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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철 Jan 21. 2021

복권

로또와 연금이

'이곳에 들어오는 자여, 이제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




“다음 주 월요일에 나 안 나오면 로또 당첨된 거니까 그런 줄 알아.”

5년 지기 직장동료 석현이의 금요일 퇴근길 레퍼토리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 그의 얼굴을 마주한 지 5년이 되었다.

석현이는 작년부터 로또에 연금복권을 더했다. 로또의 한방과 연금복권이 주는 안정성까지 착취하려는 탐욕스러운 놈이다. 나의 올해 목표 중 하나는 매주 로또와 연금복권을 꾸준히 구매하는 것이다.

복권을 구매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오직 한 가지.


월요일

이번 주는 왠지 좋은 기운이 나의 주위를 맴도는 거 같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좋은 꿈을 꾼 거 같다. 23만 킬로미터를 뛴 내 차 보닛 위에 떨어진 새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거다. ‘행운’

희망과 떨림이 마음속을 하루 종일 휘젓는다. 퇴근길에 로또와 연금복권을 구입한다. 기분이 (매우) 좋다. 맥주를 마셔야겠다.


화요일

어젯밤 과음은 아니었지만 가벼운 두통이 있다. 이제 화요일이다. 굳은 마음으로 어떻게든 견뎌내야지. 점심 뷔페에 북엇국이 나왔다. 어! 뭐지? 대박인데. 그래, 이번 주다.  

기꺼운 마음으로 퇴근길 맥주 4캔에 만원을 지불한다.


수요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수요일은 ‘가족의 날’이라 모두 6시에 정시퇴근이다. 그러니 차가 막힐 수밖에. 가족의 날은 좀 더 일찍 퇴근해도 되잖아. 하지만 이것도 이번 주가 마지막이다. 엔도르핀이 생성된다. 퇴근길에 맥주 4캔을 사고 엔도르핀을 안주삼아 가볍게 두 캔만 딴다.


목요일

6시가 기다려진다. 어서 돌아가 냉장고에 붙여둔 연금복권을 확인해야 한다. 하루 종일 냉장고에 매달려 당첨만을 기다리고 있을 연금복권 다섯 장이 눈에 아른거린다. 오늘은 거대한 승리의 날이 될 것이다. 축배를 들어야 한다. 집 앞 편의점에 들러 맥주 4캔을 산다. 떨리는 마음으로 스마트폰 사진기 렌즈로 연금복권 QR코드를 스캔한다. 손이 가볍게 떨리고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아쉽게도, 낙첨되었습니다.

이 빌어먹을 세상. 맥주 4캔을 단숨에 비우고 어제 마시지 않은 2캔을 마저 딴다.

곧 마음을 다잡는다. 아직 나에겐 로또가 남아있거든.


금요일

TGIF.

‘금요일’ 마음에 안식을 가져다주는 단어. 어떤 금이 이보다 더 찬란한 빛을 발할까? 영원히 새로우며 끝없이 아름다운 단어.

맥주 4캔과 피쳐 한 통을 산다.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콧노래를 흥얼댄다.

잠옷을 입고 치킨을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캔맥주를 딴다. ‘치익’ 수줍은 쾌락의 소리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솟아오른 하이얀 맥주 거품에 수줍은 입술을 대본다. 이미 모든 꿈이 현실이 되어버린 상상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토요일

주말의 숙취는 주중의 그것과 다르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두통은 유쾌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아침 여덟 시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이런.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시고 침대에 다시 눕는다. 나의 모든 존재를 감싸안는 포근한 이불은 엄마의 뱃속 따듯한 양수와 같다. 좋아하는 팟캐스트 방송을 틀어놓고 눈을 감아본다.

토요일이다. 오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 오후 아홉 시. 손이 떨린다. 월요일 아침, 자동차 보닛위의 새똥과 화요일 점심의 북엇국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핸드폰을 종이 위에 찍힌 코드에 가져다 댄다.

‘아쉽게도, 낙첨되었습니다.

씨부럴.


일요일

극도의 우울감이 밀려온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내일 아침에 겪을 자발적 번아웃 증후군이 벌써 나를 들쑤신다. 모든 걸 묻어두고 잠을 자야겠다.

월요일

석현이의 퉁퉁부은 얼굴을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탐욕스러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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