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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따라가는 사람 Aug 12. 2022

칼럼|교육은 한 세대의 전체 삶을 디자인해야 한다

교육 정책이 우물에 빠진 날

임명 전부터 말도 탈도 많던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결국 경질성 자진사퇴로 임명된 지 한 달 여 만에 자리를 떠났다. 5일 만에 사퇴한 예전 기록보다는 길지만, 한 달만에 사퇴했다는 것은 분명 불명예이다. 우리나라에서 첫 손꼽히는 대학교의 교수가 본업이니 앞으로 학교에 복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겠지만, 이번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가지 논란 - 음주운전에 논문 중복게재, 제자와 학과 조교들을 대상으로 한 갑질 제보 등등 - 때문에 당분간은 민망한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명 직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좋은 평가나 호의적인 기사 없이 여권과 야권 모두에게 공격당했다는 점은 매우 치명적이다. 본인은 정책으로 평가받겠다고 호기롭게 취임 포부를 밝혔지만, 결국 졸속 정책이 낙마의 결정타가 되었으니 이 또한 뭐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필자는 이제 겨우 이 일을 업으로 삼은 지 7년여를 지나고 있는 아직은 신참 교수이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필자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를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교육과 교육정책의 차이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대학교수는 크게 세 가지의 역할이 강조된다. 첫 번째는 역시 강의와 학생 지도이다. 교수의 본분은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가르치고 제자들이 앞길을 스스로 열어갈 수 있도록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역할을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연구하고 공부한 것을 모으고 검증과 증명을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이론과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둘째는 학교 내에서의 일이다. 흔히 말하는 보직이라는 것인데, 필자는 아직 보직을 맡은 경험은 없어서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다(가능하다면 맡고 싶지 않다...). 어쨌든 이 역할은 학교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 역시 학생들이 대학 내에서 보다 많은 혜택을 받도록 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셋째, 학교 외에서의 일이다. 학회 활동에서부터 연구과제의 수행, 그리고 공공과 민간기관을 대상으로 강연이나 컨설팅, 조언, 평가 등을 하는 활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필자는 이 역할도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다음 세대들을 위한 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학회 활동과 연구과제 수행을 통해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야 하고, 공공과 민간 기관과 협력함으로써 내 제자뿐 아니라 다음 세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필자가 훌륭한 교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필자는 아직도 배울 것,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이 남아있는, 말 그대로 부족한 교수이다. 그래서 더욱 이 세 가지 활동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가 능력이 출중한 교수라면 이 세 가지 활동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된다. 결국 교육은 한 세대를 책임지고 키워내서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충분히 자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교육정책이라는 것은 이들 새로운 세대에 대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말 그대로 세대를 관통할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 성과관리나 목표 달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분야라 이 말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교사, 교수, 그리고 모든 가르치는 직업에 부여된 책임은 새롭게 성장하는 한 세대에게 도움을 주고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이 브런치의 필명이 길을 따라가는 사람인 이유도 이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한 세대에게 도움을 주려면 그 도움은 즉흥적이어서는 안 된다. 세종대왕께서 하나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신하들과 논쟁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윽박질러가면서 준비하고, 여기에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있을까 고치고 또 고쳤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이다. 교육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 앞에서 보고할 정도였다면 분명히 타당한 논리와 근거가 있었어야 하고, 그 논리와 근거에 혹시 허점은 없는지 공론화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낙마의 결정타가 된 그 문제는 단순히 학령의 조정이 아니라 그에 따른 모든 교육 정책을 바꿔야 하는 문제였고, 한 세대의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는 문제였으며, 수십 년 동안 공들여 쌓고 다듬고 또 바꿔가면서 많은 전문가와 교육 일선의 담당자, 교사, 그리고 행정 전문가 등등 많은 사람들이 헌신한 결과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궁금하다. 이제는 전 장관이 된 그분은 정말 이런 것을 몰랐던 것일까? 혹시 알면서도 무리하게 대통령의 코드에 맞추거나 내 실력을 보여주지라는 불필요한 욕심을 부렸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지난 한 달여는 교육이 우물에 빠졌던 한 달이다. 이제 교육을 다시 우물에서 끄집어내어 다시 심호흡을 시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한 세대 전체를 디자인할 수 있는 장관이 인선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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