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쟁이는 교환학생 (18): 끝
6개월 전 파리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만 해도 이 기간에 결론이 있을 것 같았다.
예시)
1. 두 번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며 터득한 여유
2. 끝은 또 다른 시작: 충분한 휴식이 다시 출발할 힘을 줬다
3. 전 세계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알게 된 진정한 인류애의 의미
셋 중에 하나의 주제, 또 이들 말고도 이 선물 같은 기간이 준 교훈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은 쉽겠지만 완전히 솔직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매끄럽거나 유쾌하지 않아도 솔직한 후기를 남기고 싶다.
사실 여행이 그렇고 추억이 그렇고 사는 게 그렇다.
2월에 스키를 타다가 넘어지는 탓에 윗입술이 찢어져서, 옴짝달싹 못한 채 알프스 산맥에 쌓인 눈에 선명하게 붉은 피를 뱉었다. 상처를 꿰매기 위해 응급실에서 투여한 약 때문에 파리로 돌아가는 길 내내 심한 멀미와 두통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제 혀 끝으로 상처 자리를 홀짝여도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매끈하다.
기억에 남은 건 끝없는 흰색의 장관, 샬레에서 홀짝였던 달콤한 쇼콜라쇼, 언덕을 가로지를 때 내 시원하게 얼굴을 스쳤던 바람의 감각!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목욕이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의 온도로 물을 받고 소금과 오일을 풀었다. 수면 위로 눈만 내놓고 내 몸을 관찰했다.
많이 다치고, 늙고, 솔직히 좀 못생겨졌다.
스페인에서 매일 4만보 이상 걸었던 탓인지, 허벅지 근육이 절로 갈라진다.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딱딱해졌다.
가슴에는 선명한 비키니 자국이 남았다. 위아래로 다른 인종의 피부 같았다. 남프랑스의 지중해에서 해수욕을 하며 피부가 탄 탓이다.
오른쪽 팔과 손등, 그리고 양쪽 무릎에 난 자잘한 상처가 좀처럼 없어지지를 않는다. 유럽 10개국+을 돌아다니며 이고 지고 다니던 짐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남긴 흔적이다.
6개월은 애매한 시간이다.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적당히 흐려진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 차곡히 정리해 둔 멋진 순간들은 분명 달콤했지만 사실 그 외 90%의 노출되지 않은 시간에는 주로 그저 평온했다.
평온하지 않을 때에는 긴장도 많이 했다.
막막하거나 외로운 기분에 가끔은 울기도 했다.
파리도 그렇다.
그리고 아마 어디든, 누구든 모두 그렇지 않을까?
몽생미셸의 야경, 한국에는 십 년에 한 번 들어올까 말까 한 작품들로 가득 찬 미술관들, 거리의 악상들도 당연히 파리의 일부지만, 난 모두가 보지는 못할 파리도 알게 됐다.
Place des Vosages의 잔디 위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아버지를 봤다.
선거철, 이민자에 강경한 태도를 가진 극보수정당인 마리 르펜의 지지자들이 내게 보내는 묘한 눈빛도 봤다.
센느 강 아래로 다리를 대롱대롱, 편의점 샐러드를 먹으면서 독서하는 숏컷 여자도 봤다.
1호선에서 13호선으로 갈아타는 Champes-Elysees Clemenceau 역에 내릴 때마다 지나치는, 그리고 그럴 때마다 동전 통을 내게 흔드는 노숙자와 그녀의 네 살배기 딸도 봤다.
밤늦게 귀가하며 캔 스프레이 페인트로 벽에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그래피티를 남기는, 키 크고 마른 남성도 봤다.
티 나게 술 취한 척을 하며 옆자리 남자아이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는, 코 주변이 주근깨로 덮인 친구도 봤다.
유럽으로 이사했다고 뭔가 답을 얻거나,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나는 조금 더 느린 사람이 됐고, 그런 내게 우리 동네가 더 예뻐졌다.
교촌치킨의 야외 테라스에서 소맥을 말고 치킨을 뜯으며 한탄하는 삼십 대 직장인 친구 무리를 봤다.
아침부터 손을 잡고 청계천을 따라 산책하는 노부부도 봤다.
동대문 앞의 골목에서 가방이니, 향수니 하는 잡동사니를 파는 상인들도 봤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돌아오니 왠지 모르게 더 나이가 든 것 같은 우리 부모님을 봤다.
벌써 파리가 그리운 것처럼 지금 내가 사는 이 순간도 뼈저리게 그리워질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치열하게 산다는 건,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정확히 파악하고 솔직하게 느끼는 것이다.
파리를 떠나기 며칠 전, Bon marche 내의 서점에서 우연히 장자를 조금 읽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많았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학교 도서관에서 장자를 대출했다.
옛날의 진인은 삶을 기뻐할 줄 몰랐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몰랐다. 이 세상에 나옴을 기뻐하지 않았고 다른 세상으로 돌아감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무심히 왔다가 무심히 갈 뿐이었다. 시작된 곳을 잊지 않으면서도 끝나는 곳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생명을 받아 태어나서는 즐겁게 살다가 때가 되어서는 잊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잠깐 왔던 달콤함은 항상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어떻게 생겼을지 예상도 못했던 허전함이 자리한다.
즐거움이 없었다면, 괴로움도 없었을 텐데.
그런데 또 괴로운 적이 없었다면, 즐거운 줄도 모르겠지.
내게 잠깐이라도 와 준 선물 같은 삶에 감사하다.
비겁해지지 않을 거고, 겁내지 않을 거다.
새로운 모험을 떠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