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또 한 번 고비를 넘겼다
오늘 밤이 고비인데 병원에서 더 해줄 것은 딱히 없고 집으로 데려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평소처럼 밥을 먹였는데 갑자기 사레들린 듯 컥컥거렸고 재빨리 목에 걸려있던 사료를 빼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아이도 놀랐는지 영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비틀 대길래 바로 병원에 데려갔다. 숨 막혔던 시간은 고작 5초 이내인 거 같은데. 그 사이에 혈전이 생겨 뇌랑 주요 장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입원시켜 상황을 보자길래 따랐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병원에서 발작을 일으켰고 위독하니 바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또 그렇게 나의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일 년 반 가량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 나이대 강아지들이 그렇듯이 심장, 콩팥, 폐, 눈, 뇌, 간 등등의 질병이었다. 간병은 당연하다만 별다른 도움 없이 우리 부부의 몫이었고 나는 간병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오죽했으면 몹쓸 생각을 했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아이는 심장병 발병 후 쉴 새 없이 울었다. 깨어있을 때는 자지러지듯 울어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화장실을 잠깐 갔다 온 사이에는 어김없이 온몸에 똥 범벅을 해놓는다. 그 잠깐 사이에 말이다. 점차 포기하는 것들이 늘어갔다. 일을 포기하고 외출을 포기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조차 버거워져 포기가 되었다. 아이의 자지러짐은 점점 심해졌고 아파트 민원이 거세게 들어올 정도였다.
고통을 호소했다.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갓난쟁이 육아나 노부모 간병이 아니니 어디 감히 뭐 그런 분위기였다. 더욱이 남편 퇴근쯤엔 낮동안의 난동으로 지쳤는지 얌전한 아이가 되었다. 도대체 뭐가 힘드냐고 타박을 들었고 남편은 퇴근 후 간병 쉬프트를 비교적 수월하게 이행했다. 나는 점차 병들어갔다. 내가 돌봄에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면 애는 바로 병이 크게 났다.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저렇게 오늘내일하는 아이를 맡아줄 펫시터가 있을까? 그렇다고 고령으로 운전년허증을 반납한 노부모가 2시간 넘는 거리를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와주기도 어렵다. 진짜 위급 상황에서만 요청했다.
아이가 다니는 동물병원에 어려움을 토로하니 아이가 그나마 힘이 있어 우는 것이니 다행 아니냐고 한다. 음.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것이지? 참나. 그런 말을 할 법도 한 것이 아이가 동물병원에서 진료나 검사를 받는 동안에는 얌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의 병원진료로 아이를 동물병원에 반나절 가량 맡길 일이 있었는데 집에서 하는 행동을 그대로 거기서 하니 의사가 질겁하더라. 앞으로 더 이상 맡아주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돌려 돌려했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겪기 전까지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 힘든가 보다.
그렇다고 강제로 재울 수도 없었다. 먹는 약이 워낙 많아 거기에 신경안정제까지 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어도 부작용이 심한 약인데 말이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한계치가 왔다. 동물병원 의사는 진정제가 몸을 축 쳐지게 하는 것은 아니고 안 울고 잠을 잘 자게 해 준다기에 믿고 먹였다. 풉. 사람이 먹어도 물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지게 하는 약인데 그때는 내가 너무 절박해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약 먹인 지 이틀 만에 몽롱한 상태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죄책감에 몸부림쳤다. 나 편하자고 애를 사지로 몰아넣었구나. 내가 더 잘 돌봤어야 했는데 내가 더 참았어야 했는데. 울부짖었다. 그래도 그동안 정성을 다해 돌봤고 그 비싼 치료 다 받게 했으니 좋은 주인이라는 위로도 귀에 안 들어오더라.
그런데 다행히 기적이 벌어졌다. 혈전으로 주요 장기들이 타격을 받아서 가족 품에서 편히 가라고 링거 달고 집으로 왔는데 기적처럼 고비를 넘긴 것이다. 아이는 비교적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전처럼 하루종일 잤다 깼다 우렁차게 운다. 빙글빙글 돌아다니다 넘어지면 또 자지러지게 운다. 투정인지 생떼인지 고통인지 모를 비명을 질러댄다. 눈도 안 보이고 몸도 안 움직이고 아파서 짜증 나는 거 이해하는데 그래도 너무 힘들다. 여전히 방법이 없다. 아침 댓바람부터 울음소리에 강제 기상해 계속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돌아다니게 해 주고 달래고.
내일은 또 어떻게 견디나 매일을 생각한다. 자기 전에는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참 웃기지. 애가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땐 조금이라도 내 곁에 있어달라고 나에게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빌고 또 빌었으면서. 이렇게 간사하다니.
그래도 잠시나마 사고 안 치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나를 보며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누워서 꼬리를 흔든다. 그래. 저런 모습으로라도 내 옆에 있어주는 것이 좋은 거지. 언젠가 지금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날이 올 거야. 그렇게 또다시 마음을 다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