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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g Lee Sep 30. 2023

재산세 1

내가 세금을 연체했다고? 아니 그보다 나한테 재산이 있어? 

재산세는 일 년에 두 번, 풋여름이 시작되는 유월과 그 여름이 흩어지는 구월에 통지된다. 우편으로 통지가 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하게도 스마트폰으로 알림이 바로 온다. 우편도 워낙 빠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오래된 방식이라면 통지를 하루이틀쯤 늦출 수 있었을 법 한데, 그리고 우편을 받고도 봉투를 열어보기를 조금쯤 미뤄보는 부질없는 행위를 해볼 법한 시간도 더 있었을 텐데 이제는 그런 얄팍한 수를 부리기도 전에 늘상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몇 번이고 알림이 온다. 

재산세 통지를 받을 때면 항상 기분이 이상해지고는 하는데 이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재산’의 존재 때문이기도 하고, 내 이름으로 세금도 내는 이 재산이 아직도 재산으로서의 값을 못하고 있는 사정으로 현실감이 더 떨어지는 탓이다. 


많이도 나왔네 


작년에 그래도 일자리가 있어 수입이 넉넉할 때는 크게 느껴진 금액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수입이 없을 때 몇십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재산이 있어서 재산세 걱정을 할 정도면 그래도 좀 형편이 넉넉한가 싶기도 하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고 먼 삶만을 살아왔다. 재산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도 변한 것 없이 매년이 그랬다. 


처음 이 재산의 존재를 알아챈 것은 대학을 막 졸업한 후였다. 


서울로 대학을 온 후로 고시원과 반지하를 전전하다 지친 마음에 마지막 학기가 끝나자마자 짐을 싸서 경기도 변두리의 본가로 도망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뭐 본가라고 해서 형편이 아주 나은 것도 아닌 산 중턱에 자리한 낡은 시골집이었지만, 고시원보다는 넓었고 반지하보다는 해가 잘 들었던 까닭에  고민 없이 도망쳐온 곳이었다. 그래도 도망칠 곳이라도 있는 것이 그때는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졸업도 목전이니 취업준비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했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야말로 지치고 또 지쳐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그 ‘쉼’은 반지하 월세까지 내면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기분’ 중 하나였다. 6년 만에 도망쳐온 산골의 낡은 집은, 그래도 내게 월세를 내라고 하지는 않았으니 매 달 돈에 쫓기는 그런 ‘기분’에서 조금쯤은 벗어나게 해 주리라고 굳게 믿고 내려간 셈이다. 실상은 매 달 나가는 학자금대출에 쫓기는 것만은 어디로 도망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하나에 쫓기는 것이 둘 이상에 쫓기는 것 보다야 낫지 않은가. 특히 폐병에 걸리도록 곰팡이가 번져대던 반지하 작은 방에 몸하나 뉘이면서 내는 월세는 억울하다 못해 분한 마음까지 들게 해 왔으니, 반지하 생활 3년이면 어떤 이성적 판단에 앞서 도망친대도 내가 나약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다고 했던가. 도망친 집에는 나로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빚더미가 까마득하게 쌓여있었다. 그것도 반지하를 겨우 탈출한 나로서는 영문모를 이름으로 말이다. 


재산세 


청소를 하다 찾은 수없이 쌓인 고지서들에는 내 이름 석자가 수없이 찍혀있었다. 재산세, 가산세, 가압류 통지서, 그리고 경매에 넘긴다는 안내까지 아버지는 그 많은 우편물들을 열어보지도 않고 한 구석에 처박아두고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살이를 하는 동안 주소지를 한 번이라도 서울로 옮겼다면 내 앞으로 도착했을지 모를 우편물들이겠지만 고시원으로, 그리고 남의 이름으로 계약된 셋방살이하던 반지하 세대로 굳이 주민등록을 옮길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기에 나로서는 존재도 몰랐던 그 많은 고지서들. 언제부터 밀려왔는지 모를 재산세 독촉장들이었다. 


이에 처음 가진 감상은, 내가 재산이 있어? 라기보다는 내가 빚이 또 있다고?    


나는 재산의 존재보다는 밀린 재산세의 존재를 훨씬 크게 느꼈다. 액수를 보는 순간 가슴에 돌덩이가 얹히는 기분이었다. 재산은 얼마인지도 알 수 없었으나, 밀린 재산세는 일원단위까지 명시되어 있었으니까. 쌓인 고지서들을 훑어보며 내가 모르는 동안 밀린 가산세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서 머릿속은 더더욱 혼란해져 갔다. 그리고 일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 드디어 그 고지서들을 내밀며 


이게 다 뭐야 도대체, 왜 내 앞으로 세금이 이렇게 밀려있어? 이거 압류된다잖아 재산은 다 뭐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두서없는 질문들을 던져봤으나, 그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그거 어차피 경매 넘겨봤자 팔리지도 않아, 걱정 안 해도 돼하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내 이름으로 독촉장이 이렇게나 와있는 데 걱정 안 해도 된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열댓 명이 나눠가진 공유지분이야 압류해서 공매에 넘겨봤자 구매자가 없을 것이나 뺏길 걱정은 없는, 빼앗아봤자 원하는 사람도 없는 재산이라는 것을 안다지만 당시 갓 대학을 졸업한 내가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세금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독촉, 압류, 가산, 경매 이런 모든 단어들의 조합이 한없이 위협적일 뿐이었고 별 일 아니라는 투의 아버지에게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별 일 아니겠지, 자기 이름으로 온 게 아니니까. 


나는 연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빚지는 일이라면 기를 쓰고 피했고, 어쩔 수 없이 받은 대출은 최대한 빨리 갚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한 목표였다. 밥 먹을 돈이 모자라도 학자금대출 한 번 연체된 적이 없었고, 휴대폰 요금이나 월세도 어떻게든 제날짜에 내는 것을 강박적으로 해냈다. 언젠가 아버지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남자를 만날 때 그 사람의 씀씀이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은 이런 고지서의 날짜들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를 봐야 한다고 그게 그 사람의 금전감각 그리고 신용도를 알려주는 지표라는 말이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우스운 말인가. 자기 딸은 언제부턴지도 모르게 세금 체납자를 만들어두고 남자는 쌓인 고지서 한 장 없는 신용할만한 남자를 만나라니. 왜 이런 게 있는 걸 이야기 안 했냐는 말에 돈도 없는데 급한 일도 아니니 굳이 이야기 안 했다는 대답에는 슬쩍 성가셔하는 기색까지 묻어났다. 더 따져 물을 일은 아니긴 했다. 어찌 되었든 이것은 내 앞으로 나온 재산세이고 내가 내야 할 돈일 텐데. 


문제는 그 돈이 없었다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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