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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 Feb 28. 2023

미치는 것도 타이밍이다

The distance between Asbury and Aruba


우리는 상황이 어디까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아야 우리 마음의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 얼마만큼 갈망해야지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던져버릴 마음이 들까? 내 마음의 갈망을 위해 난 어디까지 미쳐볼 수 있을까?


How far do you need to be pushed in order to find out what's truly in your heart?



Aruba 이미지 출처: Google Image


원래 계획은 이랬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이후 처음으로 휴양지로의 여행계획을 잡아 놓았고, 목적지는 캐리비언의 지상낙원이라는 섬, Aruba였다. 가장 춥고 우울한 보스턴의 2월 방학에 맞춰 오직 이 여행만을 바라보며 길고 긴 겨울을 버티는 중이었고, 드디어 출발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출발은 20일 월요일 아침. 하지만 나는 그로부터 며칠 전,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듣게 된다.


16일(목): "윤승, 그 소식 들었어? 지금 애즈버리 대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말이야!"

애즈버리 대학교 (Asbury University)는 미국 켄터키에 위치한 Wilmore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대학교이다. 어렴풋이 이름만 알고 있는 학교에서 지금 몇십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 역사책에서만 보아오던 - 부흥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 좀만 일찍 알았어도 가는 건데. 마침 다음주가 봄방학이라 딱 타이밍인데... 지금 여행 안 가고 거기 간다고 하면 다 미쳤다고 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내 손은 이미 비행기표를 검색하고 있었다. '미치는 것도 타이밍인데. 미친 인풋이 있어야 미친 아웃풋이 있는 거잖아.' 이런 말도 안 되는 마음이 들며, 유튜브로 그곳의 현장중계를 보는 내내 '우와. 저런 일이 있구나. 저 사람들은 좋겠다' 같은 남일이 아니라 '이건 내가 가야 하는 거야. 이건 내 일이야'하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너무 임박해서 캔슬도 안 되는 가족여행을 앞두고 이런 미친 짓을 할 수는 없는 거였다.


17일(금): 또 다른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윤승아, 그 소식 들었어? Asbury Revival 말이야!" (그래. 나도 알아. 나도 안다고. 내가 거기 가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멀리 있는 켄터키에 아는 사람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고, 가서 지낼 곳도 없는 - 한마디로 logistically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근처 고든콘웰 신학교에 교수님으로 계시는 (딱 한번 뵙고 전혀 친하지도 않은) 분께 그야말로 철면피를 깔고 연락을 드렸다. "제가 여기를 꼭 가야 하는데 혹시 그곳 신학교에 연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실까요?" 그분의 대답은 "아쉽지만 없네요. 하지만 그곳 웹사이트에서 교수진(faculty)중 한 명을 찾아 연락을 해보세요"였다. 아이고. 무작정 어떻게 아무 faculty에게 다짜고짜 연락해서 내가 가야 하는데 도와달라고 말할까. 아닌가 보다 하고 마음을 접었다 (그 와중에 계속 비행기표 검색ㅋㅋ)


18일(토): Aruba에 가는 짐을 싸다가 문득 몇 달 동안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facebook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근데 놀랍게도 내 피드에 제일 먼저 올라온 포스팅이 4-5년 전에 연락이 끊겼던 친구 J의 포스팅이었다. J는 10년 전 우리가 처음 보스턴에 왔을 때 교회 청년부에서 양육을 해줬던 친한 동생이었는데 그 친구가 연락이 끊긴 지난 몇 년 동안 교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근데 그 교수(faculty)가 된 곳이 바로 (이 와중에 말도 안 되게) 애즈버리 대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포스팅에는 그녀의 집 바로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Asbury Revival에 대한 감격이 적혀 있었다. 아니 분명 어제 그곳의 faculty를 못 찾아서 마음을 접었는데 이 무슨!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녀는 말했다. "언니, 지금 당장 와요! 제가 지금 사는 곳이 그 채플 (부흥의 현장)에서 걸어서 2분 걸리는 교수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저 이제까지 항상 방하나짜리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방도 2개예요! 그리고 원래는 이사 나가야 하는 거였는데 5월로 연장됐어요! 이게 다 언니가 여기 오라는 뜻인가 봐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는 그녀의 환영에 감사와 동시에 이제는 정말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알았어. 나 그럼 갈게. 근데 일단 남편이랑 상의해 보고 허락받아야 하니까 기도해 줘!"


Asbury Revival 이미지출처: Google Image


나에게는 시간이 20일(월)-23일(목)밖에 없었는데, 월요일 비행기티켓을 보니 가능한 시간이 없었다. 가려면 19일 오후 비행기밖에 없었는데, 남편한테 처음 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18일 토요일 밤 11시였다. "여보. 내가 지금 하려는 얘기가 얼마나 미친 얘기인지 잘 알아. 우리는 월요일 아침에 Aruba 행 비행기를 타야 하잖아. 근데 내가 바로 내일 오후에 켄터키를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할 거 같아. 정말 미안하지만 나 한 번만 보내주면 안 될까? 자기 혼자 아이들 데리고 Aruba 갈 수 있겠어? 알아. 미친 거 알아. 근데 내가 원래 평소에 많이 미친 인간은 아닌 거 알지? 그만큼 간절해서 그래. 휴가는 매년 갈 수 있지만, 이건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잖아. 내가 여기 간다고 내 인생이 뭐 엄청 드라마틱하게 바뀌고 그런 걸 기대하는 건 아니야. 그냥 나는 그 임재를. 그 공간을. 그 사건을 내 두 눈으로 한 번만 보고 싶어. 나 올해 마흔이잖아. 마흔 살 생일선물로 나 보내주면 안 될까."


지난 며칠 동안의 자초지종과 운명적으로 J와 연락이 닿은 이야기,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내 마음의 갈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남편의 표정은 당연히 말없음표... 한참 말이 없다가 그는 말했다. "다녀와. 내가 애들 데리고 Aruba 다녀올게." 그리고는 내 친구 J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는 연락까지 해놓았다. (흐엉 ㅠㅠ) 토요일 자정이었다.


19일(일): 아침 일찍 당일날 오후에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교회 끝나자마자 바로 공항에 가야 하므로 짐가방을 얼른 싸고, J가 사 오라고 했던 (켄터키에는 없는) 파리바게트 빵들까지 바리바리 사서 가방에 고이고이 넣었다. 예배 끝나고 공항으로 혼자 달려가던 길이 꿈만 같았다. 진짜 가는 건가? 진짜? 너무 좋다. 너무 감사하다- 하며 발이 땅에 안 닿는 기분으로 항공사 체크인하는 곳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체크인을 하려고 데스크에 갔더니 "잘못된 비행기표다"라는 거다. 분명 19일 출발-23일 컴백 예정으로 끊어놓은 티켓의 날짜가 26일 출발-28일 컴백이라는 전혀 엉뚱한 날짜로 바뀌어 있었다. 몇 번이나 확인하고 티켓팅을 했는데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너 이래도 갈 거야?'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나도 이 미친 짓을 왜 하는지 솔직히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거기 왜 가고 싶은 건지, 왜 가야 하는 건지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음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That's my  ball. 저 공은 내 공이야."


타자가 친 공이 하늘 높이 떴을 때 외야수는 저 공은 자기가 잡을 공임을 직감적으로 안다. 그리고 온몸을 날려 저 공을 반드시 잡을 것이라는 것도. 내가 온갖 수군거림과 무리수를 뒤로 하고 켄터키로 몸을 날렸을 때는, 사실 왜 가야 하는지 논리적인 이유는 댈 수 없지만, 'That's my ball' 저 공은 나를 향해 날아오는 공이고 난 저 공을 잡아야 한다는 직감이 전부였다. 그저 남얘기처럼 바라만 볼 수는 없었다.


공항 의자에 앉아 항공사에 다시 전화를 걸어봤더니 (원래는 없다고 했던) 월요일 새벽 5:30 비행기가 있다고 했다.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그 비행기표로 바꾸고는 꿈인지 생신지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20일(월): 새벽 3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찍 잠에서 깼다. 그런데 J로부터 메시지가 와있었다. "언니, 여기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고 대학이랑 타운에서 더 이상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총장님이 월요일 이후부터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집회(public access)를 갑자기 끝내신대요. 언니 오셔도 못 들어가실 거 같아요." 이건 또 뭔가? 왜 이렇게까지 막히는 걸까? 내 마음이 너무 앞서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던 걸까 - 근데 J에게 연결이 된 상황적 인도는 나에게는 yes라는 메시지였는데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걸까 - 순간 혼란스러웠다. 그 찰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 드리기 위해 모리아산까지 가는 며칠의 여정이었다. 결국 이삭을 번제로 드리게 되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이 모리아산까지 가는 동안 그의 마음에 끊임없이 일어났을 번뇌와 순종의 반복 - 또 그 시간 동안 깨닫게 된 그의 마음의 진심과 그가 진정 갈망하는 것에 대한 확증 - 그 갈망을 하나님은 가장 기쁜 제사로 받으셨다는 것.  나 또한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깊은 목마름과 갈망을 하나님 앞에 꺼내놓고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도 하나님은 이미 기쁜 예배받으셨다는 마음에 평안이 들었다. 그 길로 Asbury로 가는 겨울짐을 다 풀고 Aruba로 가는 여름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오후 3시. Aruba에 도착했다. 이곳은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에메랄드 빛 바다. 넘치는 음식들과 신나는 음악. 걱정근심 하나 없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평안함으로 왔고, 이 아름다움이 감동적이었지만, 내 안에 질문들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1. 하나님은 왜 막으셨을까? 25세 이하는 예배에 참석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이후 여행계획을 취소한 건데, 유튜브 실시간 현황을 보면 어른들의 모습도 많이 보여서 더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 저들은 되는데 저는 왜 아니었나요?라는 쓰디쓴 마음.

2. 하나님이 막으신 게 아니라면, 내가 더 press in 했었어야 했는데 결국 믿음으로 더 밀고 나가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해버리고 만 걸까? 내가 더 끝까지 붙들었어야 했나? 나는 왜 이러는 걸까?라는 자책의 마음.


사진 출처: 바닷가에서 엄청 심각한 윤승


이런 마음에 Aruba에 있는 내내 낮이고 저녁이고 바닷가를 거닐며 지겹게 질문에 질문을 거듭할 때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신 것들이 있다:

1. We have to seek God, not the experience. 내가 갈망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 자체이지 어떤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2. If God is there, He is also here. If my heart is right with God, I am at the right place. 그곳에 계신 하나님은 이곳에도 계신다.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옳다면, 어디건 그곳이 맞는 곳이다.

3. 그런데 내 마음의 중심은 정말 올바른 곳에 있었나? 내 안에 영적 시기심이나 영적 경쟁심의 뿌리가 드러난 계기가 아닌가? 내 안에 믿음을 증명해 내야 한다는 자기 증명/인정에 대한 욕구가 있지는 않았나? 결론은 그렇다, 분명 있었다-라는 부끄러운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몰아쳤던 그 당시에는 내 안에 갈망이 너무 커서 이것저것 두들겨볼 겨를이 없었지만, 이렇게 동떨어져 생각해 보니 양파껍질 벗겨지듯 내 안에 가장 깊은 곳에 그러한 (여전한) 인정욕구/증명욕구가 있었다는 것이 조명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곳에 보내시지 않음으로써 날 보호해 주신 거고 이 모든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고 인도하고 계셨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드디어 감사가 터졌다).

4. "윤승아, 네가 맘에 안 드는 상황에서도. Am I still your King?"

5. God always gives the best.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믿음이 결국은 이긴다. 이 며칠의 시간 동안 원수는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다, "저들은 가 있는데 너는 못 갔네? 네가 있을 자리는 또 빼앗겼네? 네가 누릴 은혜를 또 놓쳤네? 너는 또 배제되었다, 그지? 더 밀고 갔었어야지, 또 중간에 포기해 버렸네?"

이럴 때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윤승아, 나는 너의 마음을 알아. 너의 원함을 알아. 그리고 그 갈망을 내가 분명히 채워줄 거야. 나는 너에게 가장 좋은 것만을 허락해 주는 아빠라는 걸 잊지 말고 꼭 붙들렴. 나는 너를 보호하고, 인도하고, 네가 구한 것보다 언제나 넘치게 부어준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해."




누구 보라고 이렇게 구구절절 긴 글을 올리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직 소화하는 중이다. 하지만 영화 같았던 지난 일주일은 나에게 내 안에 겹겹이 쌓인 마음들을 여러 갈래로 드러낸 사건이었고, 이 글은 우선적으로 나를 위해 - 내 안에 주셨던 갈망을 잊지 않고 그 약속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 쓴 글이다. 이 무슨 광신도적 행보냐고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두렵지 않다. 우리는 안 그런 척 하지만, 다들 무엇인가는 광신하며 살고 있으니까. 돈을 광신하든, 자녀교육을 광신하든, 커리어를 광신하든, 스스로를 광신하든. 광신하고 갈망하는 대상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뿐이다.


속력이 날 때 액셀을 더 세게 밟고 미치게 달려 나가 돌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속력이 오를 때 발을 딱 떼어 버리고 '여기까지.'라고 멈추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겁쟁이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그 안전한 사랑 안에서 달려보고 싶다.

With the right heart. With the right fuel.



• Soli Deo Glo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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