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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g Lee Oct 15. 2023

재산세 3


그렇다고 아버지가 하던 대로 이 문제를 언제까지 덮어놓고 모른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취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세무과에 전화를 해 연체된 금액을 10개월간 매달 나눠서 납부하겠다고 선언한다. 너무 오래 밀린 금액이라 처음엔 10개월이나 시간을 줄 수는 없다고 했던 세무과였지만, 이제 막 대학을 졸업했고 고의로 체납한 것이 아니라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고서는 합의에 이르른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납부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조금 지났을 무렵, 나는 직장에 날아온 급여압류통지서를 받고 가슴이 또 턱 내려앉는 경험을 해야했다. 우편물 수신이 내 업무가 아니었다면, 아마 내 세금 체납 사실은 바로 경영지원팀으로 갔겠지. 분명 10개월 분납으로 합의를 했고 몇달간 밀린 적 없이 잘 내고 있는 사람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고 세무과에 전화해 따져봤지만, ‘체납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자동으로 나가는 우편물이다. 미안하게 됐다’는 간단한 설명이었다. 급여압류라니. 갓 수습기간을 거쳐 사회 생활을 시작한 입장에서, 겨우 얻은 직장까지 위협받는 기분. 빚을 갚으라면서 빚을 갚을 수단마저 빼앗아 갈 셈인가. 급여를 다 압류하면 나는 무슨 돈으로 생활하며 일을 해서 빚을 갚느냐는 말이다. 고의던 아니던 국민의 의무인 세금을 체납한 죄인으로 불평할 자격도 없겠다 싶겠지만 당시엔 어떻게든 밀린 세금을 내보려 하는데 날아온 압류통지가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어떻게든 흘렀고 나는 결국 연체된 재산세를 완납하는데 성공한다. 


이 재산이 내 이름으로 상속된 것은 20여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이다.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일찍 떠났는데, 아마 지금 내 나이쯤에 발병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것이다. 병의 존재를 알았을 때는 이미 암이 많이 퍼진 말기였고, 두 번의 수술과 머리가 다 빠지는 지독한 항암치료를 받고도 그는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어머니의 몫이던 외가 재산의 공유지분을 내가 물려받게 된 것이다. 


이 재산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는 이십여년 만에 어머니에 대해 어느때보다 많이 생각했다. 일찍이 돌아가신 탓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있어도 어머니에 대해, 특히나 어머니가 내 어머니이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아는 것이 없었던 나였다. 온전히 내 기억에만 의존해서 되돌아보자면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조금 특별했다. 당시의 내가 이 관계가 다른 모녀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와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어머니는 갓난쟁이인 내가 울어도 안아 달래주지 않았다고 한다. 나 역시 금방 울음을 그치는 편은 아니었다고, 목이 쉬도록 울어댔다고 하기는 하는데 어머니는 손님에게 웃으면서 “울다가 지치면 그만 울어요” 하고 설명하고는 방문을 산뜻하게 닫아버리곤 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저러면 애 성질 버린다고 걱정을 했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이게 ‘미국식’교육법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사실 뭐 남의 아이 교육법에 참견할 수 있을만한 시대는 아니었다 분명. 하지만 그렇다고 어머니가 ‘나’에게 무관심했냐면 그렇지는 않았다. 나의 울음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나의 학습능력이나 성취는 분명 어머니의 삶에 있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뜨거운 교육열로 나는 유치원에도 가기 전에  한글을 떼고 구구단도 다 외우고 학교에 보내져 수업시간에 하품이나 하고있는 어린이로 자랐다. 친구들과 함께 밖에서 놀았던 기억은 거의 없고, 당시 흔했던 고무줄놀이도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따돌림을 당한것도 아닌데 그저 놀 시간이 없었던 것이고 또 어떤 것들은 시기를 놓치면 영영 못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참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익히고 놀 때 나는 각종 학원을 돌고 남는 시간엔 대체로 어머니와 둘이 마주앉아 책을 읽고 문제를 풀기에 바빴으니까. 그 때 둘이서 약간 어둑한 거실에 앉아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던 저녁 일상은 지금까지도 꽤나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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