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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ng Jan 14. 2021

뉴욕 그리고 수술실 2

#2. 어쩌다

#2. 어쩌다



한국, 뉴욕 다 합해서 총 8번의 입사 면접을 봤는데 그 모든 곳에서 다 물어본 단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있다면

"왜 간호사가 되었는가." " 혹은 왜 수술실 간호사"가 되었는가였고 그렇기에 이미 모범답안을 만들어 놓은 상태지만 이번엔 더 솔직해보려고 합니다.

재수까지 해가면서 대학 준비를 했지만 두 번째 수능이 끝난 직후까지도 어느 과를 가야 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가고 싶은 학교는 있었어도 가고 싶은 과는 없었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도 모른 채 어느 날 어른이 되었습니다.

수능 성적표를 프로그램에 돌리고 나니 제가 갈 수 있는 학교와 과가 주르륵 나열되었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학교를 고르다 보니 처음으로 간호학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엇을 배우는지도 몰랐지만 부모님과 주위 어른들의 추천에

'그래 어른들 말 들어서 나쁠 것 없겠지' 하는 그 정도 마음으로 지원했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제 선택에 이제 와서 매우 만족을 하고 있고 그래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저는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혹시 이 글을 읽는 갓 어른들이 있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꼭 알고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절대 이 말이 안들리겠지만 학교만큼이나 과도 중요한 선택이 됩니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잘 모르겠지만 안정된 해외살이가 꼭 해보고 싶다면 간호학과에 대해서 고민해 볼 것만큼은 적극 추천해드립니다.


그렇게 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이 들어간 간호학과는 태생이 문과였던 저에게 버겁기만 했습니다.

수학은 좋아했어도 과학은 싫어했는데

생화학, 해부학, 병리학, 약리학... 정신을 차려보니 성적표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습니다.

성적은 둘째치고 학문 자체에 흥미를 못 붙이던 터라 대외활동과 아르바이트에 더 많은 열정을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소소한 영어실력과 큰 열정으로

Ultra Music Festival, World Dj Festivial, 아시아 모델상 시상식 등의 큰 행사에서

의전 통역을 하기도 하고 드라마에서 연기자분 영어 가이드도 하고 동네 영어학원에서 강사도 1년 했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간호사랑은 별 관련이 없겠지 했었지만

의외로 병원 면접들에서 그 경험들을 좋게 봐주시기도 했습니다.



방학 때면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으로 여행을 가서 2달씩 놀다 오고는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안쓰며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 예쁜 바다와 깨끗한 하늘.

그러면서 나도 미국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학부시절 실습을 다니면서 병원에서 간호사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 지를 수도 없이 봐온 터라

정말, 부디, 제발 병원만은 피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학점도 낮은 제가 병원 경력 없이

다른 일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BIG 3 병원 중 학점을 제일 덜 보는 곳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단체 합숙 기간 중에 원하는 부서를 지원했었는데 3교대와 주말 근무를 피하고 싶어서 수술실에 지원했습니다.

수술실에 실습을 나가본 적 도 없고 병원생활 자체에 흥미가 없어서 그때 역시 운에 운명을 맞기는

무모한 짓을 벌였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역시 저에게 최선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지금 Covid 영향으로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몸값이 제일 비싸진 상황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력 있는 수술실 간호사들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매우 높습니다. 수술이란 세계 어디서나 다 비슷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한국에서 특정 수술의 스크럽(Surgeon 옆에서 수술 진행상황을 파악하며 보조하는 것)을 할 줄 아는 것은

미국에서도 똑같이 그 수술 스크럽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영어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모국어가 아닌 이상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수술실의 경우 그 제한이 상대적으로 일하는 것에 피해를 덜 끼치게 됩니다. 경험에서 나온 눈썰미로 Surgeon이 말하지 않아도, 혹은 말하기 전에 필요한 것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혼 안 나기, 화 피하기에 급급해서 제가 이 일을 좋아하는지,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는 채

하루하루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었지만 미국에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배우며 안정적으로 일하다 보니

'맞아. 난 손으로 사부작 거리는 걸 좋아하지. 나는 말을 많이 하기보단 직접 움직이는 걸 좋아해' 라며

이제야 제 일에 대해 정도 붙이고 자부심도 생기는 6년 차 수술실 간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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