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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ng Jan 14. 2021

뉴욕 그리고 수술실 1

#1. 설렘보다는 아프게 시작했습니다.

#1. 설렘보다는 아프게 시작했습니다.

 

변화를 무서워하던 제가 한국을 등 떠밀리듯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함께 힘들어하던 우리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기구를 던지고 폭언을 일삼고 그런 의사들 옆에서 이제 갓 졸업한 간호사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3년간 단 하루도 아파서 출근 못한 날이 없었고 링거를 맞으면서도 쓰러지면서도 일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습니다. 아파도 아플 수 조차 없는 우리에게 충분한 트레이닝이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배우는 속도가 빠르지 못했던 저는 절망적인 신규 생활을 보냈었습니다. 너그럽지 못한 방장 선생님 밑에서 배울 때면 "이럴 거면 그만둬라" "이것도 모르냐" "공부한 거 얘기해봐라, 노트 가져와라"등의 무시와 관대를 받기 일수였습니다. 기숙사에서 병원까지 운영하던 셔틀버스에 몸을 실을 때면 '다른 차가 와서 콱 박아버렸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지옥 같은 시간들을 보낸 후 선배들과도 친해지고 일도 조금 안정이 되기 시작할 무렵 레지던트에게 일방적인 폭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상기된 얼굴로 씩씩 거리며 제게 비속어를 섞어가며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단순히 그 개인이 이상한 것이라면 절대 떠나지 않았겠지만 레지던트 편을 들어주던 관리자. 제게 등 돌 리던 선배 간호사.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리던 그때의 제 모습. 그때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곳에 남아서는 안되는구나. 이곳은 이런 사람들이 남는 곳이구나. 좋은 선배들도 많았고 친언니 친엄마처럼 챙겨주시던 분들도 많았지만 대한민국 병원의 간호사에 대한 대우는 전혀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 많은 구조적 문제들을 고칠 만큼 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간호사를 하면서 겪은 또 다른 아픔은 바로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었습니다. 저 또한 대한민국 교육 열풍의 피해자답게(?) 초등학교 중학교 때도 나름 성실히 공부하였고 시험을 통해 사립고에 진학하였습니다. 똑똑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계속 노력하였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여 1년 재수까지 하면서 두 번의 수능 끝에 인 서울 4년제 대학교 간호학과에 진학하였습니다. 대학 생활중에도 영어 쪽 경력을 꾸준히 쌓아가며 간호학과의 그 수많은 과제들과 벌서는 것만 같던 실습을 끝마쳤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의사 하나 잡아서 시집가면 되겠네" "아니 언제까지 간호사로 먹고살게" "공부 좀 더 해서 약대 편입하지 그랬어"라는 말들을 들어야 했을까요...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인데요.


 그렇게 저는 무려 신규 간호사 주제에 퇴근 후 몰래 미국 간호사 면허 공부를 하였고 영어 시험을 보고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는 사고를 쳤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뉴욕으로 떠난다는 게 무섭고 걱정도 되었지만 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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