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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 Dec 11. 2022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달리던 두 발 자전거에 내린 사람이 다시 올라타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처럼

써지지 않는 글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글은 쓰는 게 아니라 긷어 올리는 거구나.

긷어 올리려면 솟아나는 샘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 샘물은 아직 거기 있을까

그 샘물은 아직 흐르고 있을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첫 마음이 있었다.

무엇이 되고 싶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싶은 마음은 한치도 없었다.


시작은 이러했다.

함께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삶을 나누고 말씀을 나누던 친한 언니들 세분이 지난 7년여의 시간 동안 연달아 돌아가셨다. 비실비실 거리던 나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고 에너지 넘치고 꿈도 많던 언니들이었는데. 마음의 병으로, 육신의 병으로 크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스러지는 모습을 보며, 사람 일은 고작 일 년 앞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게 뭔지 아직 인지하기도 힘든 나이에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들을 보며 나는 두려워졌다. '내가 만약 지금 죽는다면 내 아이들은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까? 한 사람으로서의 엄마를 알지 못한다면, 과연 내 아이들은 진정 엄마를 갖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엄마 이전의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아이들에게 기록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소원이 내가 글을 쓰기로 용기를 냈던 이유이자 순전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떨리는 한걸음을 내디뎠을 때, 하나님은 맥락 없이 흩어져 있던 내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 주셨다. 그리고 활시위를 벗어나 날아가는 화살처럼, 나 혼자서는 닿을 수 없었던 많은 곳들에 가 닿게 해 주셨다.


신기하고 황홀했다.

배가 불렀고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내 글은 거기서 멈췄다.



"요즘은 왜 글을 안 쓰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프로젝트가 생겨서요"

"지금 먼저 해야 되는 일이 있어서요"라고 했는데

사실은.

사실은 글이 써지지 않는 마음이었던 거다.


나로.

내 계획으로. 가득 차서

글이 스며들 마음이 없는 삶.






푸르스름한 새벽,

불씨를 살려내 보려 마른 숨을 후후 불어대는 구부정한 노인처럼 잔뜩 웅크리고 앉아 기도를 한다.


하나님

저 글 쓰게 해 주세요

글이 써지게 해 주세요

저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당신은 제 입에 할 말을 넣어 주셨잖아요. 


저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은,

글로 인해 확장될 수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멈추어 서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단 하나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를 하며

당신이 하실 영원을 바라봅니다.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단지 생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긷어내듯

흐르게만 해주시면 긷어 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말씀하신다.

"윤승아

나는 너여야만 하니까

나는 너를 통해 일할 자신 있으니까
너는 첫 마음만 기억하렴"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을 때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글이 써지는 마음.

글이 흘러넘치는 마음이 되고 싶다.


오래도록 나로 가득 차서

떠오르지 않았던 글의 우물에

처음 양동이를 내려보듯

덜거덕 덜거덕

투박하고 촌스러운 글을

다시, 한번. 써 내려가 본다.


글이 써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에게는 하나의 지표.

내 마음이 얼마나 목마른가

내 마음이 얼마나 그분과 연결되어 있나

내 안에 아직 긷어 올릴 샘물이 있나.

한 없이 무기력한 존재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나.


글이 써지는 마음은

이렇게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 간다.


그 이정표를 붙잡고 사는 삶.

이것이 나의 글 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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