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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킴 Jul 29. 2021

브런치는 나의 대나무숲

밤을 태워 울며 쓰다




못다한 이야기는 병이 된다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의 회고록에서 읽었던 일화이다. 목사님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술만 마셨다 하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런데도 그 아내는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밥을 정성껏 지어 아저씨 앞에 놓았다. 그 모습을 목격한 그 목사님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 아내에게 자신을 때리는 남편이 밉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남편이 술만 마시지 않으면 착한 사람이라며 남편을 측은히 여겼다. 속사정이 너무 궁금했던 목사님은 어느 날, 그 아저씨에게 왜 멀쩡한 아내를 그렇게 때리느냐 물었다. 아저씨는 억울한 이야기가 마음에 쌓여 화병이 되었는데 술만 마시면 그것이 올라와서 주체를 못해 다른 인격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목사님은 좋은 일 한번 하자는 생각에 그 아저씨의 울화병을 만든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아저씨의 이야기는 밤 늦은 시간이 되었는데도 겨우 6.25 전쟁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당시는 80년대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하튼, 아직도 할 이야기는 많이 남아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우고 나서야 이야기를 끝낸 아저씨는 그제서야 긴 한숨을 내 쉬며 드디어 할 이야기를 모두 끝마쳤다며 좋아라 했다. 살면서 그 누구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연 많은 아저씨의 이야기를 견딘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늘 못다한 이야기는 아저씨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 아저씨는 목사님 덕분에 한 맺힌 이야기를 다 끝마칠 수 있었다. 이후로는 다행히도 술 마시는 일도 아내를 때리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에는, 나도 그 아저씨처럼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목까지 차오른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 혹은 어딘가에는 반드시 풀어내야 될 것만 같았다.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더라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흔하다 못해 식상하기까지 한 이혼과 사업 실패로 얼룩진 이야기와 늦은 나이에 시작한 이민생활의 애환도 누군가에게는 털어놓아야만 끊어질 듯 한껏 당겨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바쁜 세상에 누가 진득하니 내 이야기를 들어줄까? 꽃노래도 세번 반복하면 지겨워진다는데, 하물며 깨지고 넘어진 이야기는 말해 뭐하랴?


밤을 새워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밤을 태워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연말 즈음, 블로그를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편을 올리고 나니, 누군가가 요즘엔 글 쓰는 플랫폼이 따로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브런치를 만났다.




밤을 태워 울며 쓰다


많이 쓰고 싶었고 많이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글을 쓰는 일은 생각만큼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일주일에 한 편을 올리는 것도 힘겨웠다. 너무 오랫동안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것만 같았다.


새벽마다 이 곳에 앉아 글을 쓴다


처음엔 정신없이, 그저 마음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집중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20여편의 글을 완성했다. 조각으로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모아 한 편의 글로 지어내면서 꽉 막힌 듯했던 가슴이 좀 뚫리는 느낌이었다.


우울증과 나의 병증에 대해 쓸 때는 온 몸을 쥐어짜듯 이야기를 뽑아냈다. 돌아가신 엄마를 추억하는 글은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여러 날을 울었다.


나의 아들들, 그 아이들이 내 삶에 수놓은 것들을 쓸 때는 ‘엄마’로 산다는 것의 무게를 다시 돌아보게도 되었다. 다소 중첩되고 때론 추상적인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나의 마음속의 희미한 목소리에 닿으려 노력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과거 청산을 한번은 해야 했던 것이었을까? 쥐어짜고 뱉어낸 것 같은 20여편의 글들로 급한 불은 끄고 나니, 내쉬고 들이쉬는 숨이 좀 가벼워진다. 살 것 같다.




고마운 곳, 고마운 사람들


고맙게도 브런치에는 친절한 귀를 가진 이들이 많다. 주저리 주저리 긴 이야기에도 타박을 주지 않는다. 내 마음만 앞서서 투박하게 외쳐대는 소리에도 따뜻한 격려로 화답해 준다. 단언하건대, 혼자 글을 썼다면 이만큼 오지 못했을 것이다. 쉬이 나오지 않으려는 이야기들과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에 중도에 포기했을 공산이 매우 크다.


이 곳 브런치는 그렇게 나에게 훌륭한 대나무 숲이 되어 주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채근하는 법 없이 조용히 한 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래서 그동안 내 속에서 억눌려 있던 이야기들이 풀려날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 그동안 내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과 좋은 글쓰기로 영감을 주신 많은 작가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더불어, 좋은 글 친구 브런치에게도 고맙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형체도 소리도 없이 저 뱃속 깊은 곳에 침잠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 남은 이야기들을 글로 써내는 일은 나의 오랜 과거와 새로운 미래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긴장 넘치는 버성김이 될 것이다. 계속 글을 쓰는 행위만이 그 이야기에 길을 터주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바글바글 모여 있는 친절한 마음들이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도록 독려하며 나의 분투와 성장을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줄 것이기에, 서두르지 않고 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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