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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12. 2023

서른의 소멸

오랜만에 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술한잔에 기대어 삶을 읊조렸다. 우리가 만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쉬이 묻게 되는 질문은 ‘나이’인 것인가? 그러니까 너희들… 나이가 몇이더라? 

“언니. 저 그래도 아직 삼십대. 윤정부가 만 나이로 통일해주는 바람에 딱 걸쳐서 아직 삼십대.”

양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하는 그녀의 양 손엔 당당한 브이가 그려진다. 

“야. 좋겠다. 우린 이러나 저러나 사십 대인데.”

받아치는 사십 대는 샐쭉거리며 즤들끼리 눈을 맞춘다. 


이제는 만 나이로도 우길 수 없는 사십 대가 되었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눈물로 부르던 삼십 대가 지나고 보니, 뭐 삼십대가 이토록 애처롭나 싶을 정도로 느낌이 더욱 숙연해진다. 첫번째 책에서 흔들리는 사십대 엄마의 마음을 헤아렸던 마음 때문인지, 마흔 그리고 중년의 몸과 마음의 변화가 더욱 애절하게 다가온다. 1박 2일 밤새워 이야기를 나눠도 거뜬했던 체력은 어디갔는지, 동기들과 만났던  그날의 술 한잔과 10시간의 수다는 다음 날 하루종일 비몽사몽간에 헤매게 만들었다. 며칠 동안 이어지는 피로가 확연한 걸 보니, 이제 더이상 밤샘은 안되겠구나. 서글퍼진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수많은 생각으로 잠 못 이루기도 한다. 



인생의 중반부 언저리 어디쯤.

인생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이야기했던 레빈슨(Daniel Levinson)에 의하면, 나는 지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인생의  사추기(思秋期). 청아한 여름햇살로 들어서는 사춘기(思春期)에 빗대어 사추기라 불리는 이 시기에,  질풍노도에 휩싸여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처럼  때론 공허함으로 흔들린다. 나는 지금 어디쯤 걷고 있을까? 내가 꾸려온 삶은 무엇이고, 놓은 삶은 무엇인가? 묻고 또 묻고 싶어진다. 


중년의 문턱에서 편안하게, 느긋하게 사는 삶보다 더 늦기 전에 내달려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은 나를 이 일, 저 일로 재촉하고, 이리로 저리로 흔들어댄다. 인생의 긴 여정 속에서는 겨우 몇 걸음 차이일 뿐인데 …. 젊은 시절, 길게만 느껴졌던 하루가 요즘은 더없이 짧게 느껴져 아쉬움 속에 다급하다. 


아쉬움과 분주함을 담아 바쁜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차창밖을 내다보니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코스모스는 애잔히 흔들린다. 갓길 넘어 누릇누릇 익어가는 가을들판은 보기만 해도 가득하다. 구름한점없이 파란 가을 하늘이 드넓게 펼쳐진다. 가을의 기운을 느끼고 싶어 창문을 열자, 곰살맞은 가을바람이 이내 말을 걸어온다. 


그 어느때보다 지금은, 지금의 나이다운 속도가 필요하다고.

푸르던 청춘, 뜨거운 열정이 때론 가슴 저리도록 그립겠지만

여전히 가슴 뛰지만, 생생 내달릴 수 없어 가슴 시리도록 서글프겠지만

오롯이 뚜벅뚜벅 길을 걸으면 되노라 다독여준다. 


인생의 사추기(思秋期). 

젊음의 끝자락과 늙음의 출발선 사이인 지금.

나는 충분히 아름답다.

달림과 멈춤의 기로에서 천천히 걸어가자고 가만히 다독여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인생 후반기부터다.”라고 말하는 메리 다피츠(Mary d'Apice)처럼,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한 중년의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퇴근길, 빛바랜 초록빛의 바스라진 낙엽과 붉게 물든 단풍 사이를 걷는다. 

여름의 초록은 시들었지만 가을의 붉음이 살아나듯, 인생의 초록이 소멸되었지만 사추기의 열정을 그리며 오늘도 걷는다. 




Life really does begin at forty.

Up until then, you are just doing research.

-Carl Gustav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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