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소화불량과 역류성 식도염 정도는 누구나 달고 사는 거니까.
게으름과 우울증의 경계선에 식욕부진이 슬그머니 잠입했지만 문도는 여전히 빠르고 깊게 잠들어 긴 꿈을 꾸었다. 해가 뜨고 개들이 짖고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화장을 하고 출근을 하고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고 또 다른 생명이 죽음의 문을 두드리는 그 시간에 문도는 이불을 덮고 꿈을 꾸었다.
“문도야! 일어나 밥 먹어”
문도의 방문 틈으로 엄마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귀찮다. 꼭두새벽부터 밥은 무슨 밥이냐. 핸드폰 시계는 오후 1시 9분을 가리킨다. 입안이 마르고 목구멍이 들러붙은 기분이다. 수분 보충을 위해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려 하지만 온몸이 이틀 지난 찰흙같이 딱딱하다. 맥박 소리가 들리고 이불속은 따듯하다. 눈을 감아본다.
일그러진 천장의 하얀 벽지가 바랜 걸까 아니면 위에서 물이 샌 걸까. 지금 당장은 알 길이 없다. 눈알이 움직이지 않지만 방구석 모서리에서 어떤 것이 생겨나고 있음을 (본다). 발끝에 축축한 기운이 닿는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풀 비린내가 피어오른다. 이상하다. 방구석에서 생겨난 것이 것이 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불이 습해진다. 천장의 벽지가 젖고 부풀어 올라 터지고 찢어진 틈으로 작은 촉수가 꿈틀거린다.
“아들! 밥 먹으라고!”
방문이 열렸다.
“아우 냄새. 얼른 일어나서 창문 좀 열어!”
“알겠어요…” 문도는 힘겹게 이불을 걷고 일어나 창문 앞에 섰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벌레들은 땅으로 숨고 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할딱거렸다.
“너 돈 좀 있어?” 담배 끝을 잘근 씹는 신중의 입술이 허옇게 부르터 있었다.
“왜?” 문도도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빼냈다.
“일이 좀 있어서 그래” 요즘 들어 부쩍 살이 빠진 신중의 목덜미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그러니까 왜?”
“아이 씨불. 그런 일이 좀 있다고 새끼야. 돈 좀 있어?” 신중은 숱 없는 눈썹을 추켜올리며 급하게 담배를 빨았다.
“돈? 없는데? 야, 근데 나 요즘 몸이 좀 이상하다.” 납작한 문도의 콧구멍 틈으로 담배연기가 빠져나왔다.
“아 나 이 개새끼. 학교도 안가, 일도 안 해. 맨날 집에서 뭐 하는 거야?” 신중은 검지 손가락으로 담배 끝을 털었다.
“그러는 너는 뭐하는데?”
“됐어. 이 새끼야. 돈도 없는 새끼가. 크헉. 퉤!” 신중은 뱃속 깊이 뿌리내린 가래를 뽑아 올렸다.
“야, 근데 나 진짜 몸이 좀 이상해. 속이 안 좋아서 그런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신물이 올라와서 목 구녕이 따가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문도가 앓는 소리를 했다.
“니가 잠을 못 잔다고? 지랄이다. 맨날 누워있는 새끼가 무슨 잠을 못 자 잠을. 새끼야, 일찍 좀 쳐 일어나서 노가다라도 뛰라고.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그리고 그거 하잖아? 잠 졸라 잘 와. 소화도 졸라 잘되고. 크흡, 퉤!” 신중은 다시 한번 가래를 모아 바닥에 뱉어냈다.
“맥주나 마시러 갈까?” 문도의 납작한 코가 벌렁거렸다.
“돈은?” 신중의 시선이 문도의 벌렁이는 콧구멍에 멈춰 섰다.
“알겠다. 간다.” 문도의 콧구멍이 작아졌다.
“가라. 나도 가련다.” 신중은 자리를 털고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하늘은 파랗고 새들은 고운 액체를 흩뿌리는 나무에 앉아 땅으로 똥을 떨궜다. 팔자걸음으로 멀어지는 신중의 뒷모습에 대고 문도가 소리쳤다.
“야! 임신중! 내일 뭐할 거야?”
‘개새끼, 이름 크게 부르지 말라니까’ 신중은 잠깐 멈췄다 다시 멀어졌다.
“내일 전화할게!” 문도는 멀어져 가는 신중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거울 속 문도의 얼굴에도 가느다란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그런 느낌이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다. 거울 속 얼굴에 잔주름이 늘어났다 사라진다. 문도는 티셔츠를 걷어 올려 홀쭉해진 배를 내려보고 입을 삐죽인다. 순간 구토증이 몰려오고 홀쭉했던 배가 꿀렁이며 커진다. 목구멍으로 신물이 올라오고 다시 내려간다. 주황색 전구가 깜박인다. 하얀 칫솔 끝에 치약을 묻혀 누런 이를 닦자 구토증이 더 심해지고 혓바닥 안쪽 깊숙한 곳에 이물감이 느껴진다. 우웩. 누런 치약 거품과 뻘건 물을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우웩. 세면대에 흥건한 분홍빛 물에 작고 푸르른 나뭇잎 하나가 반짝인다.
태양은 중천에 떠 빛나고 있다.
“문도야”
아버지의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문도의 이불 앞에 멈춰서 그의 반응을 기다리고 앉았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리고 돌아 누운 문도의 잎에서 한숨이 빠져나왔다.
“문도야, 나와봐라” 이불 앞에 앉아있던 목소리는 기어코 문도의 이불을 흔들었다.
힘겨운 마음으로 이불을 젖히며 뒤통수를 긁적이는 문도는 석상 같은 아버지 앞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식탁에 두 팔을 괴고 앉은 아버지 앞에는 어김없이 커피 잔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다. 그래도 잠을 잘 주무시는 걸 보면 문도의 숙면 역시 유전적 결과에 틀림없었다.
“앉아봐” 아버지의 시선이 문도의 대갈통을 뚫어버릴 것 같았다.
“…” 앞으로 푹 꼬꾸라진 문도의 고개는 그 정도의 공격은 가볍게 튕겨 낼 수 있었다.
“아들아. 이제 뭐라도 해야 되지 않겠니?”
“……” 문도의 머리는 텅텅 비어있어 꾸며낼 어떤 이야깃거리도 만들지 못했다.
“아버지가 너 학교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아무 소리 안 했다. 알지? 난 우리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니까” 기름 낀 문도의 정수리에 반사된 햇빛이 아버지의 눈을 찔렀다.
“근데 이게 뭐니. 밤낮 누워만 있고. 지켜보는 데도 한계가 있어.”
“죄송해요...”
“문도야. 하고 싶은 거라도 찾아보는 게 어떻겠니?”
하고 싶은 거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문도는 생각했다.
“그래, 알았다. 그리고 좀, 아침에 일어나서 밥도 챙겨 먹고 나가서 운동도 하고 그래. 맨날 집에만 누워있는다고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
“네…”
“그래, 알았다. 아버지가 지켜볼 거다. 문도야, 시간을 그냥 이렇게 보내면 안 돼. 세상이 얼마나 치열한데, 다들 살아남으려고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데. 이건 아니야.. 문도야. 이러면 안 돼. 아버지도 지금은 이러고 있지만 너 알잖니.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그 개자식들만 아니었으면…”
개작식들이 등장했으니 이야기가 곧 끝날 것이다. 아버지의 이야기 끝에는 항상 개자식들이 등장했지만 그 개자식들의 이야기에 대해 문도는 잘 모른다. 아버지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문도의 어린 시절 아버지는 부재의 상태로 존재했다. 아버지는 일만 하며 살았다. 그리고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오신 그 날 이후로 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탕!’
불꽃을 튀기며 총구를 빠져나오는 총알이 빠르게 회전한다. 총알은 순식간에 문도의 목구멍을 뚫고 대갈통을 갉아낸다. 사방에 피가 튀고 끈적이는 불투명한 액체가 방바닥을 흥건히 적시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초에 불과하다. 권총 하나만 있다면 삶은 너무나 간단할 것이다.
문도는 조용히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와 방문을 닫고 문을 잠갔다.
컴퓨터를 켜고 이어폰을 꼈다. 이어폰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문도의 왼 손에 휴지가 들려 있다.
뭉게구름이 세로로 자리 잡은 서울 하늘 아래, 고교 야구 결승전 중계가 한창이었다. 2:2 점수의 팽팽한 경기. 서울고 에이스 투수가 마운드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긴장과 공포에 찬 투수의 얼굴이 연신 카메라에 클로즈업됐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 막지 못하면 경기는 끝이다. 9회 말 투아웃, 주자는 1,3루. 막는다면 연장에 돌입하고 안타 하나면 경기는 끝난다. 반사된 하면 안의 앳된 투수의 얼굴이 문도의 얼굴에 겹쳤다. 2 스트라이크 3 볼 풀카운트. 투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상대 타자를 거르고 다음 타자를 맞이 할 것인가가 아니면 지금의 타자에게 전력을 다 할 것인가. 캐스터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헬멧을 고쳐 쓰고 방망이를 움켜쥔 타자의 몸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고 와인드 업
‘깡~”
머리 위로 멀리 날아가는 작고 하얀 공을 투수는 보지 않았다. 한쪽은 펄쩍펄쩍 뛰어올랐고 다른 쪽은 운동장에 주저앉았다.
마운드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는 투수 곁에 무덤덤한 표정의 감독이 말 없이 서 있었다.
TV를 끄고 문도는 신중을 동네 공원으로 불러냈다. 갈색 늘어진 티셔츠의 신중이 갈지자 걸음으로 가까워졌다.
“왜?” 신중의 얼굴은 더 홀쭉해졌고 더 늙어 보였다.
“뭐야 그…… 너 운동 좀 안 할래?” 머뭇거리던 문도의 입술이 갑자기 빠르게 움직였다.
“응? 운동? 무슨 운동? 갑자기?” 신중은 바짓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빼다 말고 문도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답답하잖아. 가볍게 캐치볼이나 하자는 거지.” 신중의 눈치를 살피는 문도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싫어. 나 야구할 줄 몰라.” 날카롭고 차가웠다.
“아니, 나도 야구할 줄 몰라. 야. 아니면 내가 던질 테니까 넌 그냥 휘두르기만 해. 하자. 신중아” 문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야. 신문도. 씨발 지금 내가 너랑 캐치볼이나 하고 있을 때라고 생각해?” 문도가 예상하지 않은 반응이다.
“…” 문도의 시선이 어느새 바닥을 향했다.
“씨발 진짜. 어이가 없네. 아이 씨발 진짜” 신중은 담배에 불을 당겼다.
“아니… 그게 아니고.” 문도의 눈이 씨벌 게 졌다.
“야 문도야.” 신중은 담배를 빨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미안하다 욕해서. 내 상황이 요즘 좀 그래. 미안하다. 너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 어느새 문도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수정이 임신했다.” 담배를 끼고 있던 신중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문도의 납작한 코가 벌렁거렸다. 신중을 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속이 매스꺼워졌다.
“우웩”
상반신이 꺾여 문도는 몸을 틀어 땅바닥에 벌건 물을 쏟아냈다.
“야! 괜찮아?” 신중은 문도의 뒤에 서서 놀란 눈으로 토사물을 보았다.
“오지 마. 괜찮아.” 문도는 오른손을 엉덩이 뒤로 길게 빼고 흔들어 보였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야, 너 어디 아픈 거야? 야, 신문도. 왜 피를 토해? 어? 저건 뭐야?” 신중의 잠깐 말을 끊었다.
“야? 저거 뭐야? 너 뭐 먹고 다니는 거야? 저거 나뭇잎이잖아. 네 입에서 나온 거,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