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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Nov 22. 2024

나는 엄마가 어렵다

애증의 관계 모녀사이

너는 왜 그렇게 눈치가 없니?


이 말은 어렸을 때 엄마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싸한 표정과 함께 말이다. 엄마와 나는 편하지만은 않은 관계이다. 특별히 겉으로 드러나는 큰 갈등은 없지만 찬바람이 쌩하니 부는 드라이한 관계랄까. 나에게 친구 같은 다정한 모녀사이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것이다.


지금은 결혼해서 물리적, 정서적으로 거리가 있는 상태이다. 결혼 후 유학가 해외에 거주한 십여 년간은 지금 생각해도 엄마와 거리를 두는 공식적인 명분으로 딱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어느 정도 거리는 유지하고 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은 일 년에 명절 두 번과 부모님 생일 두 번 5회 이내의 만남이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에게 애정이 없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엄마의 그간 노고를 충분히 인정하고 내 부모로서 존중하고 애정한다. 그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이렇게도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이어진 엄마의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나를 자신의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했다. 컨트롤 프릭이라고도 하지. 아이에게 당연히 가르쳐야 할 옳고 그름과 관련된 타당한 양육방식 차원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엄마 보기에 좋아야 했다. 그 기준 또한 그때그때 풍문으로 듣는 것들, 엄마의 기분에 따라 오락가락했으니 나는 더 어려웠다. 알아서 잘 움직여야 하는 꼭두각시랄까나. 그렇다. 내 목엔 끊어지지 않은 탯줄이 감겨 있었다.


어렸을 때 엄마에 대한 기억 대부분은 싸한 표정, 찬바람 쌩쌤부는 차가운 태도이다. 그렇게까지 화가 난 이유는 알 수 없다. 말을 안 해주니. 그러고 나보고 눈치가 없다고 했다. 나를 챙겨주는 것조차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좋은 것을 해주었다. 아동은 힘이 없다. 휘둘릴 수밖에. 경제적인 지원 등 여러 가지 생활적인 도움이 없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청소년기에 크게 부딪혔다. 여전히 자립한 상태가 아니지만 자아가 확고해지고 힘도 생겨 무조건 통제가 애매한 시기이다. 이때쯤 나는 엄마의 의도를 읽고 눈치껏 행동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했다. 그냥 마이웨이 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점점 더 힘이 생기는 만큼 엄마는 약해졌다. 다행히도 내가 돈욕심이 많지 않고 내 앞가림할 정도는 스스로 해결하며 살 수 있게 되자 덜 휘둘리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진정한 해방은 결혼으로 내 목에 묶여있던 탯줄을 자르고 탈출했던 때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가 그걸 배웠다. 그것을 반복할 자녀가 없어서 천만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그 짓을 똑같이 하고 있다. 내 방식대로 안 따라주면 눈치 없다고 타박하고 싸하게 굴고. 내가 가장 싫어했던 모습을 내가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뭐 좋은 거라고 그걸 배웠나 참담했다.


이렇게 말하니까 엄마가 꽤나 나쁜 사람같이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선하지만 실수도 하고 가끔 못된 행동도 하는 보통의 인간일 뿐이다. 50년대 후반 생인 엄마는 그냥 그 시대의 평범한 사람이었다. 시부모 모시고 남편의 적은 월급으로 알뜰살뜰 살림해 저축하고 애 둘 키우는 정말 딱 그 시대의 표본. 그 시대의 엄마들이 그랬듯 성실하게 몸 갈아 가정 꾸렸으니 너무 바빴다. 문제는 그거였다. 너무 바빠 자신을 차분히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는 거.




이렇듯 내 현재 문제는 이러한 히스토리를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상담에서 현재 문제를 다룰 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과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남 탓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파고들다 보면 시작점이 어렸을 때 비롯된 것들이 꽤 많아 아예 안 다루고 넘어갈 순 없다. 그래도 어쩌나. 그건 그거고 현재는 현재인데 바꿀 수도 없는 거 남탓하면 안 돼. 지금! 롸잇나우! 고쳐야지.


어찌 됐든 나는 내가 가장 싫어하던 것을 엄마로부터  무의식적으로 학습했다. 나는 사람 안 변한다는 말을 어느 정도 믿는다. 그리고 그런 믿음에 기초하면 나 역시도 안 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뼈를 깎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한다면 뼛속까지 변하진 못해도 적어도 변한 척은 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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