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드는 게 좋아."
큰소리로 말하진 못했지만,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반박했다.
'거짓말!'
가끔 무릎이 아프거나, 갱년기 편두통이 성가시더라도 나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딱히 화려하지도, 낭만스럽지도, 찬란하지도 않았던 과거에 미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대책없이 우중충하고, 좌충우돌로 정신없고, 스스로를 생채기 내며 아파하던 섬뜩한 청춘은 그냥 넣어두기로 한다.
그렇게 지도에도 없는 길을 헤매며 큰 사고 없이 지금까지 어찌어찌 잘 살아온 것이 고맙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분명 우울한 일이다.
중후함이니, 현명함이니 이런저런 미사여구로 포장을 해봤자 위로받을 수 없는 일이다.
턱 아래 탄력없이 늘어지는 피부와 쳐지는 눈꺼풀을 확인할 때마다 거울 속의 나를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남의 속도 모르고 주책맞은 언니는 조용히 나이드는 것이 좋다고 달관한 사람처럼 말했다.
'그럴리가! 이보세요, 정신차리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생각은 그의 몫이니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언니와의 전화를 끊고 멍하니 화분이 놓인 베란다를 내다본다.
우중충한 과거는 돌아오지 않을테니 다행이고,
우울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다행이구나.
작년에 심어놓은 제라늄 꽃씨들이 무럭무럭 자라 애기 주먹만한 꽃볼을 터트리고 있다.
아침마다 조금씩 고개를 쳐드는 꽃봉오리들을 볼 때마다 넋을 놓는다.
새싹을 밀어올려 덩치를 키우는 장미도,
노란 속치마를 보일락말락 애태우는 애니시다도,
말괄량이처럼 소란스런 마가렛은 어떻고,
목이 길고 은근한 새침데기 데모루도.
아침마다 물시중을 드느라 분주해도 꽃을 보고 있으면 새순을 보고 있으면 무아지경이다.
요망한 것들! 혼을 쏙 빼놓는구나.
그래, 나는 지금이 좋다.
너희가 소란스레 꽃 피는 지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