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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철 Feb 01. 2021

A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월요일 오후의 공원에 구겨진 비닐봉지가 바람에 실려 다니고 작은 새들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어제는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웃음과 입맞춤으로 공원을 채웠다. 오늘은 그들이 쏟아낸 비닐과 플라스틱과 토사물과 끈적거리는 것들로 공원을 채웠다.

청소부 한 명이 돌덩이 같은 손으로 담배 끝을 비벼 끄고 일을 재개한다.

쓰레기 수거차량에 담겨 쓰레기 산으로 운반될 쓰레기 더미가 보인다. 어떤 것은 썩고 부풀어 가스를 내뿜다가 씨앗을 품을 것이고, 어떤 것은 홀로 (거의) 영겁을 견딜 것이다. + 높은 공장 천정 아래로 거대한 기계들이 일정한 박자로 신품을 출산하는 모습이 쓰레기 산에 겹쳐 보인다.

무한이란 개념에 반복이 더해져 현기증을 유발한다. 그릴 수 없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본다. 속이 메스껍다.


 

 다음 날,  공원의 오후는 어둡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벤치에 앉아 다가오는 시간을 응시한다. 몇 명의 남자와 여자는 뱀처럼 미끈거리는 몸을 치대며 주어진 시간에 집중한다. 공원의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상관하지 않는 시간을 홀로 지켜보는 일은 친구의 비밀을 발설하는 것만큼 짜릿하다.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불어 작은 나무들과 이름 모를 풀이 흔들린다. 바람이 다 지나갔다. 그리고 공원 구석에서 소리가 들린다. 긴장한 귀를 기울인다. 

‘부스럭. 삭삭 부스럭. 삭’ 

쥐? 

으. 몸이 부르르 떨린다. 땅바닥에 -떨어진- 돌을 주워 소리가 나는 곳으로 던져본다.

‘툭’ 돌멩이가 떨어지자 소리가 멈춘다.

그대로 서서 수풀을 응시한다.

‘부스럭. 삭. 부스럭 삭삭’

다시 소리가 시작된다. 이번엔 땅바닥에 -떨어진- 긴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수풀에 다가가며 생각한다.

‘뱀?’ 

가까운 집중력과 조심스러움이 하나 되어 수풀로 다가간다.  긴 막대기로 수풀 가장자리를 힘차게 때려본다. 

-…

소리는 다시 소리를 멈춘다. 이미 어둠이 가로등 빛 주위로 몰려와 있다. 모두 어디로 가버렸다. 미지근한 공포가 끓어 올라 궁금증이 팽창한다.

가로등이 깜빡거린다. 날벌레들이 빛 주위로 엇박자 비행을 한다. 

휴대전화기로 수풀을 비춘다. 다시 소리가 난다. 뭔가가 있다. 더 가까이 다가간다. 소리가 더 커진다. (그런 거 같다) 몸이 두근거린다. 최악의 경우가 벌어지기 전 주변을 둘러본다. 입 주변으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린다. 차가운 안개가 가득하다.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에는 똥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었다.  멀지 않은 과거에 사람들은 그곳에서 빨래를 하고 낚시를 하고 몸을 담그고 물장구를 쳤을 것이다. 우리는 누릴 수 없는 것. 봄이 오면 썩은 개천 바닥을 뚫고 파릇한 새순이 공평하게 물 위에 떼 지어 앉았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개천은 누런 거품과 풀어놓은 계란 같은 것들로 가득했다. 썩은 것은 단일품목이 아니었다. 개천에 흐르는 검은 액체에는 온갖 것들이 섞여 뒤엉키고 부풀고 녹아내려 솟아올라야 할 것들은 피어오르고 가라앉아야 할 것들은 자리를 찾아 뿌리박았다. 여름 아침저녁의 눅눅한 바람에 실려온 개천의 썩은 내는 온 동네를 진동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루 이틀 사흘. 하늘은 멈추지 않는다. 퍼부어라. 전부 휩쓸어 가버려라. 개천이 차오르고 물살이 거세지고 검은 물은 생명의 흙탕물이 되어 넘실대며 흘렀다. 마음이 소리친다.

비가 그치고 하루 이틀 사흘.

개천은 이전의 색으로 돌아와 이전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길게 자라난 물풀들이 옆으로 누웠고 아이들 몇 명은 개천가에 쪼그려 앉아 장난을 치고 있었다. 

도저히 내려갈 수도 없고 내려가고 싶지도 않은 곳에서 아이들이 꿈틀대며 깔깔 웃었다.  

시체. 아이들은 아직 부풀지 않은 고양이 시체를 막대기로 쿡쿡 찔러대며 웃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죽어있는 고양이 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자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그놈은 더 힘차게 돌려대다가 시체를 개천으로 휙 던져버렸다. 

‘철퍼덕’

목이 꺾인 고양이 시체가 개천 한가운데 떨어져 반쯤 가라앉았다.

아이들은 주변에 떨어진 돌멩이를 주워 죽은 고양이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반쯤 가라앉은 고양이 주변에 돌이 떨어지자 실지렁이 같은 이물질이 물 위로 퍼졌다.

-뭘 봐!

돌을 던지던 아이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온몸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뭘 보냐고, 이 새끼야

목소리가 더 커지고 아이들이 더 커졌다.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더러운 개천에 반쯤 가라앉은 죽은 고양이 옆으로 빨간 파프리카가 떠내려 갔다.  아이들이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빨간 고양이 한 마리가 다리에 몸을 비비며 주변을 맴돌았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더 빨리 커지고 있었다.


 

입 주변을 손으로 쓰윽 닦는다. 뜨거운 것이 손등에 묻어난다.  

수풀 속 소리는 멈췄다. 수풀을 어둡게 비추는 휴대전화 뒤로 더 깊은 빛이 어둠의 끝에서 반짝인다. 덩어리 하나가 꿈틀거린다.  고양이다. 반짝이는 눈동자 아래에 죽은 쥐 한 마리가 물려있다. 

-아저씨!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고양이는 사라진다. 땅이 축축하다. 냄새가 나는 검은 물이 땅을 적시고 있다.

아이 하나가 돌덩이 같은 손에 돌멩이 하나를 들고 서있다. 

-아저씨 코에서 피가 나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이를 바라보다  손등으로 코를 훔친다. 뜨거움이 손등을 적신다.

-이게 아저씨를 지켜줄 거예요. 아니면 콧구멍을 막던지.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돌멩이를 건네고 질퍽거리는 흙길을 가로질러 사라진다. 


 



구름 밑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쏟아진 코피가 얼굴과 베개에 범벅이 되어 굳어 있었다. 젠장. 담배를 피우고 어제 만난 A를 떠올렸다. 

한마디를 못하고 쩔쩔매다가 집으로 돌아온 일이 후회스러웠다. 오늘 저녁에는 꼭 전화를 걸어보리라. 하지만 결국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옷을 입고 공원으로 향한다. 비가 내린다. 공원엔  아무도 없다. 바람이 분다.  돌멩이가 떨어져 있는 흙길이 질퍽인다. 

수풀 속에서 소리가 난다.

고양이가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A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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