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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처의 에이타 Jan 17. 2021

2017.05.08

어버이날 그리고 전문학교 진학페어

#1. 어버이날


어머니는 지금의 내 나이에 나를 낳았다. 내가 이 나이 쯤이 되면, 부모님이 일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던 것들은 다 취미로 하고,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지금 이 나이 쯤 되면 부모님의 손에 용돈 두둑히 쥐어드리고, 내 집을 갖고, 확실한 직장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었으니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미술도 음악도 그래서 차례차례 손에서 떠나보냈고, 글쓰기도 사진도 떠나보냈다. 늘 '이건 아닌데, 이건 싫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공부만 해댔다. 과격한 표현으론, 공부를 '쳐 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공부만 잘하면 다 된다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것. 지금은 내가 뭘 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 채로 대학졸업장만 남아서 재류카드와 함께 둥실거린다. 


나는 나의 부모보다 어쩌면 더 나쁘고 슬픈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확실한 희망도 없이, 불안을 매일 삼키고 그 쓴 맛을 버텨가며 살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두 내 몫의 숙명이다. 이것을 부모님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니 두 분이 더 나로 인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를 먹이고 입히느라 쪼들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버이날. 나는 부모님에게 더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더듬더듬 서툰 일본어로 아르바이트 구직 전화를 몇 번 돌렸고, 일본어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했다.



#2. 


이케부쿠로에서 열리는 진학박람회에 갈 예정이다. 일본의 전문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다. 한국에는 없는 개념이지만, 전문대학이라 생각하면 된다. (물론 정확히 대응하는 개념이라곤 할 순 없다.) 일본에는 전문학교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치밀하게 봐 둬야 한다. 특히 전문 분야를 고르는 동안 고민이 많다. 가장 최근까지 직장에서 하던 일이자, 그나마 가장 자신 있는 것은 그래픽 디자인과 글쓰기인데 "과연 이 두 가지도 여전히 난 재미있는가?", "계속해서 잘할 수 있는가?"를 떠올리다보니 멍해진다. 한국에서 썼던 포트폴리오를 읽으면 속이 먹먹해진다.


이렇게 쉽게 멍해져버릴 거라면, 흐려져 버려서 망설이게 될 정도라면, 혹여 내가 지금의 내 본업이라 생각했던 것은 내 것이 아닌 건 아닐까. 혹시 정말로 다른 것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앞서 내가 원치않게 포기했던 것들을 돌이켜 보았다. 그러자 너무 괴롭게도, 그것들을 포기해야만 했었을 때 들었던 말들이 다시 울려 왔다.


"그냥 취미로 해."


어릴 때 저 말을 듣고 미술학원을 그만 뒀을 때, 피아노를 그만 치게 되었을 때, 바이올린을 그만 뒀을 때, 음악을 더 듣지 못하게 됐을 때, 한참이나 슬퍼했던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럼 음악과 미술을 그만두고, 나는 뭘 하면 되냐고 물었을 때 어른들은 회사원이 되라고 했다. 좋은 직장 잡으라고. 그 좋은 직장은 무엇이고, 뭘 하는 회사원이냐고 물었을 땐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릴 때의 마음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좋으면 좋다 이외의 생각은 없었으니까. 지금 어른인 나보다 더욱 뚜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제와서 그 뚜렷함을 원하다니, 바보 같다. 하루 6시간 피아노를 쳐도 지치지 않았던 열정도, 흑연과 물감으로 엉망이 된 꼴로 집에 돌아와도 피곤하지 않았던 체력도 이젠 없다. 


이젠 난 정말 자신이 없다.



#3. 몸 사리기


외국에 왔으니 힘들어도 부딪혀가며 살아야해.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미 20대 후반에 유학이라는 큰 일을 저질러놓고서는 겁을 내는, 용감하지 않은 내가 싫었다. 하지만 어제, 나보다 2년 앞서 싱가폴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외국에 있을 수록 몸을 사려야 한다고. 더 힘들면 안 된다고. 오래 살 생각을 하고 있다면, 더욱 더 몸 사리고, 힘든 일을 피하고, 건강을 지켜야 한다고. 


그렇다. 현관문만 벗어나도 긴장의 연속이다. 어렵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자판기 음료수 하나를 뽑으러 가도 이 음료가 어떤 맛의 음료인지를 읽어야한다. 장을 보러 가면 '봉투 필요하신가요?' '포인트 카드 있으신가요?'라는 말도 일본어로 듣고 일본어로 말해야하고, 그 작은 것들에도 에너지가 소모된다. 생활에 이미 배로 에너지가 들어가는 와중에, 생업이 겹친다고 생각해보자. 그저 닥치고 힘든 대로 하고 살다 보면... 그 나라에 애정을 붙이고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료 유학생들 대부분은 힘든 아르바이트를 많이 한다. 아직 일어검정성적이 없는 외국인에게는 주로 청소나 판매직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이 주어진다. '젊으니까 할 수 있다', '외국에 온 이상 어쩔 수 없으니까', '한국에선 더한 일도 했는걸'... 물론 좋다. 그것도 타당할 수 있다. 그렇다해서 - 사서 고통을 감수한다고 해서 외국 생활을 잘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친구의 말은 적잖은 위로가 됐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나약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젊을 때보다는 좀 더 요령껏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신주쿠 무인양품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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