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온 해외 거주 15년차 새댁의 시시콜콜
오랜만에 별을 보러갔다.
하늘 가득한 별과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은하수를 가만히 산 정상에 누워 보고 있으니 내 자신이 너무 작아지고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존이란? 삶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아까 올라올 때 봤던 개미들처럼 이 우주에비하면 나의 존재는 정말 하찮고 작은, 아무것도 아닌데, 어떻게 살아야할까?
이런저런 질문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을 채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에 나만 방황하는건가? 다들 자신만의 가족들을 만들고, 자신만의 커리들을 쌓으며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길을 잃고 방황해도 되나?'
택사스 Austin 으로 이사온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생각해보면 나도 참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사람인 것 같다. (과감한건지 무모한건지 �)
홍콩에서 영혼까지 갈아넣어 정말 열심히 일했던 프랑스 회사에서 결국 파리에 있는 본사에 가서 일할 기회를 얻었고, 회사에서 이사비 (홍콩에서 파리까지 컨테이너 이사를 시켜줬다) + 도착해서 살 집 찾기 / 가구 구매 비용 + 집 구할 두달동안 지낼 파리 시내 호텔비 + 비자 및 은행일 처리 에이전트 비 + 세금 신고 컨설팅 + 현지 사람들처럼 완벽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하게 도와줄 개인교습 등을 다 커버해줬다.
돌이켜보면 정말 감사하게 대우 받고 잘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진급이 더디고 상사가 좀 배울 것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회사로 이직을 결심했더랬다.
2022년, 이직한 회사는 내가 다니던 회사보다 작았고, 내 전 직장만큼 똑똑하고 착한 동료들과 으쌰으쌰 회사가 잘 되도록 힘쓰며 일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실망이 커서 3개월만에 새 회사를 그만둔 건 만 서른넷의 7월이었고, 3개월 후 나는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계속 일을 하고 바쁘게 살았더라면 이 사람과 결혼해서 오스틴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니 시간도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여행도 많이 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프랑스에서 정착해 잘 살아 보겠다는 나의 다짐도 뒤로하고 서른다섯, 이 사람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살 수 있도록 미국에 가보자는 결정을 내렸더랬다.
그렇게해서 시작한 나의 서른 여섯살은 그 동안 내가 쌓아왔던 커리어를 내려놓고 나를 돌아보는 여정이 되었다. 내 관심사라고 자부하며 사서 쟁여 놓았던 아트, 재즈 피아노, 주얼리, 식물, 요리에 관한 책들을 뒤적뒤적 읽어보고 '어머, 왜 이걸 몰랐지?' 하며 배우기도 하고, 유명하다는 자기계발서들과 동기부여해주는 유튜버들의 컨텐츠들을 찾아보며 '그래, 이 참에 미국에서 내 사업을 시작해보자' 하고 준비해왔다.
회사를 다니면서 냈던 성과와 성취감은 찾아볼 수가 없다. 결과를 내기위해 훨씬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잘 했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진짜 그런 것 같다.
난 원래 꾸준한 사람이 아니다.
이 세상에 싫증내기 대회가 있다면 난 거기서 일등할거다.
하루에도 열번씩 '아 돈도 안벌리는데 사업은 무슨 사업이야, 그냥 어디 빨리 취직이나 할까?' 하는 마음이 든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인내심과 끈기를 가지고 해내고 싶다가도
자꾸 약해지고 나에대한 의구심이 자꾸 든다.
'내가 이걸 진짜 해낼 수 있을까? 이게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걸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몇 번을 다시 되묻는다.
'이 나이에 방황하는 사람, 진짜 나말고 더 있나?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행복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나에겐 뭐가 필요할까?'
파리에 있는 내 친구들이 너무나도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이런 고민, 저런 고민 나누다가 갑자기 인문학에 대해, 정치에 대해, 예술에 대해 쉴새없이 떠들다가 영감을 받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파리의 아름다운 골목골목을 누비며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좋은 순간을 보낼 수 있는 우리의 인생은 장미빛이라며 'La vie en rose'를 누리자고 마무리할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