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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우 Jul 28. 2018

나는 심플하다-장욱진

철수의 그림이야기






네가지 키워드


#크기와 압도감  #다양한 변주

#일상과 이상   #진실과 단순함

 



<나무와 새 Tree and Bird> 캔버스에 유채 , 34x24cm, 1957
<가로수 Roadside Tree>캔버스에 유채, 30x40cm, 1978

 

 

#크기와 압도감

 

큰 규모가 가져다주는 압도감은 지극히 당연하다. 미술관에서 맞닥뜨리는100호, 200호 크기의 대작들이 주는 감동은 잊을수 없다. 키를 훌쩍 넘는 수미터에 이르는 설치작품은 또 어떠한가. 확실히 큰 작품은 경외감을 비교적 쉽게 일으킨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작품들 또한 그들만의 세밀하고 섬세한 맛을 지니고 있다. 예술적 역량과 감동이라는 기준에서 비교를 하자면 그 어느것도 서로의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각자가 각자의 고유의 영역을 견고히 지키고 있달까. 재작년 상해 비엔날레에서 우연히 본 인도작가의 그림이 떠올랐다. 화가는 그림을 엄지손톱만하게 그려 벽에 숨겨놓았다. 관람객들은 그의 그림을 코가 벽에 닿을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야만 비로소 자세히 볼 수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작품들을 하찮거나 가볍다고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보물찾기 같은 놀이와 비슷하게여겨 무의식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참여 과정에서 오는  만족감과 더불어 세밀하고도 익살스럽게 묘사된 그의 그림들을 발견했을땐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국 근현대회화사에서 빼놓을수없는 중요한 작가 장욱진, 그의 명성에 비해 그가 그린 작품들의 크기는 너무 작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 처럼 그의 작품들이 가져다주는 감동은 결코 작거나 적지 않았다. 장욱진의 그림을 보다 보면 그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핵심을 묘사해내는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대충 그린 것 같지만 있을것은 다 있어야하는 중국의 사의화写意画와 많이 닮아있었다. 그의 화풍은 큰 화폭보다는 오히려 작은 크기의 캔버스가 더 알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담하지만 실속있는 알짜배기 그림이라고 표현하고싶다.  

 





<독 jar> 캔버스에 유채 , 34cm x 24cm,1957
<자화상 Self-portrait> 종이에유채, 14.8x10.8cm, 1951



 

#다양한 변주

 

화가는 일본 유학시절부터 대학교 전통 커리큘럼을 따라가기보다는 작가고유의 개성을 발견하고 변화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화가는 스스로 무언가에 익숙해지는것을 끊임없이 경계했다고 한다. 이러한 화가의 신념은 예술창작에 있어서도 다양한 변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유화외에도 갱지에 매직마커를 써서 그림을 그린다든지, 수묵으로 가볍게 그린 먹그림을 시도한다든지, 판화라든지, 도자기 위에 그림을 새기는 시도들을 했다.    

 

 

<무제> 갱지에 매직, 36.2x24.2cm, 1975, 개인소장

 

<쌍수(雙樹), 쌍희(雙喜)>1982, 한지에 수묵, 68.3 x 35.2 cm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전> 전시전경

 

 

 

 

 

 

 

 

#일상과 이상

 

화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또 정감가는 소재들을 작품속에 많이 담았다. 집, 아이, 동물들, 그리고 나무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일상적인 소재들은 보는이로하여금 안정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화가의 그림은 단순한 일상의 기록만이 아니라 좀더 내면의 깊은 무언가와 닿아있다. 이는 신실한 불자로써의 불심에서 기원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화가의 본래 사색적인 성격과 연관이 있을 수 있겠다. 캔버스에 그려진 친숙한 일상적 소재들은 이상적 세계를 꿈꾸고 그 안에 살고 있다. 그래서 장욱진의 그림은 얼핏보면 아이들이 붓으로 장난친것 만 같은 정도의 수준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본질을 포착하고 그것을 명료하게 표현해낸 높은 내공의 그림이라는 것이다. 일상(日常)과 이상(理想)을 모두 담아낸 그림, 장욱진이 화가로써 사랑받고 인정받는 이유라 생각한다.      

 

 

<두 얼굴> 캔버스에 유채, 35x28cm, 1959, 개인소장




#진실은 단순한 것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실은 일상의 기록과 같은것이고 진실은 좀더 일상을 초월한 것이다. 가령 화가가 자주 그린 ‘소’를 예를 들어보자. 확실히 그 ‘소’는 소의 사실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명백하게 그것은 ‘소’다. 그리고 화가의 제작의도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주연배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예술에서있어서 만큼은 ‘사실’보다 ‘진실’이 더 우세하다. 그리고 장욱진의 그림속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미술은 가장 보편적인 언어다. 누구하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누구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며, 누구도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화가가 생각하기에 미술은 누구와도 소통할수 있는 보편적인 수단이었다. 어렵지않은 것이며, 화가만의 소유물도 아니었다. 화가는 이런 미술이지닌 보편성과 소통적 능력에 주목했고, 이를 통해 진실을 표현하고자 했다.

 

 화가는 자주 “나는 심플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심플함은 수수함, 소박함, 조촐함, 성실함, 천진난만함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림속에서 이러한 경향은 대상들의 묘사의 간략함, 화면구도의 단순함등으로 나타난다.  

 

종합해보자면, 화가는 미술이라는 수단을 통해 단순하게 대상을 묘사함으로써 진실에 다다르려고 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화가의 그 목적과 결과물에 충분히 납득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단순한 진실의 묘사, 혹은 단순하게 묘사한 진실은 화가가 평생 추구해왔던 화풍과 예술사상을 종합할 수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산>캔버스에 유채, 38x22.5cm, 1986,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무제>캔버스에 유채, 45.7x35.5cm, 1988,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모기장 Mosquito Net> 나무판에 유채, 21.6 x 27.5cm, 1955







이미지출처 www.mu-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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