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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모 Feb 23. 2023

엄마와 짜장면

 

"생일 축하한다!"


 반장은 불쑥 네모 반듯하게 포장된 연필 한 타스를 내밀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내가 당황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서 있는 걸 보고 엄마가 얼른 반장에게 손짓을 하며 집으로 들였다. 안 그래도 이미 친구들로 가득한 거실과 방에 반장은 스스럼없이 섞여 앉았다. 나는 엄마에게 떠밀려 반장 옆에 앉았고 친구들이 나와 반장을 보곤 장난스럽게 웃었다. 


  당시에는 같은 성끼리 짝을 했는데 나는 키가 커서 뒷자리에 남학생이랑 종종 짝을 했다. 초등 선생님들의 배려심이란 거의 반달가슴곰 개체수 수준이어서 혼자서 남자 짝인 나는 더더욱 말수가 적은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우리반에서 가장 잘 생기고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반장이 내 짝꿍이 되었다. 그 순간 인생의 만감이 교차하던 그 기분이란. 

 착하고 친절한 반장이었지만 부끄러움 많은 초딩 여학생은 차마 남학생을 생일에 초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반장이 어찌 알고 내 생일날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이다. 


아니, 어떻게 내 생일을 알았지?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았나? 반장이 날 좋아했던 거야?! 잠자리 안경 너머 숨겨진 나의 매력을 역시 똑똑한 반장은 눈치 챘단 말인가. 오, 마이 갓!


 사실 그 잘생긴 반장을 우리집으로 불러들인 건 나의 미모가 아니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하던, 엄마가 준비한 특급 메뉴 ‘짜장면’이었다. 80년대 말, 아빠가 노랑 봉투에 월급을 받아오던 시절, 있는 집 애들은 경양식을, 보통 수준의 집은 중국집을, 없는 집 애들은 외식이란 없었다. 짜장면이 천 원 정도였는데 보통 아빠들 월급이 20만원 안팎이었던 시절이라 외식이 흔하지 않아 그리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그 귀한 짜장면을 친구들에게 내 생일 파티음식으로 쏜 거다. 탕수육까지! 우리 동네 ‘제일반점’보다 맛있는 짜장면과 겉바속촉 탕수육에 온 동네가 나의 생일 잔치로 들썩였다면 믿으려나?! 




  짜장면은 원래 중국의 산둥 지방에서 즐겨먹는 ‘짜지앙미엔(작장면(灼醬麵))’이라는 가정식인데 조선 말 임오군란으로 청나라 군인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 같이 들어온 음식이라고 한다. 일제 시대에 각종 난과 흉년 등으로 조선으로 건너와 ‘쿨리’라고 불리던 중국 노동자들은 주로 산둥에서 많이 넘어왔다. 산둥반도와 가까운 인천에 차이나 타운이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 낯선 이국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작장면’이었다. 

 마침 조선에서는 외식 문화가 생겨나면서 넘어온 중국인들은 먹고 살 수단으로 청요릿집을 열었고 많은 지식인들과 모던 보이, 걸들이 청요릿집을 드나들었다. 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에 ‘독립선언서’를 배우면서 한용운이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다가 일본경찰에게 잡혀갔다는 이야기가 국어선생님의 ‘구라’인 줄 알았는데 당시 청요릿집은 컨퍼런스의 대표적 장소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박정희 정권 때 화교에 대한 탄압이 극도로 심해졌다. 화교들을 겨냥해 화폐개혁을 실시하고 토지 소유를 금지하면서 큰 청요릿집들은 점점 쪼그라들어 오늘날 동네 ‘중국집’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거기에 미국의 구호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를 처리하기 위한 혼분식장려정책 덕에 저렴해진 밀가루로 짜장면을 만들어 팔면서 중국집은 다시 꽃피게 되었다. 50cc 스쿠터에 함석 철가방을 태우고 달리던 ‘짱께’들 덕에 오늘날 ‘배민’도 탄생할 수 있었던 거다!(라고 생각한다.) 

 중국집을 하던 화교들이 정부의 탄압으로 떠나고 그 자리를 차곡차곡 채운 건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그 한국인 중 한 명이 바로 나의 ‘사촌 이모’다.(엄마의 사촌동생이니까 나에게는 5촌이다.) 


 초읍 어린이 대공원 앞에서 남편과 중국집을 하는 그 사촌 이모가 우리 집에 어느날 불쑥 찾아왔다.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사촌 이모는 술을 좋아하는 이모부와 대판 싸우고 아이들과 주방을 내버리고 우리집으로 도망을 왔다. 이모부는 평소엔 사람 좋다가 술만 마시면 거칠어졌다. 주사를 견디다 못한 사촌이모는 헤어질 결심을 하고 보따리를 쌌다. 사촌이모는 밤새도록 엄마에게 하소연을 하고 울었다. 그리곤 꽤 오랫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다. 

 그동안 사촌 이모는 숙박료를 대신해서 짜장과 탕수육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이모가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은 항상 신이 났다. 이모는 열 밤이 지난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이모부가 알콜로 인해 결국 사망해서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보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다 자란 자식들 옆에 선 사촌이모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가발을 쓴 사촌이모가 나를 보며 이렇게나 컸나,하며 환하게 웃었다. 빠글빠글 새까만 단발머리로 짜장 만드는 법을 알려주던 이모의 모습이 희미했다. 이혼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사촌 동생에게 배운 짜장면과 탕수육 기술을 딸을 위해 엄마는 마음껏 발휘했다. 그렇게나 잘난 반장도 짜장면 앞에서 작아졌다. 그날 짜장면과 탕수육을 신나게 먹고 친구들과 온 동네 아파트 단지를 싸돌아다니며 신나게 뛰어놀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날 내가 숨었던 향나무의 뭉툭한 이파리 촉감도 술래에게 잡힐까 봐 뛸 때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지나가던 바람과 뒤에서 들리던 친구들의 웃음 섞인 고함소리도 생각난다. 짝꿍이랑 같이 놀이터에서 하늘 끝까지 그네를 굴렸던 것도 기억난다. 그날 엄마가 뜨개질해 만든 하얀 원피스를 입었던 것도.  그날의 짜장면을 생각하면 빵빵하게 부풀었던 자부심과 잘생긴 반장의 얼굴이 짬짜면처럼 세트로 떠오른다.


  짜장면은 각종 저렴한 야채와 짜고 단 춘장을 섞어 걸쭉하게 기름에 볶은 별 볼일 없는 분식이다. 그럼에도 어딘가 모를 애틋한 추억과 그리움, 사랑, 즐거움이 묻어 있는 건 그 음식을 먹었던 날들의 즐거움과 설렘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짜장처럼 얽히고설킨 짭짤한 추억들이 새겨진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입학식, 졸업식, 나들이날, 생일날, 이삿날 등등 크고 작은 대소사에 함께 했고 노래 가사에도 ‘짜장면’이 나오는 구절에 가슴이 짠해졌듯이. 


  그 날의 엄마는 적어도 30~40그릇의 짜장면을 만들었을 것이다. 한 번에 면을 다 삶지 못해서 엄마는 내내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순차적으로 면을 삶으며 좁은 부엌에 서 있었다. 엄마는 수 십 명의 아이들의 입에 들어갈 짜장을 만들기 위해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서 감자며 양파며 고기며 힘들게 잔뜩 싸와서 내가 학교 간 사이에 손목이 시리도록 썰고 볶았을 것이다. 돼지고기를 밤새 밑간에 재워서 뜨거운 기름에 튀기고 탕수육 소스를 만들며 맛이 없을까 걱정도 했겠지. 학교에서 미세먼지처럼 존재감없는 딸을 위해서 사촌 동생이 알려준 그 비기를 갈고 닦았던 것이다. 나는 이제야 그날의 엄마를 생각한다. 늘 부족했던 생활비를 쪼개서 딸의 생일 잔치를 열었던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그날의 엄마를 이제야 생각한다.






 생일 잔치 이후로.


 잘생긴 반장과의 특별한 썸은 없었다. 다음달 짝이 바뀌면서는 졸업할 때까지 아니, 대학생이 되어 ‘싸이월드’로 초등학교 친구들을 다시 만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드라마라면 그 뒤 성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며 멋진 어른이 되어 진지한 관계가 되어야하는데 말이다. 현실이란 좀처럼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어주지 않는 거니까. 

 그래도 나는 초등학교 때보다는 발전했다. 안경도 벗고 머리도 기르고 눈썹도 예쁘게 고르고 7센치 하이힐을 신은 나를 보고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용’됐다고 했다. 남자 동창들의 친절함에 조금은 ‘용’이 된 것 같았다. 그날 생일에 왔던 우리반 제일 까불이 말썽쟁이 남학생은 제법 멋진 아마추어 락커가 되어 있었다. 꽤 재수 없던 여자 동창은 멋지게 철이 든 여대생이 되어 있기도 했다. ‘똥순이’라는 별명의 절친은 차를 몰고 왔다. 반장도 동창모임에 나왔다. 반장을 보는 순간 나는 번개처럼 피천득의 ‘아사코’를 떠올렸다. 다시 만난 반장은...슬프게도 키가 거의 자라지 않았다. 얼굴은 똑같은데 나이를 먹었다.


인생이란, 역시 살아보기 전엔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러니,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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