8. 프랭크 아저씨와의 만남.

그리고 커플 타투


식량이 다 떨어져 가던 중

(험상궂게 생긴) 프랭크 아저씨를 만난다.



나쁜 사람일까 경계를 했지만



와이프가 있었고, 집에서도 다행히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날 밤, 샤워를 하며 자신의 왼쪽 어깨에 있는 문신을 바라보며 회상에 빠진다.



폴 : 둘 다 말을 좋아해서요.

셰릴 : 우리 오늘 이혼해요. 서로를 이어주는 뭔가를 남겨야 할 것 같아서요.

타투이스트 : 그런 뜻으로 하는 거라면 그냥 같이 살죠? 그게 더 싼데.

폴 : 그래도 후회는 안 할걸요. 평생 같이 사는 부부가 더 힘들지.


셰릴 : 제가 바람피웠어요.

폴 : 셰릴.. 좀..

타투이스트 : 그럴 수도 있죠. 미안한 것 같네요.

셰릴 : 미안해요.

타투이스트 : 미안하다는데 용서해줘요.

폴 :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셰릴 : 수도 없이 피웠어요




셰릴은 이혼을 하며 자신의 새로운 성을

'스트레이드'로 정한다.


stray.ed to wander from the proper path, to be lost, to be without a mother and father, to become wild


제 위치를 벗어나다, 길을 잃은, 길을 잃은 동물


그런 셰릴


**

그리고 나



폴 : 아찔할 정도로 멋진 7년이었어.

굿바이. 셰릴 스트레이드




Day 9. 프랭크 아저씨 안녕




프랭크 : 실은 남편 없는 거 아뇨?

셰릴 : 없어요. 아니, 있긴 했는데.

아저씨가 무서워서 둘러댄 거예요.

프랭크 : 알고 있었소. 좀 험상궂게 생겼어야지.


프랭크 : 그만둘 생각 해봤소?

셰릴 : 2분에 한 번씩 해요. 온몸이 다 쑤셔요.

관둬야 할까요?

프랭크 : 그게 낫지.

셰릴 : (웃음)


프랭크 : 내 말 듣지 마소. 난 수도 없이 때려쳤소. 직장, 결혼, 하이킹도 첫날 때려치우고.

셰릴 : 후회하시는 거 있으세요?

프랭크 : 별 수 없었소. 못 하겠는 걸 어째.

평생 나한텐 다른 길이라고 없다고 생각했소.

셰릴 : 제 인생도 그랬어요.

프랭크 : 몸조심하쇼. 반가웠수.

셰릴 : 고마워요 아저씨.




내 모습 그대로 받아 줄래요?
조니 미첼,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




Day 10.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소댕(솥뚜껑) 보고 놀란다



아주 잘하고 있어.

하루에 8~11km

 속도면 20년쯤 걸리겠네.


**

이 영화의 재미 중 하나는 그녀의 자조 섞인 독백



걷다가 아주  뱀을 마주치기도 한다.



난 배고프지 않다.

난 음식이 그립지 않다.

타코와 칩스와 과카몰리가 그립지 않다.

미니애폴리스의 눈은 당연히 안 그립고

마가리타도 그립지 않다.



한 모금만 주면 뱀도 잡겠는데….


?


뱀?


소리를 지르며 텐트를 뛰쳐나오는 셰릴.



 마이 . 이상한 큰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다.



불어볼까 말까 하던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호루라기를 힘차게 부른다.


삐--


삐--- 폴과의 다툼





Day 12. 그렉과의 만남.

그리고 아름다운 길을 선택하는 셰릴


(~ mile 80)



셰릴 : 하루에 얼마나 걸으세요?

그렉 : 평균 22마일 (35km) 걷고 있어요.

셰릴 : 전 11~12마일(17~19km) 간신히 걸어요.

그렉 :  주는 힘들어요. 아무리 준비하고 와도 통증과 더위는  이기거든요.

그렉 : 시기도 잘못 골랐어요. 시에라는 우회할 거죠?

셰릴 : 뭔들 못 건너뛰겠어요. 근데 거긴 왜요?

그렉 : 눈에 뒤덮였어요. 수십 년 만의 폭설이라 아무도 못 지나가요. 케네디 메도우스에서 같이 계획 짤까요? 거기서 며칠 쉴 생각인데.

셰릴 : 네, 고마워요. 그게 좋겠네요


'폭설'을 연결고리로

폭설이 내리던 과거로 다시 이동한다.



셰릴 : 나 임신했나 봐

에이미 : 뭐? 애 아빤 누군데?

셰릴 : 몰라.. 라기 보단 짚이긴 해

에이미 : 짚이긴 해? 지금 장난해? 왜 이러고 살아?



에이미 : 임신 테스트기랑 삽 사러 가자.



에이미 : 내 앞에서 하고 임신으로 나오면 짚이는 놈한테 가자.


듣는 둥 마는 둥, 책을 훑어보고 있는 셰릴


운명처럼 눈에 들어왔다



임테기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임신이다.



어린 셰릴도 불안하고 위급해 보인다.


**

 영화에서 내가 제일 좋았던 

생각의 흐름을 표현한 방법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혹은 더 과거로, 다시 현재로

이리저리 혼란스럽게 넘나든다.

뒤죽박죽이야 말로 진짜 우리의 기억 회로지 않은가

비슷한 소리/상황/자세/표정/날씨/등등으로,

때론 너무 뜬금없이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로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오가지 않던가.




**

삽으로 임신 시킨 남자 때리러 가는 줄 알았는데

눈을 치우기 위함이었다.



셰릴 : 갈 필요 없어, 안 낳을 거야.

어쩌다 이런 쓰레기가 됐나 몰라.

난 강하고.. 책임감 있고 꿈도 있었어.

좋은 애였잖아. 알지?

결혼생활 망치더니 인생까지 망치고.


나 그 상점으로 돌아가야겠어.


상점으로 돌아와 내려뒀던 책을 산다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던 딸로 돌아갈 거야.

아름다움의 길로 들어설 거야.



에이미 :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셰릴 : 아름다움은 개뿔. 또 바위길이네.





Day 14 ~
케네디 메도우스 그리고 엄마

(특히 좋았던 장면은 빨강으로 표시)



노랫말.

사랑할 준비가 돼 있다면. 나보다 강한 사람은 없어.


환영합니다. 케네디 메도우스


그렉 : 해냈네요!

셰릴 : 해냈어요!

그렉  : 소개하죠. 이쪽은 셰릴, 그리고 몬스터!



셰릴 : 몬스터? 내 배낭이요? 죽겠네.



폴의 편지

sweat her. 벌써 모하비 사막을 160km나 뚫고 왔구나. (...) 자기가 출발하자마자 쓰는 거라 자기는 아직 이룬 게 없어. 나도 그렇고! 그러니까 우린 여전히 친구야. 미니애폴리스가 괜히 쓸쓸해.




쉼터에서 만난 멋쟁이 에드 아저씨는 짐을 조금 줄이라고 권한다.


에드 : 필요 없는 걸 골라줄 테니 필요한 이유를 대던가. 나눔 박스에 넣도록 해요. 알았죠?



에드 : (데오드란트) 이거 도움돼요?

셰릴 : 써 봐야 온몸이 악취예요. 겨드랑이 문제가 아녜요.

에드 : (망원경) 이건 자주 써요?

셰릴 : 한 번도 안 썼어요.

에드 : (톱 만지작)

셰릴 : 톱은 뭐하러 챙겼나 모르겠어요.



에드 : (PCT 책) 읽은 부분 태웠어요?

셰릴 : 책을 태우라고요?

에드 : 책 좀 태운다고 나치가 되진 않아요. 지금은 짐 무게를 줄여야 하니까. 케네디 메도우스 이전 부분은.. (주왁)



셰릴 : 어어, 그건 안 돼요. 태울 거 아니에요.

에드 : 알아서 해요.


**

그치. 절대  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미련할 정도로 군다.

가방이 무거워도 놓고   없다.

남은 여행의 친구를 잃을 수 없다.



에드 : (콘돔) 이거 다 필요해요?

셰릴 : 어디에 쓰겠다고 12개씩 챙겼는지..

누군가 : 에드!

에드 : 잠깐 실례



하나 뜯어 챙긴다.




엄마 : 제임스 미치너가 왜?

셰릴 : 책이 다 허접해.

엄마 : 뭘 읽었는데..

셰릴 : 하나도  봤어. 에이드리언 리치나 읽지.

엄마도 같이 읽잖아. 다른   느껴?

엄마 : 글쎄다. 그래도 그녀가 좋은 걸 어쩌니.


딸 : 엄마한테 어색할 거야.

엄마 : 뭐가?

딸 : 내가 엄마 젊을 때보다 훨씬 교양 있잖아

엄마 : 그래, 그게 내 계획이었어.

 : 무슨 계획?

엄마 : 널 엄마보다 교양 있게 키우고 싶었거든.

그게 이렇게 가끔씩 아플 줄은 몰랐네.



딸 : 못되게 굴어도 왜 다 참아?

엄마 : 그 드레스 입으니까 정말 예쁘다. 하나 더 만들어 줄게.


**

에이드리언 리치와 제임스 미치너의 책을 한 번 읽어보고 난 뒤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와 책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선생님의 말, 엄마와의 관계, 셰릴의 심정을 깊이 파악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렉 : 눈 쌓인 건 어쩔 거예요?

셰릴 : 가능하면 밀어붙이려고요.

그렉 : 여기서 65km 정도 더 갔던 사람들도 눈 때문에 결국 막혔대요. 버스로 리노에서 트럭키까지 이동하고 다시 트레일로 복귀할 거라던데..

셰릴 : 버스나 타려고 온 게 아니에요.

그렉 : 산에서 추락하려고 온 것도 아니잖아요.

셰릴 : 하긴.


그렉 : 반칙처럼 느껴지면 여행 구간을 늘여요.

후드 산으로 가거나 신들의 다리까지

셰릴 : 신들의 다리? 이름 맘에 드네요.


그렉 : 뭘 선택하든 자책하진 말아요.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거니까.




그날 밤

엄마가 좋아하던 제임스 미치너의 책을 펼쳐 본다.

the novel _ James A. Michener



엄마 : 말은 탈 수 있을까요?



의사 : 척추의 종양들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가벼운 충격에도 무너질 겁니다.



셰릴 : 얼마나 남았죠?



X레이 사진의 불빛이 탁 꺼진다.



**

엄마가 죽는 구나.




DAY 25. 이상하고 무례한 기자, 지미 카터와의 만남



안녕하세요. 난 셰릴이에요.

일행도 없는 여성 하이커.

강간하고 죽이기 쉽게 차에 타 드릴까요?



지미 카터 : 자리가 없어서 태워주진 못해요.

셰릴 : 무슨 소리예요?

지미 카터 : 짐이 많아서요.



지미 카터 : ‘부랑자 타임즈' 기자라 부랑자는 지겹게 봤는데, 아가씨 부랑자라니 진짜 신선하네요.

셰릴 : 오해하셨나 본데 부랑자 아니에요. 부랑자 타임즈란 게 진짜 있어요?

지미 카터 : 있으니까 집세 내고 차 굴리죠. 방랑 생활은 얼마나 했어요?



셰릴 : 방랑이 아니라 PCT 하이킹 중이에요. 폭설 때문에 우회하는 중이에요.

지미 카터 : 부랑자 아니면 집은 어디예요?

셰릴 : 애매한 상황인데 완주하면 포틀랜드에서 살까 하고요.

지미 카터 : 이거 진짜 특종이네. 아가씨 부랑자는 귀해요.



셰릴 : 다시 말하지만 부랑자 아니에요. 여자들은 그러기 쉽지 않겠죠. 애들도 돌봐야지. 부모도 돌봐야지.

지미 카터 : 페미니스트 같으시네.

셰릴 : 맞아요.



지미 카터 :  신선하네. 페미니스타라니. 부랑자가 아니면 직업은 있겠네요?

셰릴 : 한두 개가 아니에요. 몇 년 전까지 학생이었어요.



지미 카터 : 기분 나쁘게 듣지 않으셨음 좋겠는데, 대부분은 개인적인 상처로 자신의 삶에서 튕겨 나와서 부랑자가 되는데 그런 경우예요?


셰릴 : 이게  삶이에요. 잠깐 쉬는 . 부랑자의 삶이 아니에요.   알아들어요?


지미 카터 : 사진 찍어도 되죠?

셰릴 :  돼요


(찰칵)

자기 할 말만 하는 재수없는 지미 카터.



지미 카터 : 가을호에 실릴 거예요. 다른 잡지에도 나가고 하퍼스에도 실릴 걸요. 뉴욕 잡지예요. 패션 잡지죠.

셰릴 : 나도 뭔지 알아요. 거기 투고하고 싶지 ‘이달의 노숙자'로 실리긴 싫다구요.



지미 카터 : (봉지 건넴)

셰릴 : 뭐예요?

지미 카터 : 부랑자 꾸러미. 고마웠어요.





같은 날. 스티비 레이 그리고 엄마의 진심



결국 그녀는 차를 얻어탄다.


셰릴 : 개 이름이 뭐예요?

스파이더 : 스티비 레이. 그 양반 죽던 날 데려왔지. 기타리스트 있잖아.



셰릴 : 저도 스티비 레이 좋아해요.



스파이더 : 사랑에 빠졌네 틀어. 아가씨 타자마자 듣고 싶던데.

운전석 아줌마 : 입 다물어, 스파이더. 그냥 무시해요. 발정 난 영감이니까.



조수석 아저씨 : 더럽게 힘들겠네. 길이 대책 없던데

셰릴 : 지금은 차 타고 편히 가잖아요. 힘든 것도 아니죠.



셰릴 : 저 귀여운 애는 몇 살이에요?

운전석 아줌마 : 8살이었어요

셰릴 : 죄송해요..

운전석 아줌마 : 5년 전에 자전거 타다 트럭에 치었죠.

조수석 아저씨 : 강한 놈이었지.  엄마 닮아서.

셰릴 : 안타깝네요..

운전석 아줌마 : I know you are, sweetheart.




엄마 : 내 자신으로 살아보질 못했어.

셰릴 :  그러지 . 끝난  아니야. 좋은 의사 찾아서 싸워 이겨야지.

엄마 : 평생을 엄마 아니면 아내로 살았어. 내 인생인데 내 맘대로 한번 못하고. 시간이 엄청나게 많은 줄 알았어. 그런데 이렇게..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니까.. 나 주책이네




Day  30. 눈 (snow. eyes)




셰릴 : Where am I !!!!

스키어 : California !!

셰릴 : Fucking hilarious. 재밌어 죽겠네

스키어 : Are you lost?

셰릴 : No.. Just screwed.


아뇨, 대책 없어 그렇지..




엄마 : 안녕. 우리 아가씨



엄마 : 이 애가 날 살렸어. 내가 네 아빠 떠난 후에.



셰릴 : 알아



엄마 : 엄마한테 약속하라고 다그치진 않을게. 힘들 걸 아니까. 이 아이 늙으면 편하게 해 줘.



말의 눈동자에 비치는 셰릴과 동생 레이프.




Day  32. 엄마는 내 모든 것의 중심이었어


돌아와
돌아와
돌아와!!


돌아와, 엄마.




셰릴 : 레이프 데리고 아침에 올게. 사랑해.. 엄마는 내 모든 것의 중심이야.

엄마 : 사랑..

셰릴 : 사랑.


병원 복도

간호사 : 좀 어떠세요?

셰릴 : 의사가 1년은 살 거랬는데 한 달만에 저래요. 겨우 한 달!

간호사 : 유감이에요.. 기도해 드릴게요.



셰릴 : 망할 성 패트릭. 성자들 전부 지옥에나 가버려



주여, 감사합니다. 길을 보여주셔서.



신경 써주는 척은..


신은 무자비한 개자식이야.



셰릴 : 너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녀? 엄마가 죽어가.

레이프 : 그런 말 마

셰릴 : 너도 알잖아.



레이프 : 엄마 안 죽어

셰릴 : 죽어가고 있다니까

레이프 : 그만해! 엄만 안 죽어.



셰릴 : 엄마가 그러더라.

창문에 얼굴 대면.. 슈페리어 호가 조금 보여. 전망 좋은 방이야. 전망 좋은 방이 평생 꿈이었어

어떻게 엄마는 끝까지 그러네



레이프 : 지난 몇 년간 엄마한테 함부로 대했어.

근데.. 엄마는 내 전부였어.



레이프 : 뭐해?

셰릴 : 기도

레이프 : ㅋㅋ

셰릴 : 조용.  우주에게 기도합니다. 신이 있기를. 기적이 필요하거든요.  필요해요. 퍽킹 미라클. 우리 엄만 45살에 죽으면  돼요.

레이프 : (손 모으며 기도)




Day fucking 36. 엄마



노랫말.

뜨겁게 갈망하니?

우울해 본 적 있니?

돌아갈 생각이니?

세상이  어떻게 대하던?


과거, 레이프와 함께 엄마의 병원으로 가던 차안

셰릴 : 빨리 엄마 보고 싶다. 아들 왔다고 좋아할 거야.



셰릴 : 진짜 좋아할 ..


엄마가 얼마큼 사랑하게?

이만큼?

아니!

이만큼?

아니!

이만큼?

아니!

이만큼?

아니!

이만큼? 엄마 끼었네.   .


세상이  어떻게 대하던?



간호사 : 눈에 얼음을 댔어요..

셰릴 : 네?

간호사 : 각막 기증을 하신다고 하셔서..


동생을 못 보고 떠난 엄마.



있다가 사라진 여우



?



셰릴 : 몰라, 가자



노랫말.

달팽이보다 참새가 되겠어.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어요.

못이 되느니 망치가 되겠어.

그럼요.



방황을 하던 셰릴

환각 속에서 그녀를 쫓아다니는 엄마.


**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느낄 때

우리는 소중한 제일 먼저 오른다.




셰릴 : 그 노래 좀 그만하면 안 돼? 왜 그래?

엄마 : 뭘 왜 그래? 나 행복해. 행복한 사람은 노래하는 거야.



셰릴 : 왜 행복한데? 우린 가진 것도 없잖아.

엄마 : 사랑이 넘치잖아



셰릴 : 미치겠네. 또 시작이야. 우린 식당 종업원이야

엄마 : 그래도 학생이잖아.

셰릴 : 평생 대출 갚아야 하고 집이라고 있는 건 무너지기 직전이고. 엄마는 혼자야. 손찌검하는 주정뱅이랑 결혼한 덕에. 근데 노래를 불러? 그렇게 몰라?



엄마 : 엄마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냐. 알면 뭐?

네게 가르칠   하나 있다면  최고의 모습을 찾으라는 거야.  모습을 찾으면 어떻게든 지켜내고.

셰릴 : 그래서 엄마는 이게 최고의 모습이야?

엄마 : 노력 중이야. 그 주정뱅이와 결혼할 걸 후회하냐고? 아니. 한순간도 후회 안 해. 그 덕에 네가 생겼잖아. 네 동생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잖아. 쉽진 않지만 해볼 가치는 있어. 오늘보다 훨씬 끔찍한 날들도 있을 거야. 거기에 질식해 죽는 것도 자유지. 근데.. 글쎄다 난 살고 싶어.


셰릴 독백 : 살고 싶어? 그 비참하게 행복한 인생 즐기지도 못하고 갔으면서.




Day  49. 자신을 아름답게 해주는 길




폴의 편지

저번에 전화 일찍 끊어서 미안해. 아직 너한테 화가  있나 . 근데 웃긴 .. 네가 그리워.



셰릴은 드디어 PCT 여정에서 여자 동지 스테이시 존슨을 만난다. 그녀에게서 그렉의 포기 소식도 접한다.


존슨 : 외로워요?

셰릴 : 솔직히 내 진짜 삶에서 더 외로운 것 같아요. 친구들이 그립긴 하지만. 집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당신은 어때요? 여기 왜 왔어요?

존슨 : 내 안의 뭔가를 찾아야겠다 싶어서요. 제대로 온 것 같아요. 보세요. 보고만 있어도 재충전되는 풍경이에요.



셰릴 :  엄마는  미치게  버리는 말을 하곤 했어요. "일출과 일몰은 매일 어. 네가 마음만 먹으면   있어.  아름다움의 길에 들어설  있어."

존슨 : 맘에 드는 분이네


일출 일몰 아름다움의 길. 사랑.


셰릴 : 내 전부이던 분이에요.




셰릴 : 우리가 있는 곳은 여기? 저 포스터만 보면 기분 더러워져요. 하찮은 존재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요.

상담사 : 본인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셰릴 : 당연히 소중하죠.



상담사 : 그럼 누가 당신을 등한시했죠?

셰릴 : 안 되겠네.

입으로만 떠든다고 해결될 게 아니지.



아빠의 가정 폭력.

그럼에도 남매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행복과 사랑을 가르친 엄마.




Day  56. 비는 그만, 고통도 그만.




평범한 발을 가친 아이조차 새 신발이 생기면 세상과 사랑에 빠졌다.
플래너리 오코너.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



셰릴 : 유골의 재는 그냥 재와는 다르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촉감이 꼭.. 회색 자갈이 섞인 창백한 조약돌 같다. 엄마 무덤 주위에 거의 다 뿌렸지만.



셰릴 : 큰 덩어리 몇 개는 입에 넣고 삼켜버렸다.



셰릴 : 그리고 포틀랜드로 이사하고 크레이지 조와 살았다. 헤로인을 처음 피운 날 아이처럼 웃으며 엄마 보석상자 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Day  58. 여자 혼자 여행한다는 것





Day  62. 오리건과 애슐랜드



셰릴 : 안녕. 오리건 소야.



허나 내겐 지켜야 할 약속과 잠들기 전 가야 할 길이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




애슐랜드.


누군가를 추모하고 있는 사람들



"제리 가르시아 죽다."


**

미국의 가수이자 기타리스트

록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의 창립멤버

1995년 8월 9일 사망했다.



가게 점원 : 한마디 해도 될까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립스틱이 있어도 위생이 엉망이면 소용이 없어요

셸리 : 제가 위생에 얼마나 신경 쓰는데요..

점원 : 아무래도 빨리 신경 써야겠네요.



클럽남 : 오늘 제리 가르시아 추모식이 있어요. 꼭 오세요.



클럽남 : 이름이 뭐예요?

셰릴 : 셰릴이요 (뒷걸음)

클럽남 : 걱정 마요. 안 물어요

셰릴 : 물어도 되는데.. 어쩜 좋아. 나 미쳤나 봐. 미안해요. 혼자된 지 오래돼서. 아 세상에 혼자란 소린 아니고. 혼자 하이킹한 지 오래됐다구요.



에이미의 편지


안녕. 보급품 보냈어.

차려입고 놀더라도 무리하면 안 돼.

갈 길이 머니까.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고 말했는데 그 말 취소야.

종착지 도착하면 전화해.

사랑을 담아 에이미가.



아까 그 가게에 립스틱을 다시 바르러 간다.



그리고 그때 챙긴 콘돔 하나를 이렇게 쓴다.




Day  6X. 난 아직도 준비가 안 됐어



클럽남의 집 앞 바다에서

PAUL 의 이름을 적고 있다.



폴에게.

오늘 아침 일어나서 모래에 자기 이름을 썼어. 자길 만난 후로 해변만 보면 그랬어. 그런데 이젠 안 그러려고.


노랫말. 그대여 그대여 내 친구가 돼주오.



셰릴의 일기


이제 480km만 걸으면 끝이다.

어서 끝나길 간절히 바라지만 두렵기도 하다.

끝나고 나면 전재산이라곤 20센트뿐이거든.

그래도 생활은 시작해야 하잖아.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Day  XX. 후발대 친구들




셰릴의 방명록을 읽으며 나아온 동지들을 만난다.


몸이 그댈 거부하거든 몸을 초월하라 - 에밀리 디킨슨

내겐 지켜야 할 약속과 잠들기 전 가야 할 길이 있다 - 로버트 프로스트

속단은 금물 - 휘트먼


신은 무자비한 개자식, 이것도 그쪽 거죠?



셰릴 : 나 맞아요

남자 무리 : 우리의 영웅이세요.



남자1 : 셰릴, 내내 혼자서 어떻게 버텨요? 우린 셋이 다녀도 지겨워 죽겠는데.

셰릴 : 온갖 기억들을 다 떠올리는데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들이 왜 그런지 자꾸 떠오르고…

남자2 : 나도 그래요. 떠올리기도 싫은 헤어진 여친들 생각.

남자1 : 누구 얘긴지 딱 알겠다.

남자2 : 그 얘긴 지금 하기 싫어


(비가 쏟아진다)


잘 자요!



텐트 속, 자기만의 시간

역시 책을 펼친다.


**

이 여정을 처음부터 함께 해 온,

태울 수 없었던 그 책.

에이드리언 리치의 <공통 언어를 향한 꿈>


그녀가 읽고 있는 부분



레이프 : 이럴 필요 없어.

셰릴 : 병 앓은 지 너무 오래됐어

레이프 : 다른 방법이 있겠지

셰릴 : 동물병원 데려가서 안락사시킬 돈은 없어.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잖아.



(엄마 : 이 아이 늙으면 편하게 해 줘)



말의 눈에 비치던 '총을 들고 있던' 남매.



레이프에게.

누나야. 돌아갈 집도 없는 건 알지만 같이 살 방법을 찾아볼게. 힘들긴 했지만… 누나가 부탁할게. 너도 노력해 줄래? 사랑해. 안녕.



**

엄마와 함께

돌아갈 집이 있었던 그때로.




Day  80. 뜻밖의 위로


노랫말.

길이 되느니 숲이 되겠어.



베라 할머니 : 잡았군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셰릴 : 이름도 있어요?

카일 : 슈팅스타



셰릴 : 하이킹 재밌니?

카일 : 정말 즐거워요.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셰릴 : 예의 바르네


베라 할머니 : 우린 비가 와도 주말마다 나와요.



카일 : 할머니가 절 돌봐주세요. 저는 남한테 말 못 할 문제가 있거든요.

셰릴  : 딴 사람들에게 말할 필요 없단다. 문제는 누구나 있어. 나도 있는 걸.

카일 : 어떤 문제요?

셰릴 : 아빠랑 문제가 있지. 이젠 보지도 않아

카일 : 저도요. 그럼 엄마는요?

셰릴 : 돌아가셨어. 그런데 문제들도 언젠가는 다른 걸로 변해.



카일 :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셰릴 : 많이 아프셨어.

카일 : 우리 엄마는 가수였어요. 노래도 많이 가르쳐줬어요.

셰릴 : 오, 진짜로?

카일 : 들어보실래요?



카일의 노래.


당신이 계곡을 떠난다고 들었어요.

우린 맑은 눈과 아름다운 미소를 그리워하겠죠.

당신과 함께 떠나간 햇빛은

우리 오솔길을 밝히던 빛이어라.



날 사랑한다면, 이리 앉아요.



작별의 인사를 서두르지 마세요.


단지 붉은 강 골짜기를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 카우보이를.


붉은 강 골짜기를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 카우보이를.



셰릴 : 정말 아름답구나. 고마워



셰릴 : (엄마가)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


**

노랫말이 내겐 이렇게 들렸다.


엄마와의 이별을 서두르지 말라고.

엄마가 알려준 빛을 그리워한다고.

그리고 엄마는 딸을 정말 사랑했다고.




Day  XX. 엄마의 구원



**

에드 아저씨께 배운 것.

지나온 것들을 때론 과감히 태울 줄도 알 것




셰릴의 깨달음


앞으로 닥칠 일을 알 방법은 없다.


무엇이 무엇으로 이어지는지.

무엇이 무엇을 파괴하는지.

혹은 번영의 원인이 되는지.

혹은 죽는지.

혹은 다른 길을 선택하는지.


내가 날 용서한다면?

내가 후회했다면?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반복할 것이다.



그 남자들 모두와 자고 싶었다면?



헤로인을 하며 뭔가 깨달았다면?



내 과거의 행동들로 이렇게 된 거라면?



내가 평생 구원받지 못했다면?



이미 구원받았던 거라면?




Day  94.

우린 미래를 모른다.

그럼에도 우린 고귀하다.



예상한 일에도 완벽한 대비는 불가능하다.
제임스 미치너,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




엄마가 자랑스러워할 딸이 되기까지

4년 7개월 하고도 3일이 걸렸다.



엄마 없이..


슬픔의 황야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야

숲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냈다.



종착점에 닿기 전까진 어딘지도 모르고 걸었다.


신의 다리


수도 없이 감사하다고 되뇌었다.



길이 준 가르침과 나도 모를 미래에 대해.



난 4년 후 다시 이 다리를 건너고.



여기서도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한 남자와 재혼을 하고.


9년 후, 그 남자와 카버라는 아들을 낳고.

1년 후, 엄마 이름을 딴 바비란 딸을 낳는다.



이젠 공허한 손을 뻗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해냈구나. 딸. 엄마는 이제 갈 수 있겠어 (엄마의 머리색을 닮은 여우)




내 인생도 모두의 인생처럼
특별하고, 바꿀 수 없고, 고귀한 존재다.
셰릴 스트레이드



진정으로 가깝고

진정 현재에 머물며



진정으로 내 것인 인생.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이었던가








**


자신의 근원이었던 엄마의 죽음

그로 인한 방황, 이혼.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나는 긴 여정.

자연의 광활함이 어쩐지 황량하다.


나는 가야할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내가 놓친 것들이 후회될 때

새로운 도전이 두려울 때

타인의 위로, 희망이 전혀 내게 닿지 않을 때

이 셰릴의 여정을 다시 찾을 것 같다.


우리는 간혹

모험이 얼마나 힘들지 가늠이 되면

더 쉽게 포기한다.

지금의 내 머뭇거림들도 그렇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손전등이 비추던만큼만

자신의 길을 걷고

타인의 삶을 훔쳐보던 셰릴처럼

딱 그만큼이라도 나아가자.


험난한 길일지라도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모든것은

그저 있는 그대로

숲이 되어있을테니까


아무도 모를 미래를 너무 계획하지 말자

어차피 무자비하니까

대책이 없어도, 그냥 현재를 헤엄치자


그러다 힘이 들 때면

소중한 이들을

책의 한 구절을

노래를

그리고 약간의 유머를 떠올리자


사랑할 준비가 돼 있다면 나보다 강한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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