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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g Lee Oct 11. 2023

재산세 2

 



재산이 있다면 돈도 있을 것 같지만 그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내 이름의 이 재산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산이 상속된 것인데, 이게 다 무슨 말인가 싶게 복잡한 수식들로 계산해야 하는 값어치를 가지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재산 분할에 있어 합의를 보지 못한 엄마의 8남매에게 골고루 법정상속된 공유지분. 몇 개의 땅덩이들의 각각 몇 할 정도를 내가 가지고 있었다. 무슨 뜻이냐고 하자면 열명이 넘는 소유자들이 전원 동의하지 않으면 팔 수도 없는 개발제한구역의 땅들의 소유권 일부가 나에게 있어서 이에 대한 재산세를 내야 한다는 것. 아니 나는 이제까지 어떤 재산권행사는커녕 재산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는데, 쌓인 고지서엔 당시 나로서는 감당 못할 숫자들이 우수수 쏟아져 있었다.


가난이 몸과 마음 구석구석 배어들어 이제 숫제 타고난 얼룩처럼 느껴지던 나날들이었는데. 아침이면 골목 앞 어린이집에서 뛰어나오는 아이들의 발 구르는 소리에 마치 놀이공원 한복판에서 깨어나는듯한 기분으로 누워 손을 뻗으면 닿는 낮은 창문을 끼이익 밀어 닫곤 하던 반지하방에서 이제서야 벗어났는데. 그래서인지 나에게 숨겨진 재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체감하기보다 나는 밀린 재산세의 금액부터 눈과 가슴에 꾹꾹 새겨 넣었다. 명치 위 어디쯤에 무언가 얹히는 느낌이었다. ‘재산세’라는 글자는 흐릿해지고 ‘납부’나 ‘연체’ 같은 글자만이 선명했다.


어느 날은 집에 혼자 있는 날에 그 ‘재산’이 있는 곳의 세무과에서 밀린 세금을 독촉하러 온 적이 있었다. 남자 둘이 어디의 누구인지를 밝히기 전에 문을 세차게 두드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방 안으로 숨어 숨을 죽였다.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몇 번이나 불렀으나 나는 그들이 갈 때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사채업자인가 싶었던 까닭이다. 빚이 워낙 많았던 아버지였기에 내 이름을 대고 찾아와도 나로서는 어리둥절 하기보다는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이 앞섰다. 이번엔 또 내 이름으로 무슨 짓을 한 걸까 하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또 무엇이 늘어나버린 걸까 하는 공포 속에서 나는 정말 나답지 않게 꼭꼭 숨어서 숨죽이는 것을 택했다. 마을에서도 맨 끝자락, 산 중턱에 지어진 집이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을 것 같았고,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금방 와줄 것 같지 않았다. 그 남자들이 세무과 공무원들이었다는 것은 그들이 문 앞에서 드디어 발길을 돌리며 나누는 대화에서 짐작했을 뿐인데, 실제 공무원인지 여부에 대해 그 당시에는 깊이 고민하지 못했다. 당시의 내게 와닿았던 것은 빚의 무게. 누군가가 찾아와 문을 험악하게 두드리며 독촉을 할 정도의 빚이 내게 쌓여있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정말 세금이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이든 중요한 대목은 아니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몇 번이고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나중에 돌아온 것은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었는데, 그냥 문 열고 얘기하면 되는 걸 왜 일로 몇 번이나 전화를 했냐는 질책뿐이었다.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겁이 많았냐고  애도 아니고 집에 찾아온 사람들 상대를 혼자 못하냐는 말에, 그저 겁을 잔뜩 집어먹은 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서울의 고시원과 반지하를 전전하면서 산 지난 6년 동안 몇 번의 스토킹과 몰카 범죄를 겪었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를 가깝게 느끼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그런 것들 외에도 나는 충분히 힘든 일들이 많았고, 그 꺼림칙한 일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수고에 비해 어떤 보상도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었고, 아버지한테 말한대도 어떻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혼자서 정체 모를 남자들을 마주하기가 가끔 겁날 때가 있다는 것은 아버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을 테다. 나는 어려서부터 겁이 없고 당찬 성격으로 쉽게 기죽지 않는 편이었으니 지난 서울생활에서 부쩍 겁이 많아진 이런 나의 변화는 가까이서 겪어보지 않고서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겠지. 그때쯤 나는 이미 하고 싶은 말을 곧잘 참아 넘기고 곤란할 때는 억지 미소를 지을 수 있었고, 밤길에 이어폰을 끼고 골목을 걸을 용기는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 일 이후로 재산세의 존재는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고지서에 쓰인 숫자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언제든 나를 불쑥 찾아와 겁박할 수 있는 존재였고 내 집 문을 쾅쾅 두드릴 수 있는 물리력을 가진 것이 되었다. 당연히 취업이 시급했지만 학교 다니는 내내 알바나 하며 겨우 졸업이나 한 주제에 취업이라고 쉽게 될 리가 없었다. 지치고 지쳤다는 핑계로 좀 쉬고 싶다고 주변에는 이야기했지만, 사실 매일같이 이력서를 쓰고 불합격통지를 받고 좌절하고의 연속이었다. 아 대학 동기들 공모전이니 자격증이니 할 때 나도 뭐라도 했어야 했는데 싶은 생각이 뒤늦게 들었으나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이미 지나간 마당에. 이제라도 할 수 있는 건 없나 서점에 가서 자격증 코너를 서성이며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일단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만만해 보이는 자격증을 몇 개쯤 공부해서 땄다. 하지만 그래도 두서없이 딴 자격증 몇 가지로 취업이 되지는 않더라. 그러는 동안 재산세 연체 및 납부에 관한 고지는 몇 번쯤 더 우편으로 전달되어 왔으며, 나는 이제 그것들을 굳이 펼쳐서 확인하지 않았다. 조급해지는 마음에 더해 저 고지서에 대해 당장은 무엇도 할 수 없는 현재 통장 잔고를 생각하며, ‘굳이’ 내게 저것들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던 아버지의 기분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알아봤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니 직시하고 조급해해 봤자 더 나아질 것도 없으니까.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한다’는 당연한 듯한 가치관 한 조각이 여기서 한 번 깨어져 나갔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가며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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