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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Feb 14. 2023

싯다르타 2부 7장 윤회, 위로의 기도를

윤회, 싯다르타와 과거의 나를 위한 위로의 기도

   세월은 그를 바꿔 놓았다.


부유함과 환락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몇 년간 사문으로 머물렀지만 젊은 시절의 깨달음은 추억이 되었고, 자부심이던 사색, 기다림, 단식은 멈춘 듯 가라앉았다. 그도 점차 어린애 같은 사람이 되었다. 어린애 같은 사람들을 대하던 그의 우월감은 잠잠해지고 오히려 삶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기쁨과 불안함,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을 오히려 부러워하게 되었다. 어린애 같은 생활에서 싯다르타가 배운 것은 불만스러운 표정, 우울, 나태함이었다. 그는 삶이 낡고 흉해졌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때때로 들리던 내면의 음성은 침묵이었고 그는 탐욕의 늪에 빠졌다. 그럴수록 싯다르타는 더 큰 불안을 찾았다. 큰 노름에 돈을 쓰면서 더 큰 불안을 만들어내면서 점차삶의 자극을 높여갔다. 지겹게 물려버린 생활은 그런 감정에라도 빠져야 고양되고 도취될 수 있었다.


   6부  부와 쾌락 속에서도 고고한 모습을 유지하는 싯다르타의 모습은 일희일비하며 어린애 같은 삶을 사는 스스로에기  작은 허무함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 탓인지 부와 쾌락의 힘이 그리도 대단한 건지 싯다르타의 모습도 변했다. 눈앞의 즐거움 좇아 정신없이 지냈는데 정신을 차리고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하니 젊음이 사라진 채 경멸해 마지않던 돈과 쾌락, 중독과 취한 내가 있다. 남은 것은 씁쓸함과 머리부터 발끝을 채운 수치심이다. 나의 의식이 나의 수치심을 마주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으니 그는 다시 술과 쾌락으로 도망간다. 어디서부터 잘못것인지도 알 수 없다. 위로를 건네고 싶지만 과연 그에게 어떤 위로가 닿을 수 있을까. 젊은 시절 사문의 모습으로 그를 첫눈에 알아본 카말라의 사랑만이라도 그에게 닿기를 기도해 본다.   

   

  싯다르타는 카말라와 사랑을 나누고 난 후 그녀와 자신의 모습에서 고달프고 권태로운 늙음의 흔적을 발견한다. 두렵다.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술과 향락을 즐겨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비참함과 구토감 속에서 생활을 벗어나길 간절히 원하며 겨우 잠든다. 그리고 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카말라의 금빛 새장의 작은 희귀한 새가 죽었다. 죽은 새를 꺼내어 던져버리자 새와 함께 자기 내면의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내던져 버린 느낌을 받는다. 꿈에서 깨어난 싯다르타는 깊은 비애감에 사로 잡히고, 오랜 시간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인생을 끌고 왔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정원 망고나무 아래 정좌하여 인생행로를 더듬어 본다. 행복은 언제 느꼈는지 진정한 환희를 맛본 것이 언제인지. 그는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하며 자신의 정원을 떠난다. 그가 떠난 것을 알게 된 카말라는  작고 희귀한 새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싯다르타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된다.     


  싯다르타를 읽으며 그를 따라 나도 내 마음속 정원에서 망고나무는 찾아 앉았다. 상상 속에 눈을 감고 정좌하여 생각한다. 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무엇이 떠 오를까? 되짚어 보는 나의 인생의 행로에는 기쁨도, 자랑스러움, 수치심과 부끄러움도 함께 떠오른다. 어떤 기억과 감정은 실타래처럼 엉겨있어 어디서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마주 보기 힘든 기억들을 나의 상상 속 정원 한 귀퉁이에 모아 두고, 아직 굳이 풀어내려고, 지금 굳이 마주 보려 하지 않는다.  고이 그곳에 두고 마주 볼 용기가 생길 를 기다린다.


  나의 수치심과 부끄러움은 지나온 일임에도 마주 보기 어렵다.  마주 하기 어려운 마음이 당연한 것인 줄 모르고 그것들을  의식에 떠오르지 않게 하려고 떠오르는 것들을 누르기 위해 감당하기 빠듯한 일상과 놀거리, 술로 삶을 채우며 지내려 노력하기도 다. 해가 기울면 즐거운 술자리를 바랐고 술로 의식이 흐려져 만족할 때까지 나의 매일 사람과 술로 채웠다. 그에 따라 나의 위장과 정신이 항상 흐릿한 아침을 맞았다. 내가 술을 채우는지, 술이 나를 채우는지 모르던 적당히가 없던 시간이 있었다. 나의 삶 언제가 그랬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나의 마음 어느 부분은 마주 보기 어렵다는 것부터 알고 시작한다. 꼭 지금 일 필요는 없다. 지금은 나의 기쁨과 행복과 불안과 슬픔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천천히 응시하며 마주 볼 용기를 만드는 시간이다. 조급해하지 않는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


나는 뒤에서 조용하게 지친 싯다르타와  과거의 나에게 침묵의 기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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