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할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연하게 맞죠? 바로 해드릴게요!”
급식 먹고 하루도 빠짐없이 들리는 단골 카페가 있다.
바리스타님은 이번에도 내가 뭘 주문할지 아는 눈치다.
학교 건물을 전체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1층에 카페가 생겼다. 잠겨있는 카페 문을 처음 열고 들어가는 사람은 교복차림을 하고 있다. 바리스타 동아리의 일원인 학생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들이 카페에 들어가 앞치마를 두르는 순간 학생에서 바리스타로 직업이 바뀐다.
점심시간이면 선생님과 학생들로 바글바글하다. 하나 둘 메뉴판을 보고 주문하는 중이다. 전 메뉴를 무료로 만날 수 있다. 선생님은 메뉴에 제한이 없지만 학생들은 커피 대신 아이스티 주문만 가능하다. 진동벨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본인의 차례가 오기까지 귀를 활짝 열고 있다. 테이블이 꽤 넉넉하게 놓인 공간이라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리에 착석한다. 책장에 있는 보드게임도구를 가져와서 보드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주문을 하지 않고 친구들 사이에 껴서 게임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카페에 올 때마다 만나는 얼굴들이 있다. 원래 대화했던 학생보다는 평소 수업에서도 만나지 못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 눈인사만 하는 사이에서 안부를 서로 묻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 카페를 오픈했을 때부터 거의 매일같이 출석하는 중이다. 선생님들이 첫날 커피 맛을 보시고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셨고, 약간은 뜸하게 방문하셨다. 나는 커피 맛을 영 모르는 사람이고 물을 잔뜩 섞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다 보니 적당히 괜찮았다. 주로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하는데, 카페에 잔뜩 구비된 유리잔에 커피를 따라준다. 교무실로 가져가 마신 후에 헹궈서 카페 영업이 끝나기 전에만 돌려주면 된다.
바리스타 학생 중 한 명은 교실 수업을 할 때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런 학생이 카페에서 커피를 제조하고 있길래 놀랐던 기억이 있다. 커피도 수줍게 건네는 듯하더니 어느 날은 라테아트를 배웠다며 즉석에서 제조해주었다. 사실 우유를 넣은 라테는 맛있지만 속이 좋지 않아 찾지 않는 편인데 학생이 먼저 내민 커피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예쁜 나무가 그려진 카페라테를 받았는데 그 마음이 따뜻해서 인지 다 마시고도 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라테가 만들어준 인연인가, 카페에 방문할 때마다 언제 조용히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지속적으로 말을 걸어왔다. 특히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카페를 떠날 수 없을 정도다. 교실에선 얌전한 학생 모드로 돌아가는 것이 반전이다.
계절이 변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운영하는 학생들도, 방문하는 손님들도 노련해졌다. 바리스타 학생 몇몇은 언제 준비했는지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했다고 한다. 커. 알. 못(커피를 알지 못하는)이었던 나도 이제 커피 맛 정도는 아주 조금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커피에 조예가 깊은 선생님들도 바리스타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셨다.
라테를 만들어주던 학생은 졸업 후 카페에 취업하고 싶다고 한다. 커피 이야기만 하면 의욕이 넘치더니 진로까지 확정한 것이다. 학교가 리모델링을 하지 않았다면, 바리스타 학생들이 교실에서 수업만 듣고 하교했다면 자신의 진로를 찾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거다. 학교라는 실습장에서 바리스타 실습을 한 학생 모두가 카페에서 일하고 싶게 된 것은 아니다. ‘카페에서 일하고 싶다’ 혹은 ‘일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 둘 다 경험해보지 않고서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언젠가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학교 바리스타 소속 학생을 만나게 되면 다시 한번 예쁜 나무를 그린 라테를 주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