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된 S에게
S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사람을 잔잔하게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잔잔하다 못해 고요하게 가라앉혔다. 깊은 물속에서 우리는 자주 감정을 잃었다. 그것은 해탈인 것 같기도, 영원한 우울 같기도 했다. 희망을 믿고, 꿈을 꾸던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무례한 선생들이 낡아빠진 훈수를 둘 때면 우리는 시선을 돌렸다. 기다란 책상의 중앙에서 만나는 시선들은 묘한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말이 길어지면 우리는 서로의 진짜 표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비웃거나 한숨을 내쉬던 표정들. 지루하고 피곤해 보이던 얼굴들. 1분이 마치 10년 같던 길고 긴 시간이 지나 쉬는 시간이 오면 도망치듯 복도로 나오곤 했다. 교실 안에 더 있다가는 말라죽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탈출한 S와 나는 험담을 시작했다. 사실 그건 험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적절할 때 배출하지 못해 쌓이고 고여버린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무게를 잡고 하찮은 말들을 늘어놓던 선생님들을 가벼운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은 아주 재미있었다.
느리고 무료하던 수업시간과 빠르고 자극적인 쉬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교시간이었다. 수업을 마친 우리의 모든 에너지는 결락되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쉽게 지하철 역까지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우리는 주로 걸었다. 더울 때도 추울 때도 일단 걸었다.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걸었다. 약 20분간 S와 길을 걸으면 수다를 떠는 시간이 내게는 큰 위안이자 행복이었다. 길 위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꺼내지 못했던 서로의 진짜 모습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연예인, 남자, 성, 욕 등등 원초적이고 맛있는 이야기들부터 진로, 꿈, 미래, 예술 같은 진지한 이야기까지. 정말 솔직한 말들이 오갔다. 숨길 필요 없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행운이었고 다행이었다.
아직 고등학교가 그립지는 않다. 아마 여러 계절이 지나가고 내게 어둠의 시기가 드리워도 고등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을 것이다. 추억과 기억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은 내게 단지 기억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아무리 미화되고 왜곡되어도 기억이 추억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끔 그 길은 떠오를 것 같다. 우리가 함께 걷던 그 길. 찝찝하고 피곤하던 학교생활을 견디게 해주었던 그 길 말이다. 시끄러워 귀가 먹먹하던 학교에서 벗어나 조용한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고 다리 위에서 탄천에 떠다니는 오리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간. 우리의 말소리, 웃음소리가 세상 전부였던 시간. 봄꽃이 만개하던 계절엔 우뚝 멈추어 서서 사진을 찍고 까르르 웃던 순간들. 우리가 온전히 여고생으로 존재하던 찰나.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이다.
며칠 전 S가 대학 OT를 마친 뒤 내게 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졸업을 한 뒤 S는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재수생이 되었다. 때론 친구로 때론 전우로 약 3년간의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가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인생에서의 첫 사회생활을 S와 함께 했고, 그녀와 함께 이겨냈기 때문에 유독 그렇다.
그다지 착하지 않은 나는 응원에 박하다. 누군가의 삶에 오롯이 박수를 쳐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남들의 인생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나보다 잘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우선이고, 남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응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S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 내가 그녀와 친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S가 매력 있고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새로운 대학에서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 내가 아낌없이, 조건 없이 널 응원하고 있다고. 지칠 때면 우리가 함께 걷던 그 길을 떠올리며 부디 힘을 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