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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verselow May 27. 2021

별 이야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별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별은 어린 나의 눈으로 봤을  굉장히 특이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가진 생각들과 정확히 반대되는 특징들을 가진, 어떤 면에서는 조금 "기만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차가운 색인 파란색을 띠는 별이 뜨거운 색인 빨간색을 띠는 별보다 훨씬  뜨겁다는 , 지구에서  때는 별이 반짝거리지만 우주 공간에 나가서 보면 회색 점으로만 보인다는 , 우리가  때는 조그마해 보이지만 지구의 수천, 수만 배에 달하는 크기라는 , 그리고 사실은 고체도 아닌 기체 덩어리라는 것이 어린 나로 하여금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같다. 별을  때마다 누군가가 너희가 알고 있는   거짓말이야, 하고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별은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다. 지구에서 수억 광년 떨어져 있는 것은 기본이고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해 그곳까지 날아갈 수 있게 된다 해도 지나치게 높은 온도와 지나치게 강한 중력 때문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다. 별은 흔히 꿈의 상징으로 쓰이는데, 그 상징을 처음으로 쓴 사람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인간은 평생 꿈을 꾸고 따라서 자신의 꿈을 완벽하게 다 이루기란 불가능하기에 꿈을 반짝이지만 다가갈 수 없는 별에다 비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별은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지구에 사는 한낱 미물인 내가 지구 바깥의 무한한 우주 공간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책과 만화책 그리고 영화에서 본 외계인이 우주의 어느 지점에 실재하는지, 지구와 닮은 다른 행성이 존재하는지, 적색거성인 베텔게우스가 마침내 죽은 별이 된다면 우리는 오리온자리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될지 따위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별은 보면 볼수록 슬퍼지기도 한다. 내가 아무리 궁금해해도 나는 절대 저 별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수억 년, 아니 수십억 년을 살아가는 별에 비하면 나는 우주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눈 깜짝할 사이에 태어나고 죽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래도 나는 별을 좋아했다.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수 있어서 좋았고, 바라보다 보면 평소에는 하지 않을 생각들을 하게 해줘서 좋았고, 심지어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슬퍼진다는 것까지도 너무나 좋았다. 별은 내 인생 최초의 짝사랑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는 별을 본 기억이 없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부터 십년 넘게 살아온 동네를 떠나서 서울의 불야성 한복판으로 이사를 왔고, 지금까지도 그곳에 살고 있다. 이곳은 너무나도 밝아서 밤에 별이 한 개도 보이지 않는다. 간혹 가다 공기가 아주아주 맑은 날에 가장 밝은 별들 한두 개가 보일 뿐이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아직도 별을 볼 수 있을까? 사실 그것도 의문이기는 하다. 8년 동안 서울은 더 밝아졌고 공기도 더 탁해졌으니까 그곳에서도 더 이상 오리온자리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게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더 이상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어릴 때는 이른 저녁에 할 일을 다 끝내두고 책을 조금 읽다가 어두워지고 별이 뜨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보고 있을 수 있었지만, 커버린 나는 할 일이 많았다. 중학생, 고등학생 때의 나는 어릴 적에 별을 바라보던 그 시간을 학원에서 그리고 집에서 공부하면서 보냈다. 학원의 창문은 너무 작고 뿌얘서 도저히 별이 보이지 않았고, 대치동은 별이 보이기에는 너무나도 헤드라이트가 많은 곳이었으며, 내 방 창문에는 거의 항상 커튼이 쳐져 있었다. 커버린 나는 우주에 대한 책이나 별보다 더 관심을 많이 가질 만한 것들을 찾아냈고, 별은 내 머릿속에서 쫓겨나다시피 했었다.


  이제는 별을 바라보던 기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이건 오리온자리, 저건 북두칠성 하고 가리키며 찾던 것도 모두 희미해져서 지금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자리를 하나도 찾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우리 동네에는 올려다볼 별조차도 없다는 것은 덤이다. 그렇기 때문에 별이 꿈을 상징한다는 말을 곱씹어볼수록 씁쓸하기만 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만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나만이 가진 그 광채는 나로부터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이제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반쯤 정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어른일 뿐이니까.


  언젠가는 꼭 천문대에 가보고 싶다. 불빛이 없고 공기가 맑아서 하늘을 수놓은 별이 잘 보이는 산 위의 조용한 천문대. 그곳에 가면 별, 아니 별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내 빛은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 은은해진 것일 뿐이라고. 지구에서 보면 적색거성인 베텔게우스가 젊은 별인 시리우스보다 어두울지라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밝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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