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이별, 상실은 고통이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이었다
부암동에 신혼집을 자리 잡고 이 공간의 매력에 알아갈 때쯤, 부산 친정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믿어지지 않았다. 전날 밤에도 아빠와 연락을 했었다. 아빠는 결혼하는 딸에게 당신이 뭘 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 “잘 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빠는 우리에게 인사도 없이 잠을 자듯 그렇게 가셨다.
나와 가족의 장례식을 생각만으로 수십 번은 해본 것 같다. 내가 했던 명상의 한 방법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 마음을 버리기 위함이었다. 실제와 같은 마음으로 하기 위해 생각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죽고 실제처럼 장례식을 해봤다. 교통사고로 죽어보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높은 건물에서 물건이 떨어져 죽어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죽기도 했다. 가족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갑자기 중병이 들어 돌아가시기도 하고, 연세가 지긋해진 부모님이 마당에 앉아 하늘을 보다가 잠이 들 듯 돌아가시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생각으로 장례식을 열고 죽음을 받아들이면 스스로에게 남아 있는 마음과 부모님께 못했던 말을 꺼내보는 거다. 그러면 마음 깊숙이 있던 여러 가지가 튀어나온다. 기대와 원망, 사랑, 후회 등등 생각으로 하는 것인데도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 순간에 실제 일어난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후회도 많이 했다. 반복하다 보면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인정한 뒤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부모와 여러 갈래로 이어져 있는 마음 중 일부를 끊어내기도 했다. 때때로는 그렇게 울고불고 눈물 콧물 다 짜낸 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사랑해’하며 낯간지러워 평소에 못 했던 말도 여러 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에서 했던 장례식은 생각으로 했던 것이고, 눈을 뜨고 나면 부모님은 늘 그 자리에 계셨다. 이제는 눈을 떠도 볼 수 없는 실제 일어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떤 죽음이든 죽음은 죽음이다.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죽은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떠남과 이별, 상실은 늘 그렇듯 어디 한 부분을 떼어놓는 것 같은 고통이었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이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비명이 새어 나왔다. 곧 결혼인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었고 아이를 낳으면 같이 여행도 가고 싶었다. 아빠와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불현듯 화도 났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 인사할 시간도 주지 않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아빠의 죽음이 아빠의 의지도 아닌데 마치 아빠 탓인 듯 그렇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이내 아빠라는 한 사람의 인생이 그저 안쓰러웠다. 애달프기만 했다.
그렇게 결혼식을 앞두고 아빠의 장례식을 했다. 아빠는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단지 몸이 차가웠다. ‘아빠 일어나요. 나 왔어’ 하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데 그곳에는 이미 아빠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아빠 손을 잡으며 ‘사랑해’라는 말만 계속했던 것 같다. 뜬눈으로 잠을 자고 손님을 맞이했다. 장례식에 와준 고마운 분들에게 실없는 소리를 그렇게 했다. 난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떠들었던 것 같다. 나를 본 사람들은 ‘속없는 사람처럼 웃고 떠들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