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의그림이야기>
오늘 소개해드릴 화가는 중국 근현대 화조화의 대표화가이다. 앞서 살펴본 사의화조화 대표화가 반천수 선생과는 달리 섬세하고 정확한 묘사를 강조하는 공필화조화의 대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화려한 색채와 세련된 구도를 늘 시도 했던 화가였다. 미술교육가로서도, 화가로서도 늘 성실하고 적극적인태도로 중국미술계에 큰 공헌을 한다. 화가의 이름은 진지불이다.
화가는 1896년 절강성 여요현에서 태어났다. 진지불의 고향은 수공업으로 유명한 곳 이었다. 어릴적부터 수공예용 도안들을 자연스럽게 접한 그는 곧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만다. 그리고 1914년 18세에 절강공업학교 기직과에 입학한다. 1917년 당시 도안교재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학생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 새로운 도안강의집을 편찬한다. 1918년 더 많은 시각자료들과 기술을 접하기위해 일본 국립동경미술학교 공예도안과 유학을 떠난다.
1924년 귀국한 그는 상해로 건너가 공예사업을 시작하지만 얼마되지 못해 문을 닫고 만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여러 대학에서 교직생활과 창작에 집중한다. 1929년 그간에 정리해둔 자료를 모아 도안문양자료집인 <도안>을 출간한다. 1942년이후로는 국립중앙예술학교 교장, 중앙대학 교수, 남경예술학원 부교장등을 역임한다.1961년 가을 <중국공예미술사> 교재 편찬을 준비한다. 중국 우정국에서 그에게 우표 제작을 의뢰한다. 1962년은 정말 그에게 있어서 바쁜 한 해였다. 결국 무리한 그는 병세 악화로 인해 1월 15일 남경에서 과로로 사망한다.
진지불 선생의 예술을 세가지 키워드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첫번째 키워드는 ‘공필화조화의 부활’ 이다.
중국 화조화는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상고시대부터 이미 꽃과 새모양의 기물장식이 있었다. 당나라 시기에는 꽃과 새가 회화의 주요 소재가 된다. 화조도가 독자적인 한 장르로 분류된 것은 오대에 이르러서였다. 이 시기의 대표화가로는 황전黃荃부자. 서희徐熙가 있다. 그들은 정교하고도 사실적인 높은 수준의 화조도를 그렸다. 특히 서희는 꽃과 새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추구했다. 붓 끝을 가늘게 하여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굵고 짙은 먹색을 임의로 사용하여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후에 서희의 화풍은 공필화조와 사의화조 두 유파로 분리되어 발전해갔다.
이 두 유파는 형식과 수법이 서로 다르지만 내용상으로는 모두 '뜻을 표현하는'공통점이 있다.공필화는 정교하고 세밀한 붓의 묘사에 중점을두어 사의 하는 것이고, 색을 나타낼 때 붓의 사용은 능동적이고 생동적일 것이 요구되었다. 사의화는 붓으로 그리되 그 뜻 표현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함부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화가의 뜻에 따라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 두 유파는 각기 발전하면서 수준이 비슷했다.
그러나 후세의 문인들은 그림을 그림에 있어서 뜻의 표현에만 치중하고 정성 들여 그리는 것을 경시했다. 색보다 먹으로 그린 그림을 중시하여 색을 화려하게 쓰는 화조화 등이 오랫동안 냉대를 받아오게 되었다. 진지불은 고대의 도안을 연구하는 중에 많은 공필화조화를 접했다. 정교하고 자세한 선묘사와 생동적인 색감의 공필화조화는 진지불의 마음을 크게 사로 잡았다. 그는 사의화조에 묻혀 오랜동안 경시되던 공필화조를 다시 살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화가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확고한 창작원칙에 따라 작업을 진행한다.
두 번째 키워드는 ‘확고한 창작원칙’이다.
진지불은 공필화조화 창작을 할 때 첫번째로 그 의미를 자아내는 데 매우 신중했다.
그는 그의 그림이 단순히 무미건조하고 생명감없는 도안에서 끝이 나길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작품속 대상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생기발랄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늘 그림을 그리기 전에 뜻을 먼저 생각했다. 석류나무 아래에서 새끼들을 돌보는 암탉,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꿀벌, 봄날의 목련꽃, 여름의 연꽃, 가을 국화, 겨울의 매화가 서로 달랐으며, 모두가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웠다.
두번째로 그는 사생을 중시했다. 그의 그림이 독특한 생명감을 띄고 있는 이유는, 그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그림속에 적극 반영했기 때문이다. 화가는 작품연구를 할 때 많은 도안집을 참고 하기도 했지만, 직접 자연에 나가서 보았던 것을 자신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세번째로 화가는 작품이 자연스럽고도 재미있기 위해선 ‘구도’를 신경써야한다고 생각했다. 화가는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의 전체적 예술 효과를 먼저 고려한후에 붓을 들었다. 도안학에서 중시하는 균제, 평행등의 규칙들을 화조화의 구도에 적용시켰다.
더불어 그림속에서 주요대상과 부속대상과의 차이, 배치의 밀도, 크기, 공백처리등을 고려했다. 공필화조화는 섬세하고 꼼꼼하게 그리는 것이 특징인 만큼, 한치의 오차도 허용할수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림의 구도를 놓고 항상 반복해서 검토했다.
네번째로 그는 색채연구를 중시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색이 유난히 아름답다. 또한 부드럽고 소박하기 까지 하다. 그리고 화면속 대상들은 모두 다채로운 색채를 가지고있다. 또한 자연스런 색조변화로 인해 입체감을 띈다. 화가는 “한 그림에서 색대비만 있고 어울림이 없으면 그림이 어수선하고, 어울림은 있으나 대비를 이루지 못하면 평범하고 재미가 없다. “라고 말했다. 이렇듯 화가는 그림속 대상들의 색채 대비와 조화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떤 평론가는 “그의 그림이 몇번을 반복해서 보아도 질리지 않는 이유는 색조절에서 탁월함을 발휘했기 때문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필화가는 늘 침착한 태도를 유지해야함을 강조했다. 공필화조화 창작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긴시간 그림에 매달려야만 완성해 낼 수 있다.
세번째 키워드는 ‘도안연구’다.
화가는 ‘도안’연구를 굉장히 중시했다. 도안은 디자인의 다른 말이기도 하며, 모든 시각예술 영감의원천이 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화가는 수공업으로 유명했던 고향에서 ‘도안’의 중요성에 대해 처음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일본유학시절 중국전통도안이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것인지를 일본인 교수의 지도를 통해 알게 된다. 그 이후로 그는 평생동안 도안연구에 열정을 바친다.
화가는 자신이 연구하는 도안에 반드시 민족적 특색이 짙으면서도, 참신한 소재를 등장시키려 했다. 더불어 실용과 미감 두가지를 고려한다. ‘실용’이라는 개념은 공예미술의 핵심이며 순수미술의 새로운 생명줄과도 같았다. 화가는 이전에 "도안 연구는 반드시 실용과 미 라는 두가지 요소에 공을 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대미술 ‘디자인’에서 제일 강조하는 실용과 아름다움의 조화를 이미 진지불은 중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화가는 이러한 모토를 가지고 평생이라는 시간동안 《图案ABC》도안ABC、《图案构成法》도안구성법、《中国陶瓷图案概观》중국도자도안개관,《表号图案》표호도안,《图案教材》도안교재등 도안서적 출간에도 힘을 쓴다.
진지불선생은 사람의 본성속에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표현의 욕구가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중국화조화가 천년이상의 긴 시간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의 치밀한 창작원칙아래 만들어진 작품 속 새와 꽃들은 견고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은 공필화조화의 깊은 맛을 잘 보여주고있다고 생각이든다.
이미지출처-Baidu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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