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내비게이션이라 함은, 목적지를 정확하고 빠르게 안내하는 - 기계치인 내게 그저 놀라운 - 발명품일 뿐이다.
하지만 내 차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은 정확하고 빠른 면에서는 근무태만이다 .
장롱면허 15년, 일 년 주행 거리, 만 km. 나의 운전 연대기는 먼지 나게 털어봐야 이 정도다.
가끔 장거리 운전을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조수석에, 운전석은 같이 사는 미스터 김 차지다.
가평에 갈 일이 있어 우리는 앞좌석에 나란히 앉는다.
운전 경력 30년의 미스터 김은 내비게이션이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지도와 이정표로만 전국을 누비고 다녀 샛길까지 다 안다고 큰소리치면서도 굳이 내비게이션에 길을 묻는다.
그리고는 도착시간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이렇게 많이 걸린다고?”
언젠가 영주에 갈 때도 우리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산을 두 개나 넘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산 아래 새로 난 길이 있었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 온 미스터 김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산을 두 개나... 허허허, 흐흐흐...”
그럼에도 우리는 또 눈뜬 봉사처럼 내비게이션의 손을 잡고 산길을 넘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산이 두 개다.
미스터 김은 연신 좌로 우로 핸들을 꺾어대며 뭔 놈의 내비가 산 두 개는 기본이냐며 툴툴 댄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험하고, 고즈넉하고, 오래된 이 산길이 싫지 않다.
채도가 낮은 겨울의 시골 풍경들.
나뭇가지는 마르고, 풀들은 잔뜩 웅크리고, 누런 흙에선 마른 먼지가 날린다.
한참을 달려도 마주 오는 차는 드물다.
비가 오지 않아 깡마른 개울, 추수가 끝나 휑한 논과 밭은 고요하다.
간간히 산길 모퉁이에 선 낡은 버스 정류장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먼 산에 이따금씩 들리는 이름 모를 산새의 울음소리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차는 자꾸만 휘어진 산길을 따라 위로위로 올라간다.
도로 옆 산 중턱에 빈집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녹슬어 구멍 난 빨간 양철지붕, 귀퉁이부터 무너진 흙담.
무너진 흙담 사이로 보이는 잡초 무성한 마당.
한때 누군가의 양식을 끓이던 녹슨 가마솥과 끊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빨랫줄.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힌 마루와 살이 부러지고 경첩이 뜯겨 덜렁이는 방문들.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한 번쯤 마주치는 빈집들의 쓸쓸한 풍경이다.
방안에선 아직도 그 안에 갇혀 웅웅 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담을 넘는 웃음소리, 서슬 퍼런 고함소리, 터지지 못하고 삼켜진 울음소리와 그리움을 담은 노랫소리.
그리고 허공으로 흩어져버린 혼잣말들.
많은 날의 달빛이 저 마당을 비추었을 것이며, 많은 날의 비가 저 지붕을 두드렸을 것이다.
많은 날의 바람이 저 마루에 머물렀을 것이며, 많은 날의 눈이 장독에 쌓이고 녹았을 것이다.
그 많은 소리들을 꼭꼭 묻어두고 떠났을 사람들은 저 집에서의 행복했던 한때를 가끔 기억할까.
그런 생각 끝에 떠오른 이야기. 꿈을 찾아 고향을 떠난 엄마와 현실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온 딸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시골의 풍경도, 엄마의 기억을 더듬으며 음식을 만들어내던 딸의 모습도, 투박한 시골청년과의 맹숭맹숭한 로맨스도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 아프게 남는 것은 밥을 먹는 딸 앞에서 떠난 올케를 타박하던 고모였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 조카와 함께 살던 올케가 그녀는 얼마나 위태위태했을까.
갑갑한 시골에 묻혀 사족을 묶고, 날개를 꺽은 채 숨죽이며 살던 올케가 어느 날, 애초에 없었던 사람처럼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숨바꼭질하듯 조카가 돌아왔다.
딸은 고모를 볼 때마다 불편하다. 말없이 사라져 버린 괘씸한 엄마의 죗값을 대신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말 많은 이웃 호사가들 역시 불편하기 마찬가지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걱정을 가장한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엄마의 소식을 물어온다.
마치 한 번은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 같다. 꾹 참아야만 인정받는.
고향에는 그림 같은 산과 들, 사진 같은 풍경, 사무치는 냄새, 아련한 소리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속에는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대체로 고향을 떠났다 돌아온 이들의 뒤에 모아지는 시선은 삼베처럼 거칠기 마련이다.
딸은 거칠고, 마른 장작에서 튀는 불씨처럼 따끔한 그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다.
외려 그런 시선은 안중에 없다는 듯 밥을 해 먹고, 밭을 일구고, 논을 맨다.
나는 그런 주인공의 모습에서 ‘졌다!’를 외쳤다.
열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그녀처럼 꿋꿋하고 덤덤하고, 당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빈 집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난 엄마가, 엄마를 애증하는 고모가, 엄마를 두고 입방아를 찧는 호사가들이 싫어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을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예뻤다. 나와는 다른 그 젊은 청춘이 담대해 보였다.
그래. 삶은 저렇게 살았어야 하는데. 특히나 젊었을 때에는 저렇게 살아왔어야 하는데...
나는 왜 그리 많은 이들의 눈치를 보고, 심기를 살피며, 눈 마주침을 피하며 살아왔던 걸까.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지나간 것에 붙들려 흔들리지 않는 그 젊은 청춘이.
젊다는 것은, 아니 산다는 것은 뒤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뒤돌아보아야 점점 멀어질 뿐인데. 돌아보느라 앞에 다가오는 것들을 너무 많이 놓칠 뿐인데...
나는 여주인공에게 배웠다.
자전거 페달을 끊임없이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듯이, 언제 싹이 나나 덮은 흙을 헤집어 보지 않듯이. 더 큰 열매를 위해 주저 없이 잔가지를 쳐내듯이.
삶은 그렇게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그 꿋꿋함과 당당함은 그녀의 엄마의 대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엄마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너를 이곳에 심고 뿌리게 내리게 하고 싶어서였어.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 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설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고향이 있는 자들은 축복받을 지어다.
정신의 뿌리가 단단히 고향의 흙에 뿌린 내린 자들은 축복받을 지어다.
큰 바람이 불어와 사방이 무너지고 날아가더라도 그 뿌리는 분연히 당신을 지켜 줄 것이다.
한낱 프레임 속에 보이는 그림에 감탄하며, 영화를 힐링 영화라 칭송하며, 귀농을 산뜻한 수채화쯤으로 여기며 꿈꾸는 자들에게 나는 조용히, 조심스레 묻고 싶다.
‘당신은 어머니가 떠난 텅 빈 집으로 돌아가 혼자 견뎌 낼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이 끝날 즈음, 차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역시나 20~30분 돌아왔음을 우리는 뒤늦게 지인을 통해 알게 된다.
미스터 김은 저 놈의 내비를 갈아야겠다고 혀를 찬다.
하지만 100년 인생의 20~30분, 뭐 그리 성토할 일일 것인가?
나의 내비氏는 오늘도 불친절하다.
이 길이 아님을 안다면 다른 길로 돌아가도 된다.
하지만, 이 길 위의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나를 따르라.
나는 불친절한 내비氏의 깊은 뜻에 고개를 조아리며 액셀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