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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경옥 Nov 04. 2022

정년퇴임식


전교생이 대강당에 모여 앉았다. 

오늘은 이 학교를 마지막으로 퇴임하시는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식이 있는 날이다. 


얼마 전 교무실에 앉아있는데 교장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직접 오시는 일은 거의 없어 무슨 일인가 했다. 아마도 퇴임 전에 여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으셔서 인 것 같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앞으로의 교직 생활을 응원해주시는 마음을 받은 건 확실하다.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의 정년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이 들까, 아직은 그냥 행사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들의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교장선생님 한 마디 한 마디에 큰소리로 호응하고 학교에서의 마지막 발걸음을 축하해주는 모습이 기특하다.


한 학생이 축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 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아가씨의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김진호 - 가족사진 中


기타 연주와 저음의 목소리가 강당 전체를 채웠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누군가의 첫 학교에서 누군가는 정년을 맞이한다. 문득 정년까지 교사일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정년이 되려면 강산이 몇 번 변해야 하는 세월을 거쳐야 한다.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이 흘러서 정년이 될까, 아니면 꿋꿋하게 버텨야 정년이 될까. 


무대 위에 계신 교장선생님은 어떤 감정이실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을 통달한 듯 여유로운 표정이다. 


식이 모두 끝날 무렵 교장선생님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꽃다발을 가지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교장선생님도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선생님으로서 학생을 돌봐온 스승이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가정을 이끄는 아버지로 살아오셨다. 


나 역시 교사 생활을 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을 수 도 있을 것이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지만 작년과 올해의 교직생활이 매우 다르다. 학교와 학생을 바라보는 감정이 매해 달라질 텐데 삶 속에서 큰 일을 겪는 때가 겹치면 얼마나 더 큰 변화가 생길까. 언젠가는 연륜이 있는 선생님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이 되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가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첫 학교에서 처음으로 인사드린 교장선생님, 그간 학교를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제2의 인생 시작을 축하드리고 많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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