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라늄이 점점 Oct 04. 2021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세요.

영화 '바그다드 카페'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다.

상설 시장엔 오일장까지 겹쳐 사람들로 북적인다.

늘어선 노점들 때문에 좁아진 도로 탓도 있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들 때문에 멈출 수도, 차를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꼼짝없이 앞 차를 따라 직진할 수밖에 없다.

목적지를 한참 벗어나 너른 앞마당이 있는 경찰서를 지날 때에야 간신히 차를 돌린다.

일단 차를 돌려놓고 밀려드는 차들이 빠지길 기다린다.

그때 저만큼 떨어진 노점상에서 두 여자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싸움이 시작된다.

늙은 호박이니 가지, 부추를 늘어놓은 노점상의 주인과 손님인 듯하다.

"저 옆에선 팔천 원이라는데, 여긴 더 작은데 무슨 만원이래요?"

"그러니까, 그 집 가서 사라고요!"

허리춤에 전대를 둘러맨 여주인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손님을 향해 연신 손사래를 친다.

오히려 그런 주인의 모습에 잔뜩 약이 오른 손님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젓는다.

"뭐 낀 놈이 성낸다더니, 얼추 비슷해야 말이 되지. 한 오천 원만 받으면 될 걸. 욕심이 하늘을 찌르네, 찔러."

"내 물건 내가 값 쳐서 받겠다는데, 안 사면 그만이지 뭐 그래 말이 많을까 모르겠네, 이 아줌마가!"

결국 삿대질이 오가며 주위의 상인들이 두 여자의 싸움을 말리기 시작한다.

그때, 노점 뒤 중국집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남자가 나온다. 

휘청이는 발걸음과 풀린 동공, 아마도 얼근한 낮술에 취한 모양이다.

그는 싸우는 노점 여주인을 향해 다가오더니 버럭 소리를 지른다.

"짐 싸! 그깟 거 팔아서 뭐 대단한 돈 번다고! 이 놈의 여편네가 어디서 쌈질이여!!"

남자는 기어코 난전의 늙은 호박 하나를 냅다 차 버리고는 중국집으로 다시 들어간다.

잠시 싸우던 두 여자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당혹한 얼굴로 서 있던 손님은 저만치 나뒹굴고 있는 늙은 호박을 주워온다. 호박 옆구리가 움푹 파여 있다.

"그냥 줘요."

한숨을 내쉰 여주인은 손을 내젓는다.

"됐어요. 그냥 가세요."

"아, 줘요. 깨져서 팔 수도 없겠구만."

결국 손님은 늙은 호박과 가지, 부추까지 한 단 사서 돌아선다.

멀어지는 손님의 뒷모습에 '야스민'의 뒷모습이 어른거린다.


몇 년 전 친한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뚝 떨어져서 살고 싶어. 다달이 생활비만 보내준다면."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온 것처럼, 단숨에.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하잖아. 현금인출기도 아니고."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그때 그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그들은 흔히, 쉽게 착각한다.

'나 없이 잘도 살겠다.'

하지만 ''없이도 잘 살 수도 있다는 걸, 아니 '' 없으면 더 잘 살 수도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한 번쯤 '브렌다'가 된다.


그때는 상상도 못 했었다. 이 영화가 '코미디'라는 걸.

그땐 뭐가 그리 항상 심각하고 진지했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경험하지 못한 일은 늘 심각하고 진지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결혼이라는 것, 혹은 실패하며,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28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공감할 수 있는 화두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괜히 폼 잡으며 그 속에 숨은 은유와 상징을 찾으며 심각한 '척'했었다고 순순히 자백한다.

솔직히 화만 내는 '브렌다'를 이해할 수 없었고, 남의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야스민'에게 공감할 수도 없었다.

(그래, 유명하다니까, 뭔가 있나 보다... 하고 괜한 폼만 잡았었지.)

나이가 들어보니, 매사에 짜증이 치솟는 내가 '브렌다'요, 내 새끼에 집착하는 내가 '야스민'이었던 것이다.

이제야 두 여자가 만들어내는 상황마다 절절히 공감하고, 함께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아~! 그래, 이 영화는 완벽한 코미디구나!' 하고 무릎을 치는 바이다.


'브렌다'와 비슷한 나이가 되고 보니, 

엉망진창 쑥대밭 같은 사무실을 청소해준 '야스민'에게 도리어 화를 내며 원래 대로 해 놓으라고 생떼를 쓰는 '브렌다'에게 공감한다.

늘 맘에 안 들어 화만 내는 내 아이들을 감싸고도는 낯선 여자를 경계하는 '브렌다'도 이해가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과잉친절을 베푸는 '야스민'이 달갑지 만은 않은 것이다.

무슨 꿍꿍이지? 뭘 바라는 거지? 뭘 숨기고 있는 거지?

경계를 치고, 손톱을 바짝 세운다.

'넘어오면 아프게 할퀴어 줄 테다!'

황량한 사막에 살고 있는 불쌍한 '브렌다'!


억수 같은 소나기를 맞아 호되게 앓아 본 사람은 우산을 나눠 쓸 줄 안다.

'야스민'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이나 큰 우산을 가진 사람이다.

견딜 수 없어 남편을 떠나온 '야스민'은, 견딜 수 없어 남편을 떠나보낸 '브렌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야스민'은 '마술 상자'를 열어 '브렌다'의 삶에 마법을 건다.

마법은 적중했고, 성공했다.

'브렌다'는 다시 웃기 시작했고, 황량한 사막의 찾는 이 없던 바그다드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라스베이거스를 능가하는 '야스민'의 마법 쇼.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야스민'의 마법 쇼가 펼쳐지는 바그다드 카페는 사막을 오가는 트럭 운전수들의 성지가 되어간다.


'나 없이 너 혼자 잘도 살겠다.' 

라는 착각에 단단히 빠진, 독단과 독선에 빠져 아내의 그림자를 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남편이 있다면,

현명한 아내여,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이 영화를 함께 보시길 바란다.

''의 부재 위에서 마법은 시작되고, 화려한 쇼의 막이 오르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시작된다.

부디, 그대 있음에 만사형통이라는 호두껍질 같이 단단한 착각은 깨버리시길.

홀아비 삼 년에는 이가 서 말이고, 홀어미 삼 년에는 은이 서말이라.

굳이 이런 말을 빌려오지 않아도,

아내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에 의심하지 말 것이다.

그러니, 남편들이여, 기적을 품고 있는 아내에게 부디 '있을 때 잘하시길'


봄바람에 미친 여자 널뛰기하듯, 

가끔 가슴 뻐근해지도록 높이 올라가는 날이 있다면,

그 높이만큼 떨어지며 가슴 철렁해지는 날도 있는 법.

바그다드 카페의 북적이는 마술 쇼에 초대되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현란한 '야스민'의 손재주에 속아 환호성을 지르고, 목청껏 노래를 불러도.

돌아서 나오면 또 우리가 걸어가야 할 질퍽한 길이 있는 걸.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종종 이 영화를 볼 것이다.

끝없는 집안일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고,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짜증이 끓어오르고, 

눈치 없는 미스터 김에게 신경질이 날 때.

해열제를 찾듯 이 영화를 찾을 것이다.

화가 내려가고, 짜증이 진정되고, 신경질이 가라앉길 바라며.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내게도 '야스민' 같은 마법이 한 번쯤은 찾아오길 바랄지도 모르겠다.


거기요, 혹시 듣고 계신가요?

나한테도 '야스민'같은 마법이 한 번쯤 필요하다구요!!


- 이건 쓸데없는 오지랖.

바그다드 카페가 성공하자, 브렌다를 떠난 남편이 슬며시 돌아온다.

브렌다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그를 끌어안아준다.

아~ 브렌다!

나 같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