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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처의 에이타 Jan 17. 2021

2017.4.29

#1. 가족이 왜 그래


 그간 생긴 변화 중 하나는, 살림이나 밥 해먹은 것들 따위나 날씨의 상태 같은 걸 찍어서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서울에 살 때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한다는 뜻이고, 역시나 자의 반 타의 반이다. 가족과 전화만 하면은 어머니가 거의 통화의 절반 이상을 살림 걱정을 하시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의 날씨가 습한 것, 한국에 비해 공과금이 비싼 것, 목조 마룻바닥이라는 것 정도의 차이를 제하면, 지금의 원룸이 여태까지 살았던 1인 생활환경 중에서 제일 쾌적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어머니의 걱정이란 건 너무나 원초적인 것들이라 영 귀담아듣기가 어렵다. 분리수거를 잘해라, 빨랫비누로 손빨래를 해라, 빨래는 털어서 널어라 등, 소위 말하는 '자취의 꿀팁'에서도 다루지 않을 너무나 기본적인 것들이다. 설마 어머니는 내가 서울서 반지하 1.5평 하숙부터 시작해서 7년을 홀로 살아왔음을 잊어버리신 건가 싶다. 그래서 재차 '엄마 내가 서울서 7년을 살았어'라고 하면 '그건 다르지!'라고 한다. 즉, 어머니는 나를 일본에 보내며, 바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상경할 때의 ver.20.0으로 초기화시키신 것이다.


덕분에 다시 '아, 내가 이렇게 무능한가?'라고 재차 고민한다. 분리수거를 하고 빨랫비누로 손빨래를 하고 빨래를 털어서 널면서, 벽지를 닦고 목재 벽장에 제습제를 넣고, 커튼 고리를 수리하고, 와이퍼로 유리창의 물기를 닦아내고, 카펫의 먼지를 뜯으며 '난 정말 살림 못하는구나'라고 자책하는 것이다. 자식은 언제나 부모에겐 어린아이라고 하지만, 내겐 달고 쓴 맛 다 봤던 1인 생활 7년은 성인으로 살아가는 나를 만드는 데에 더없이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걸 '네가 해봤자 뭘 얼마나 꼼꼼하게 했겠니'라는 말로 무색하게 만드실 때마다 슬퍼진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걱정할 수밖에 없어요. 전 제가 의사인데도 여전히 어머니는 제 말을 영 안 믿으시는걸요."


...라고 그녀가 말했었다. 의사에, 전문의 경력이 차고 넘쳐 지금은 한국에서 몇 손가락에 꼽는 병원의 유일한 정신의학과 의사인 그녀조차 부모의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녀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없는 나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가 났다.



#2. 멀어지다


일본어 학교의 입학. 시작은 너무나 고요하고 허전했다. 우리 반은 13명이고, 한국인은 나 혼자 뿐이다. 잘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대한 일본어를 많이 듣고 말할 찬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거나 혼자 책을 읽거나 SNS를 뒤적거리며 조용하게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만 일본어는 선생님의 말씀뿐이고, 대부분 같은 국적끼리 어울려 자국어를 쓰며 떠드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그간 글을 진득하게 쓰지 않았다. 책도 많이 안 읽었다. 디자이너들의 포트폴리오를 구경하지도 않았고, 크고 작은 전시회 또한 가지 못했다. 이런 '감각을 다져주는 것들'을 가까이하지 않은 것을 절감한다. 회사를 다녔던 시간, 힘들어도 조금이라도 생각을 써 나갔던 시간. 그 시간들과 그 장소들, 그때의 태도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던가를 생각한다. 약 5개월 간, 내가 얼마나 빠르게 멀리 바닥으로 추락했었는가가 사뭇 소름이 끼친다. 

다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남아 있던, 한 달 다녔던 회사의 내 책상의 모습.

2년 간 겨우 일어섰던 사람이 한 달 만에 다시 바닥까지 떨어질 만큼, 그 회사는 정말 힘들었었지.


일어는 생각보다 공부가 어렵지 않다. 집에 방문해 NHK방송 보라는 접수원도 좋은 말로 돌려보낼 수 있을 만큼 말을 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어로도 글을 잘 쓰지 못하고 있다. 여러모로 글발이나 사진, 디자인이나 여러 가지 것들의 감각이 빨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계속 체감하고 있다. 모국어로도 좋은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외국어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너무 괴롭지만, 어쩔 수 없다. 알았으니 계속 갈고닦을 수밖에 없겠지.



#3. 짙은


일어나서 잘 때까지 일본어만 듣고 쓴다고 해도. 하다못해 회화 클럽에 가서 일본어로 하루 종일 떠들고 들어온 날에도. 지쳐 잠드는 순간까지 일본 라디오를 듣고 일본 한자사전을 뒤져보다가 누워도. 여전히 아침이면


-서울의 원룸에서 눈을 뜰 것만 같다. 여전히. 


서울은 내게 참 끈질기고, 짙은 곳이다.




#4. 세탁소


아끼는 청바지의 지퍼가 고장 나 버려서, 한참 수선집을 찾아 헤맸다. 또 한 고비. 해외에서 옷 수선이라니. 수선집이 따로 있는지 조차 할 수 없어서 일단 세탁소를 찾아갔다. 다행히도 세탁소에서도 가능하다고. 보통은 세탁소에서 옷을 받아, 수선 전문가에게 대행한다고. 인자한 아주머니가 접수를 받아주셨다.


일본에서 가장 긴장할 때는 바로 이름을 적을 때다. 사실 한국에서도 한자 쓰는 법이 어려운 희귀 성씨인 데다가, 일본어로 쓰기 어려운 이중모음이 들어간다. 한국에서 한자 때문에 중국인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 무튼 아무리 봐도 도저히 흔한 한국 이름 같지도 않은 데다가 이름자를 잘못 쓰면 발음이 '춍(재일 한인을 멸시하는 말)'이 될 위험도 있다. 영어로 써도 될지 물었지만, 가게의 등록기가 일본어 자판밖에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가타가나로 썼다. 


'한국에서도 희귀한 성씨라 늘 곤란하네요'라고 했더니, 세탁소 사장님이 한국 사람이었냐며 활짝 웃어 주셨다. 그리고 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해주셨다. 코리아타운인 신오오쿠보에 자주 가는데, 겨울이면 한식당의 돌솥밥을 꼭 먹으러 간다고. ('한국 식당에 가면 돌로 만든 작은 냄비에 뜨거운 밥을 넣어 각자 하나씩 주잖아요? 물도 부어서~'라고 하셨기 때문에 아마도 돌솥밥일 것이다.) 식당 바닥 자리에 앉으면 너무나 따뜻해서 일어나고 싶지 않다며, 요 근래에도 다녀왔다고 즐거워하셨다. 4월, 아직 일본은 쌀쌀하다.


한국에서는 바닥의 따뜻함이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2월 말 경에 일본에서 살 집을 계약하러 어머니와 일본에 잠시 왔었는데, 나무마루에 전기 히터로 난방을 하는 일본 집을 보고 내 자식 얼어 죽는다고 기함을 하셨었지. 반대로 내 또래 친구들은 일본의 '코타츠'를 써 보고 싶다며, 내가 겨울에 고타츠를 장만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탁상 위에 간식거리를 놓고 먹으면서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니, 이만큼 기발한 난방 기기가 어딨냐며 말이다. 


같은 따뜻함이어도 형태가 다르고, 좋아하는 이유도 싫어하는 이유도 다르구나.




#5. 재외국민투표


토요일. 귀찮음과 이상기후와 골든위크의 인파를 뚫고 이케부쿠로 시내에 에 가서 재외국민 투표를 했다. 젊은 대학생들이 많이 보였고, 그다음으로는 아기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 등 중장년의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재일 교포이실 수도 있고, 다들 여러 가지 이유와 사연을 품고 이 곳에 살고 있을 것이다.


이케부쿠로의 한인 회관은 굉장히 외진 곳에 있었다. 길을 정말 잘 헤매는 방향치인데도, 그래도 무사히 잘 찾아갔다 왔다. 구글맵을 들고 헤매고 있으면 내 뒤에서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지나가면서 '야 저기야? 저기야?' 한다. 그럼 그 사람들을 따라간다. 가다가 또 길모퉁이에서 또 긴장하는데, 한쪽 골목에서 '넌 누구 찍었어?' '말  안 해줄 거야~'하면서 나오는 한 무리의 한국 사람들이 있다. 그럼 그쪽 방향으로 걸어간다. 외국에서 듣는 한국어처럼 귀에 잘 들리는 소리가 없다.


일본에 오기 직전, 외국어 학원을 마치고 나왔을 때 마주한 텅 빈 종로 거리. 그 때의 함성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함성의 결과.

이곳에서도 한국 정치계의 변화는 화제다. 나 또한 마음 어딘가가 간질간질하다. 괴로웠던 20대 초중반을 생각하면 환멸과 분노로 치가 떨리고, 나의 시간과 고통을 어디서도 보상받을 수 없음에 서러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곳에 내가 온 이유이기도 하다. 모국에 대단한 애국심이나 감정을 갖고 있진 않다. 하지만 내가 당장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생각하면 - 좀 더 끈질기게 지켜보고 싶어 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두 번의 서울 시장 선거, 대통령 선거에도 한 표를 던졌다. 지금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있지만 - 한국을 향해 '표를 던지는 것'은 꾸준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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