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경 Dec 30. 2023

삶이 보내는 안내 표시

잡음이 가라앉으면 들리는 메시지들

데스 산맥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 쿠스코. P와 나눈 소중한 추억들이 많은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의 이번 여행은 엄마와 함께 있으니 그 특별함이 빛을 바란다. 한국 바라보는 남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고 딸내미 보러 먼 여정에 용기 내어준 엄마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우리는 우리만의 박자로 여행하는 묘미를 천천히 감미하고 있는 중이다.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엄마와 함께 벽난로 앞에 앉아 따듯한 불의 온기에 몸과 마음을 녹였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경청해 주었다. 평소에는 마음에 담아두었던 생각과 감정들은 난로 앞에서는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 자연스레 흘다.


대학 졸업 여부에 대해 엄마가 여쭤보셨다. 나는 차근히 대학에 관해 오랜 시간 동안 (때로는 힘들게) 고민해 온 나의 생각을 나누었다. 나는 배움을 원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은 삶의 지혜임을; 지금 자연에서 배운 것들이 나에게는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깊은 경험선사하고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고려해야 하는 현실적인 요소, 특히 P와의 거리, 콜롬비아의 집과 비자, 비용과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이른 시간 새벽에 일어나 어젯밤에 나눈 이야기를 되새겨 보았다. 가족이 나에게 바라는 기대, 충족해야 하는 관계의 책임, 사회가 정한 성공의 잣대들.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소리 중 내 마음이 하는 이야기가 진정으로 듣고 싶어졌다. 그 소리가 어디서 나나 보았더니 가슴에서 울림이 느껴졌다. 배움의 끈을 이어가는 데에 있어서 가슴이 움직임을 느꼈고, 마음공부를 통해 얻은 경험을 교육이라는 시스템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공부를 이어나가는 과정을 지혜롭게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던 중, 전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었던 것에서 메시지를 전달받은 듯하였다. 나는 많은 나라를 지나쳐 갔지만, 나의 짐이 쌓여있는 곳은 현재 한국과 콜롬비아, 그리고 대학교를 다녔던 호주에 있다. 한국은 가족이 있는 모국이니 나의 짐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콜롬비아도 지금 살고 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호주는 원래 계획은 여행 후 졸업할 생각에 짐을 놓고 온 것이다. 실제의 짐이 내 마음속 짐을 상징하는 것이 오늘에서야 하나의 표시로 다가왔다. 기대감, 두려움, 걱정 사이 내가 아등바등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음 졸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흐름에 따라 삶이 주는 메시지를 들으라고 조언해 주는 것처럼, 마음과 현실에서의 짐을 해결해야 할 시간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누구 때문에 하고, 누구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아닌,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실천해 가는 과정에서 삶의 숨겨진 안내 표시는 마음의 힘을 실어준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쿠스코에서는 몸과 마음이 열려있음을 느낀다. 흰 구름 아래 Sacred Valley (신성계곡)에서 나에게 맞는 속도와 리듬에 맞추어 그 흐름에 몸을 맡겨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를 맞이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