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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에뜬지구 Sep 18. 2023

친구가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오창 여중생 동반 자살 사건



비극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계부와 재혼을 한 엄마가, 집엘 자주 들어오지 않으면서부터였을까. 

아니면 계부가 나를 이해하는 척, 술은 어른들 앞에서 먹어야 한다고 했을 때부터였을까. 

그마저 아니면 계부가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함께 술을 먹자고 했을 때부터였을까.  






사실-

이상한 일이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잠결에, 계부가 몸을 만진다,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계부의 끈적한 접촉은 이어졌지만 사랑이라는 그의 말을 믿었다. 

단 둘이 사는 집에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날 보호해 주는 어른이었던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용기도,  없었다.  


중학생이 되었다.  

종종 계부와 술을 마셨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성폭행을 당하는 꿈을 꿨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그 꿈은 너무 생생했다.  

이게 정말 현실인가 아닌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갔지만, 

그때도 몇 번이고 혼란스러워 말을 번복하고 말았다. 

그러다 그 일이 벌어졌다. 






그날, 계부는 친구들과 집에서 술을 먹어도 된다고 허락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술을 마실 거면 어른 앞에서 마셔야 한다는 논리였다. 

저녁 무렵, 친구가 왔다. 

맥주를 조금 먹고 삼겹살을 먹었던가. 

어느 순간 취한 나는 방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친구는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난 친구를 깨워 계부가 끓여놓은 찌개를 함께 먹었고,

그 아인 이내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도 

 아빠는 종종 그 친구를 집에 초대하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만남을 피하더니, 

 가족 여행을 간다며, 연락마저 뜸해졌다. 

답답했다. 

왜 자꾸 연락을 피하는 건지.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연락이 온 건 몇 주 정도가 흘러서였다.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난 친구와 함께, 

동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에 올라














뛰어내렸다. 






마지막 순간, <나>와 <친구>는 어떤 얘길 나눴을까.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밤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비극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를 이들은 서로에게 모두 털어놨을까.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친구>는 <나>의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그 끔찍한 밤의 기억을, 

끝끝내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휴대전화에 남은 문자메시지를 보면, <친구>는 또 다른 <친구>에게만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행여라도 <나>가 미안해할까 봐, 

그저 우울한 일이 있었다, 정도로 얘기했을 수도 있고, 

<나> 역시 다른 이유를 대며  죽음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숨지기 전 친구의 성폭행 사건 관련, 자신의 계부가 결백하다는 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알았을 것이다.

서로를 죽음으로 내몬 게 누군지.

왜 자신들이 삶을 등지는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었던 아이들은, 


그때 겨우 중학교 2학년이었다.   


 




종종 잊히지 않는 죽음이 있다. 

아득한 세상을 내려다보며,

두 사람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친구의 얼굴을 편히 볼 수도, 
기억을 지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너무도 어린 이들이 겪어야 했을 
미안함과 고통과 후회를 생각하면 나는 한없이 슬퍼진다.

그리고 태연히 범죄를 저지른 그 추악한 어른이, 
너무도 원망스럽다.    



<친구>의 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사건 이후, 피의자인 계부는 징역 25년 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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