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중 은행들의 남은 수명은?
*본 내용은 <뱅크 4.0> 의 내용을 발췌하여 구성했습니다.
(금융 교육이 없는) 7차 교육과정을 통해 성장한 나의 유년시절 금융 서비스는 "은행뿐"이었다. 비롯 나뿐만 아니라, 한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융'하면 은행을 가장 먼저 떠올렸고, 금융 이슈가 생기면 은행 창구에 앉아 은행원의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이상 전처럼 은행과 은행원에 의존하지 않는다. 내 계좌 잔액이 궁금하면 토스/네이버 페이/카카오페이와 같은 PFM(Personal Fainance Management) 서비스를 켜보고, 자산 증식 방법이 궁금하면 유튜브나 포털을 통해 탐색한다. 심지어, 은행의 상품을 사용하려고 할 때조차, 은행원에게 물어보기보다 검색창을 검색하거나 AI 추천 서비스를 활용한다.
은행을 사용하는 행태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은행의 수명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예측하는 학자 및 기업들도 생겼다. 미국의 정보 기술 연구 및 자문 회사인 가트너(Gartner)에서는 2030년에, 심지어 금융계 미래 학자 브렛 킹은 2025년에 대부분의 은행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금융의 절대강자였던 은행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추락했을까?
첫째,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금융 정보의 비대칭이 해소되었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까지, 금융업 종사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은 금융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그나마 일상에서 가까운 금융 서비스가 은행이었으며, 귀찮긴 하지만 은행 지점에 가면 전문가(은행원)의 진단과 해결책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내가 한 은행을 자주 방문하고, 해당 은행의 상품을 많이 사용할수록 '등급'이 높은 고객이 되어 특혜까지 받을 수 있었으니, 한 은행의 충성고객이 되는 것이 나의 자산을 지키고 증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금융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금융 이슈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한 은행의 여러 상품을 사용하는 것보다, 다양한 은행에서 최적의 상품들만 골라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임을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 동시에, 은행원의 상품 추천은 '나의 금융 현황'이 아닌 '은행 실적'에 최적화되어있으며, 은행원은 은행 상품 전문가일 뿐 금융 전문가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금융 전문가라는 신뢰를 잃었고, 금융 상품 제조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둘째, 은행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플랫폼이 등장했다. 저명한 금융 미래 학자 브렛 킹(뱅크 4.0의 저자에 따르면, 은행이 제공하는 뱅킹 서비스의 핵심 효용은 가치의 저장(투자를 포함하여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 화폐 이동(돈을 안전하게 옮기는 능력), 신용 접근(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능력)이다. 은행이 탄생한 중세시대에 3가지 핵심 효용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은행뿐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서 빅테크/핀테크/네오뱅크를 포함한 다양한 금융 플랫폼들이 은행의 핵심 효용을 대체할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대체된 핵심 효용은 화폐의 이동이었다. 2014년에 출시한 토스의 간편 송금이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당시 모바일로 송금은 은행 앱에서 복잡한 공인인증서로만 할 수 있었는데, 토스에서는 이를 터치 몇 번의 간단한 과정으로 축소시키면서 사람들은 은행이 아닌 곳에서 화폐의 이동을 경험했다. 토스가 만든 금융 혁신에 힘 얻어 금융 법규들이 변화하면서,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쿠페이 등 빅테크/핀테크의 페이 서비스에 가치(화폐)를 저장하고, 나아가 카카오 뱅크와 같은 네오뱅크에서 신용 접근이 가능해졌다. 법적인 문제로 인해 여전히 은행 계좌가 필요하긴 하지만, 은행은 고유했던 뱅킹 효용을 잃었다.
셋째, 사람들의 뱅킹 행태가 변화했다. 다양한 은행의 상품을 활용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얻은 사람들은 더 이상 한 은행에 충성을 받치지 않는다. 모바일의 사용으로 시간과 노력 등의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은 점점 더 은행 지점을 방문하지 않는다. 빅테크/핀테크/네오뱅크가 제공하는 빠르고 쉬운 뱅킹 서비스를 사용해본 사람들은 점점 더 은행 앱을 사용하지 않는다. 혹자는 이를 MZ세대의 부상으로 인한 은행 사용자 세대의 변화라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간편하고 편리한 뱅킹을 찾는 시니어 세대의 증가를 고려하면(기사), 전반적인 뱅킹 행태가 변화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은 여전히 과거의 뱅킹에 머물러있다. 많은 은행들이 모바일 앱을 통해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는 기존 은행 서류를 디지털화한 것에 불과하다. 은행 앱의 어려운 용어, 수많은 중간 단계, 복잡한 서비스 및 기능 구성 등은 은행의 상품 및 구조를 자세히 아는 행원이나 관련 지식이 높은 사용자만이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빅테크/핀테크/네오뱅크와 같은 새로운 금융 플랫폼들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뱅킹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은행은 과거의 뱅킹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것이 은행의 추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브렛 킹은 2025년쯤에는 다음의 조언을 무시한 시중 은행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1. 기존 은행의 관습이 아닌, 뱅킹의 핵심 효용이 담긴 디지털 서비스를 기획하라.
2. AI, Voice interaction, Data Anlysis 등과 같은 기술 베이스 핀테크 회사들과 협력하다.
(은행들이 이제부터 기술에 투자해도, 기존의 핀테크 회사들을 따라가기 힘들다.)
3. 기존의 규제를 벗어나, 테스트베드/샌드박스 등으로 새로운 뱅킹 서비스에 대한 경험치를 늘려라.
4. CTO를 영입하여, 디지털 뱅킹 중심으로 은행 문화를 변화시켜라.
브렛 킹의 조언과 예측을 대한민국 시중 은행에 대입해보자. 새로운 금융 플랫폼들의 혁신이 시작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행 관행 중심인 은행 앱, 다양한 핀테크 회사들과 협력하기보다 자체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뉴스 기사, CTO보다 기존 은행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은행장이 되는 분위기 등을 고려하면, 수명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쉽지 않은 자본의 이동, 은행이라는 금융 기관에 대한 신뢰, 기존 은행 뱅킹을 선호하는 시니어층 등을 고려하면 당장 2025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은행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것을 은행만 모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