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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so Mar 12. 2024

오랜만입니다

(예전 글을 많이 지웠습니다. 다시 써 내려가 보겠습니다.)


나는 왜 슬플 때만 컴퓨터 앞에 앉을까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며 관뒀던 회사에 지난여름 제 발로 돌아왔다

2022년 1월-2023년 8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고 싶었던 것들을 거의 다 했다

매일 아침 유유히 책도 읽었고, 고향에도 자주 내려갔다.

내 하루를 스스로 계획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만 살면 될 것 같았다. 조금 느리더라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하지만 이내 마음이 급해졌다

배우는 것마다 나의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쉽게 관둬서였을까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남들과 비교를 해서였을까

‘어쩌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제 뭘 하지?’

틀을 벗어나면 내 세상일 줄 알았다

제법 멋있고 안정된 사람이 금방이라도 될 줄 알았는데

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맹숭맹숭한 날들이 길어지며

식비, 병원비, 도서 구입 앞에서 초라해졌다

축하에도 돈이 필요하고, 위로에도 돈이 필요한 세상이란 걸 그때 알았다

그러던 중 지인이 용돈벌이로 일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관두기 전 했던 일과 유사했고 급여를 듣는 순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랏 다시는 안 할 거라고 수없이 토해냈는데 속단이었나. 왜 재밌지?’

부담감과 책임감이 은근 나를 행복하게 할 때가 있다

상사도 없고 내 맘대로 작업을 하니 몸은 지쳐도 즐거웠다

그 일이 끝나고 생각이 많아졌다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실장/감독이 되면 지금처럼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어딜 가나 회사란 곳은 피곤하고 가기 싫은 곳이라면

그냥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근무 환경이 나와 맞지 않았던 거지 일은 재밌었잖아?’

결국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땐 정말 미련 없이 떠나자는 다짐과 함께

사실은 몇십 년을 이 업계에 몸담고 있는 어른이 나를 계속 찾아주었기에

그 안목을 믿어보고 싶기도 했다

초반에 말했듯 나는 슬플 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 6개월 만에 망가졌다

소맷자락이 젖어가는 날이 잦아졌다

급체와 고열로 응급실을 오갔고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작년 11월에 쓴 글


괜찮지 않았다. 이때 병원에 갔어야 했다.

동료들과 밥을 먹다가 눈물이 차올라 죄송하단 말만 남기고 자리를 비운 날도 있었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선 눈물이 흐르다 못해 심장까지 쿵쾅거려 갓길에 차를 세우기도 했다.

샤워를 하다가도, 침대에 누워서도 울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사고라도 나서 몇 주만 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상사의 괴롭힘, 당장 내일도 계획하지 못하는 삶..

“어딜 가도 똑같아. 너도 느꼈다며”

무심히 내뱉는 누군가의 말

“차라리 이런 직업 해”

남일이라 쉽게 내뱉는 진로 추천

모든 게 날카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건 나였다

주변 공기까지 무겁게 만드는 나. 분위기를 흐리는 나.

통제가 안 됐다. 괜찮은 척을 할 수 없었다.

이 업계가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면서,

내 시간은 없을 거란 걸 알면서

복귀를 결정해 놓고 2년 전처럼 되풀이하고 있구나

스스로에게 면목이 없었다

늘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틀렸다.

와중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자주 왔다

"오빠랑 아빠가 싸워서 엄마가 중간에서 힘이 든다.

아빠가 아파서 “아이고아이고 하니 집안 분위기가 안 좋다." 하소연을 했다

평소라면 엄마가 힘들겠네 위로했겠지만

모든 상황들이 버거워서 퉁명스러움과 짜증을 가득 담아 끊었다

"엄마 나 일하고 있어 끊어.”

엄마는 친구가 거의 없다. 그래서 나한테 전화를 한 걸 텐데 후회했다. 하필 이 일을 택해서..

언젠가 엄마랑 아빠가 세상을 떠나면 이 일이 원망스러울 것 같았다

이렇게 버텨내는 게 인생일까

박연준 작가님의 <고요한 포옹>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즐거움을 포기하는 게 만성이 되면 인생은 서바이벌이 된다.

살아남기. 나중을 위해 다만 살아남기.



실패를 알아차리면 다른 선택지가 보인다

실장님께 면담을 요청하기로 결심했다

회사엔 재택을 하는 분도 있고, 외주로 일을 받아서 하는 분도 있고 여러 형태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혹시 나도 주 4일이 가능할지 물었다.

병원에도 다녀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집에도 자주 내려가야 할 것 같았다.

냉랭한 가족들을 그나마 풀 수 있는 게 나였다.

하지만 이 업계가 변동이 잦아 그렇게 근무일을 딱 정해서 일하긴 어려울 것 같단 답변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지. 당장엔 돈 나갈 데도 있고 하니깐 조금만 더 해보고 관두든지 하자

다음 날 아침

출근을 못했다. 관두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나도 안다. 무책임하단 걸

남들이 욕해도 상관이 없었다. 너무너무 힘들어서 되려 용기가 난 그냥 그런 날이었다.

관두겠다 말하고 나니 마음이 좀 진정돼

사무실에 가서 인수인계를 하고, 짐을 싸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회사만을 도망치는 게 아닐까 봐 겁이 났다

응급실에 다녀오곤 혹시나 하고 정신과를 알아봐 뒀었는데

지금은 꼭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전화 예약만 가능.. 아.. (네이버 예약 선호)

걸까 말까 걸까 말까

통화 버튼을 누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신과 진료는 당일에 당장 갈 수 있고 그런 곳이 아니었다

며칠 뒤에나 가능했다.

나의 떨리는 목소리에 간호사는 연신 괜찮냐고 물었다.

“원장님께 말씀드릴 테니 저녁 늦게라도 오실래요?”

“아, 아니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예약 날에 갈게요” 하고 끊었다.

그러고 내리 잠만 잤다.

출장에 가 있는 남자친구가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잠깐이라도 나가서 달달한 걸 마시라며

이틀 만의 외출이었다

카페에 앉아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실장님이었다. 심장이 쿵쿵 뭐라고 보내셨을까!

오랜 시간 연락을 주고받았다.

실장님께선 내가 지금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으니 유예기간을 가지는 건 어떻겠냐고.

업무도 시간을 운용할 수 있는 일을 주겠다고 제안하셨다.

고민 끝에 그러기로 했다. 나로선 손해 볼 건 없었다. 원하던 대로 된 거다.

4월에 복귀를 기약하고 연락이 끝났다.

관둔다고 하니 그제야 붙잡는 게 솔직히 좀 밉기도 했지만 백수가 되지 않음에 감사했다.

대화 중에 내가 가진 장점을 존중한다는 말을 하셨는데 내 장점? 실장님이 칭찬을 다? 뭘까? 궁금했다.

이 회사에 온다는 이도 많은데 왜 나를 잡으셨을까? 복귀하면 여쭤봐야지

첫 정신과 방문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슬픈 눈을 한 사람들이 쪼르륵 앉아 있었다. 남자 둘, 여자 셋. 나까지 여자 넷. 한 아주머니는 고개까지 푹 숙이고 한숨을 쉬어서 안쓰러웠다.

마음에 상처가 난 사람들. 다들 뭐가 그리 힘든가요. 우린 왜 여기에 있을까요

티비에 흘러나오는 아이슬란드 풍경만 바라봤다

“혜원님 질문지 작성하실게요~”

수많은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급격히 살이 빠졌냐는 질문도 있었다

- 삼주 사이에 4kg 빠짐

손목, 발목에 기계를 고정하고 검사실에 몇 분을 혼자 앉아 있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10년 서울 생활의 열매가 고작 이거라니..

병명은 우울증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조금 헷갈렸다.

선생님, 저는 죽고 싶단 생각은 안 들어요.

살고 싶은데, 그것도 잘 살고 싶은데.. 제가 우울증이라구요?

8개 척도 중에 7개가 우울증 수치를 한참 넘어섰다

상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제가 요가도 해보려고 회원권도 끊어뒀고, 읽고 싶은 책도 다 사뒀는데

정작 요가원에 가지도 않고 책은 한 문단도 읽히지가 않아요. 저 너무 게으르죠?”

“게으른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일해요? 그것도 몇 년을요.

지금은 무기력한 거예요. 여기 파동을 보면 평균보다 많이 아래에 있죠? 모든 거에 감흥이 없어요.

병이에요. 무기력하고, 재미없고. 우울증의 가장 흔한 증세예요. 치료를 잘해봅시다.

좋아하는 거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야죠”

빨래를 널다 말고, 설거지를 하고 샤워까지 하고선

한참 뒤에 건조대에 뒤엉켜있는 빨래를 마주했을 때의 허탈함

볼펜을 들곤 나 뭐 하려고 했더라? 자주 깜박깜박하던 나

덜컥 겁이 나던 날들도 혹시 이 병 때문이었을까

상담이 끝나고 나오는데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거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야죠"란 말이 든든해서.

내게 꽂던 화살들을 이제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몇 주간 약을 복용하며 많이 좋아졌다.

밝은 미래를 그리는 우울증 환자. 그게 나다.

내가 느낀 우울은 엉엉 목놓아 울만큼 슬픈 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또르르 눈물이 흐르는 병이었다.

밥솥 벽면에 붙은 얇은 전분 막 같달까.

잘 떨어져 사회에 스며들다가도 물에 녹아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그런 느낌

아직 이 병을 잘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요가원에 갔다 온 날은 잠을 잘 잔다.

우울증의 원인이 뭐였을까

여러 이유가 떠오르지만 잘은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자주 하던 말 ‘그럼 그렇지 늘 계획만 장황하지’

실행력이 부족한 나를 한심하게 여긴 게 큰 역할을 했을 수도 있겠다

PPT로 기획안까지 만들어 놓고 도전하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했다

오죽하면 하고 싶은 게 또 생기면 무서울 정도였으니까

실망하는 나를 마주해야 할까 봐 설레는 게 싫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 다양한 도전이 있었기에 얻은 것도 있다

나에게 맞는 운동도 찾았고 취미도 생겼다.

기획안 폴더를 훑으면 시선에 꽂힌 건 유튜브였다

한 번 해보지 뭐

하다가 접어도 절대 탓하지 말기

뭐든 간에 끝을 보지 말고 일단 시작을 칭찬하자!

파이팅 시소 그리고 혜원

-

오래간만에 돌아와서 이렇게 무거운 일상을 나누다니, 나도 참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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