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의그림이야기
중국화는 산수화(山水画), 인물화(人物画), 화조화(花鸟画) 세가지 큰 장르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 산수화는 북송시대부터 의식이나 작품상에 있어 단연 인물화를 대신하여 1천여년동안 중국회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다음과 같다. 산수화의 기교는 오랜 숙성기간을 거쳐 오대에 이르러 완전히 성숙되었다. 그러므로 북송시대에 이르러 이 기교가 완전히 성숙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당대에 이르기까지 ‘회화’는 정치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조정의 취향은 무의식중에 회화를 ‘산수화, 풍경화’방면으로 발전하도록 제약했다. 당의 천보天宝이후에는 계속되는 상란으로 인하여 황제의 회화에 대한 흥취가 크게 감소되었다. 산수화의 경우는 완전히 정치영향을 벗어난 고인일사高人逸士,예를 들면 10세기의 형호, 관동, 동원 ,거연, 이성, 범관 등이 완성하였다. 즉 정치권에서 벗어날수록 자연에 더욱 깊게 기탁했으며, 산수화에 표현된 의경이 고상할수록 형식도 더욱 완전해졌다. 더불어 동양의 대표 미학관념이라 여겨지는 장자의 ‘물화’의 경지 또한 산수화의 의경과 깊게 맞닿아 있었으며 서로 상호 발전을 해나감으로써 산수화는 중국화중에서도 큰 위치를 차지하게 된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장자의 허정한 마음으로부터 말미암은 주객일체의 ‘물화’의 의경이 항상 이 자연을 상징으로 삼고있다는 것인데, 예를들면 그는 일찍이 나비로써 자기 자신의 상징으로 삼기도했다.”
“장자가 추구하는 바의 것, 즉 모든 위대한 예술가가 추구한 것은 바로 자기가 편안히 나아갈 세계를 완전하게 하여 자기의 인생이나 정신상의 부담으로 하여금 해방을 얻게 하는 것이다.”
“산수화의 미학은 종합하면 위진시대에 시작된 인물화의 전신사조(转神写照)-기운생동-에 대한 자각이라고 할 수있는데, 비록 장학의 영향을 받은것이라 할 지라도 장학의 예술정신은 결코 인물을 대상으로 삼는 회화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자연’, 특히 자연의 산수는 바로 장학정신의 자연스러운 귀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산수화 속의 산세는 거세다. 점경으로 묘사된 인물과는 비교될수없을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의 봉우리와 언덕들은 자연의 거대함과 위대함을 한번에 느끼게끔해준다. 그러나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압도감에 비해 산수화속의 인물이나 그 그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한결 가볍고 또 자연스럽다.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가 프리드리히가 그린 작품들을 살펴보면 신의 자연에 대한 섭리를 담은 경외감이 느껴진다. 거대한 자연풍경에 비해 인간을 작게 그린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자연의 압도감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숭고’의 미라고 불리는 이 작품들에 담긴 미학들은 서양풍경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자연을 정복하거나 또는 자연에 굴복하는것, 비교적 이분법적인 태도로 자연을 대하는 서구미학과 비교하여 볼때, 동양의 자연에 대한 관점은 사뭇다르다. 거대한 산봉우리 일지라도 가파르고 험준한 산맥일지라도 그안에서 머무르는 인물들은 자연스럽다. 산과 그 속의 인물들은 너무나 평화롭게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장자의 현학이 산수화가 추구하는 미학과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이룩해낸 의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대명화기』저자 장언원은 산수화의 변화는 오도현에서 시작되고 이사훈이소도에게서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이사훈 이소도 부자는 금벽과 청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색채의 아름다움을 이루었을뿐만 아니라 실제로 훗날의 준염의 선구자가 됨으로써 많은 산수화의 결점들을 보완해내었다.”
“그러나 이사훈은 산수화의 형상을 완성하였지만, 그가 사용한 채색은 중국산수화를 성립시켰던 장학 사상의 배경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색채에 있어서 수묵으로써 청록을 대신하는 변화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게 되었던 것으로 산수화는 채색상에 있어서 자신의 성격에 부합되는 쪽으로 중대한 변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수묵의 색은 꾸미지 않아도 현화玄化의 모색 母色에 가깝다. 이로부터 채색에 있어서 수묵이 가장 ‘현’에 가까운 소박한 색이며, 모든 색을 초월한 색色의 모母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산수를 조망할 때 산수의 각종 채색은 모두 혼합되어 현색이 되기 때문이다."
" 즉, 수묵은 운용상에 있어서 심도있는 변화를 부여함으로써 그림으로 하여금 신선하고 활발한 생명감을 갖출수 있도록 해준다.”
“무릇 산수를 그리는 데는 법식이 있으니 구도하고 펼쳐내기를 대작으로 하더라도 쓸데없이 남아도는 곳이 없어야 하고, 축소하고 줄여서 소폭으로 하더라도 ‘짜임새는 적지 않아야 한다.”산수를 보는 데도 또한 법식이 있으니 ‘임천’ 즉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마음으로 임한다면 산수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요,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안목을 가지고 임한다면 그 가치는 낮아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마음껏 완유하고 마음껏 본 산수는 모두 “흉중에 역력히 늘어서게 될” 뿐만 아니라 “산수의 뚜렷하면서도 넓고 아득한 아름다운 풍경이 눈과 마음속에 저절로 떠올라서 그림으로 그려지게 된 경지” 이것이 바로 주객합일의 상태이다.
“산수의 모양은 기상과 형세에 따라 여러가지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뾰족한 것은 ‘봉’이라 하며, 평탄한 것을 ‘정’이라 하며, 둥근 것을 ‘만’이라 하며, 서로 연결된 것을 ‘령’이라 하며, 구멍이 있는 것을 수(山洞)라 하며, 깍아지른 절벽을 ‘애’라 하며, ‘애’의 중간이나 애의 아랫부분을 ‘암’이라 한다.
길이 산 속으로 통해 있는 것을 ‘곡’이라 하며, 그것이 막다르게 되어 있는 것을 ‘욕(산골짜기)’ 이라 한다. ‘욕’속에 물이 들어 있는 것을 ‘계’라고 하며, 산이 물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간’이라 한다.”
“산을 그리는 데는 삼원법이 있다. 산 아래에서 산마루를 쳐다보는 것을 ‘고원’이라 하고, 산 앞에서 산 뒤쪽을 엿보는 것을 심원,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다보는 것을 평원이라고 한다. 고원의 색은 청명하고 ,삼원의 색은 어둡고 흐리며, 평원의 색은 밝기도하고 어둡기도 하다. 고원의 ‘세’는 우뚝 솟아있고, 심원의 ‘의’는 중첩되어있으며, 평원의 ‘의’는 충융하고 멀고 흐릿해보인다. 인물을 그리는 데도 삼원법이 있는데, 고원에 있는 사람은 명료하게 그리고 심원에 있는 사람은 작고 세심하게 그리며, 평원에 있는 사람은 해맑게 그린다.”
-곽희『임천고치林泉高致』中-
이번 글에 관한 대부분의 내용은 서복관 선생의 『중국예술정신』에서 발췌한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산수 ‘자체’는 기억력과 개성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 의해서 자유로이 발견 될 수있다.” "산천의 형질상에서 그것이 정신세계로 나아가는 것임을 볼 수 있으며, 유한한 것으로부터 무한으로 통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라는 책의 또다른 문구처럼 무한한 형태의 가능성을 지닌 산수로부터 우리는 예술의 변화무쌍한 형식적 아름다움을 찾을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작품을 감상할 때 산수화 속에 담긴 동양의 고유한 미학 정신을 아름답고 영험한 산줄기로부터 산세로부터 다시금 느낄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徐复观『中国艺术精神』,商务印书馆,2010
2018년 4.19~5.4일 절강미술관 주최 중앙미술학원贾又福工作室师生优秀作品全国巡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