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쪼잔해 보여서 말 못 한 속앓이
호기심이었다. 교회를 나가게 된 이유는. 대체 뭐가 그렇게 좋기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게도 전도를 하나. 신앙이 대체 어떤 것이길래 신실한 사람들은 고난 극복을 잘하나. 그 밖에도 중세 예술작품, 서양사를 공부할 때도 성경을 잘 모르니 이해의 폭이 제한적이었다. 뭐 이런저런 이유로 20대 중반쯤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덧붙이자면 절대 교회를 비난하고픈 의도로 쓴 글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교회 커뮤니티에서 도움도 엄청 받았다. 그저 개인적으로 경험한 어려움을 서술한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들이 처음 교회를 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어려움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많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열정 가득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는 찬양이다. 나는 처음 그것을 보고 집에 가고 싶었다. 혼자 집에서 하라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있는 앞에서? 아. 그것은 약과에 불과했다. 울면서 통성기도를 드리는 분들을 보고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싶었다.
예배 끝난 후에는 앞뒤 양옆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를 시키는데 아아 격하게 집에 가고 싶었다. 그 밖에도 식사기도를 같이 나누는 것, 모임 앞뒤로 대표 기도 시키는 것 등은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초반에는 건성 예배만 드리고 도망치듯 집에 갔다. 그런데 사람들과 교류도 없고 소속감도 없으니 내가 알기 원했던 호기심이 전혀 충족되지 않았다. 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 말고 제대로 해보자 싶었다. 청년부 활동을 시작했다. 예배 끝나고 모임에 들어갔다. 그러니 일요일 하루를 교회에 통째로 다 쓰게 되는 것이다.
신앙인에게는 이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슈퍼 내향인인 나는 주말에 집에서 혼자 조용히 에너지를 충전해야 다음 한 주를 살아갈 수 있다. 기 빨린 상태로 한주를 살아가려니 죽을 맛이더라. 이것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라고 말한다면 인간의 기질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번엔 심리적인 어려움이다. 조별 모임을 하게 되니 조원들 간에 기도 제목을 나누고 중보기도라는 것을 하더라. 이것이 내 기준에서는 아주 친한 관계에서만 하는 속 깊은 얘기들이었다. 그렇지만 나만 안 할 수 없다. 비자발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흉허물과 깊은 속내를 나누다 보니 내적 친밀감이 강제적으로 생겼다. 주일뿐만이 아니라 주중에도 계속 연락하고 모임도 갖는다.
이런 경우 극 내향인인 나는 아주 친한 관계로 착각할 수 있다. 이제 문제의 시작이다. 교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이런 조모임은 보통 분기별로 또는 학기별로 조가 바뀐다. 그러면 이전의 그 관계 유지가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이 당연한 것이 극 내향인인 나에게는 큰 충격이다. 조가 바뀌고 이전 관계에는 더 이상 노력 안 하고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고 버림받은 느낌이랄까.
물론 교회마다 문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일반적인 교회 문화에서는 극 내향인들이 적응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교회가 만들어지고 터줏대감처럼 초창기부터 다녀서 고인 물과도 친하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 하나하나와 친해진다면 극 내향인이더라도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을 것도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짜인 틀에 새로 들어가서 적응하기에는 극 내향인들에게 어려운 도전이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나는 절대로 교회를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로 올린 글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외향인보다는 내향인들이 더 많은데 교회에서 이런 외향문화가 주류가 된 것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또한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성격에 따른 특히 내향인들이 경험할 수 있는 교회 적응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적은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