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예술을 들이십시오.
오늘의 그림책 현상을 바라봅니다.
어째서 우리 사회는 그림책을 사랑하여 관련 산업의 다종다양한 단체와 직업군이 생겨나고 있을까요?
그림책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매운맛을 필요로 하면 매운탕이나 떡볶이가 당기고 우리 몸이 고소한 맛을 필요로 하면 튀김이 당기듯이
우리 사회의 집단무의식이 그림책을 초대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림책이 왜 그토록 필요했을까요?
그림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었고
그림책 등장 이후로도 오랫동안 아이를 잠재우는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것이 그림책이었습니다.
그 고유한 속성으로 반추한다면 우리가 아픈 곳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어떠신지요.
어디가 그렇게 아플까요.
학교도 아프고 직장도 아프고 작가도 아프고 아이도 어른도 아픕니다.
가정도 미디어도 관공서도 언론도 정치도 이제 모든 분야는 예술적 직관력을 접속해야 합니다.
정답이 없는 시대에는 정답을 구태여 구하지 않는 예술에 길을 물어보아야 합니다.
각 분야 직종 모든 사람들이 생활한 켠에 예술을 장착해야 합니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문학이든 좋습니다.
생활에 예술을 들이십시오.
그중에 그림책은 단연 모두의 약손이라 하겠습니다.
어느 해 어느 날 도서관 휴게실에서 있었던 일.
아무리 휴게실이지만 저 건너 테이블의 장년의 사내가 입속에서 부숴먹는
스낵의 파쇄음이 무척 거슬린다는.
그 스낵 꾹꾹 씹어먹는 소리, 바수어지는 소리는
그 왜소하지만은 않은 체격이 떠받치고 있는 강건한 턱을 진동시키며
따라서 두개골을 타고 머리터럭 바깥으로 올라와
온통 스테레오화되어 사방 오방 팔방으로 흩어져 조용한 공간에 울린다.
그는 필시 그 소리를 즐기며 스낵을 바수고
나는 인내하며 소리의 끝을 기다린다.
정량의 내용물이 다했음을 수용하며,
아쉽게 과자봉지를 두터운 손안에 구겨쥐는 순간까지
그 사내가, 그 장년의 사내가 정말 싫은데
내 곤두선 신경이 빼앗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