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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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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카 Braka Oct 25. 2021

일단 버티기

끝이 어딘진 모르겠지만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문장은 하나의 절대적인 정답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나는 빠르지 않은 사람이다. 처음 한글을 배우고 쓰기 시작했을 때도, 영어를 배울 때도, 어떤 공부를 할 때에도 나는 눈에 뜨일 만큼 빠르게 실력이 늘거나 성적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느렸다. 내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조금 늦었구나를 인식했을 때쯤엔 친구들은 이미 나를 가로질러 저만치 앞에 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성적에 대해서 인식을 하기 시작했던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 때부터는 다른 친구들과 나를 무의식적으로도 많이 비교했던 것 같다. 기억 속에 흐릿하지만 오래도록 남아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 반 영어 선생님은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으신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다. 선생님 특유의 말투 때문에 재미있기도 했고 선생님의 따뜻한 인상이 참 좋았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어떤 일로 교무실에 갔었는데 마침 선생님과 딱 마주쳤다. 선생님께서는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이번 시험 성적이 썩 좋진 않았다며,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조금 민망함과 어색함,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영어 성적을 잘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그렇게 특별한 기억도 아니었고 그냥 그렇게 웃으면서 얼버무렸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가끔 그때 기억이 난다.


영어를 싫어하는 나였지만 유학의 꿈은 그때부터 확고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배짱이 대단했다. 영어는 못하지만 대학은 미국으로 가겠다니. 두둑한 배짱 덕분에 지금 상상만 하던 미국 유학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생각하면 두둑한 배짱이 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어 공부의 시작이 늦은 만큼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진짜 영어공부를 기초부터 탄탄하게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원어민 선생님과 편하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아직 기초를 공부하는 나와 비교가 되었다. 아무리 공부해도 첫 단계에서 진전이 없어 보이는 나 자신을 보며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절대 빠른 사람이 아니기에, 안 그래도 늦게 시작했는데 실력이 빠르게 늘지도 않았다.


내 실력은 아주 천천히 차근차근 쌓였다. 진짜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포기하고 싶다 하는 고비를 한번 넘기고 나면 실력이 조금 늘어있었다. 또 공부를 해도 내 실력은  왜 그대로일까 하며 한 학기를 넘기고 되돌아보면 한 단계가 훌쩍 성장해 있었다. 그 상황 속에 있을 때에는 눈에 띄게 성장하지 않는 내 실력에 지쳤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고 멈춰있는 것은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조금이지만 꾸준히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빠르지 않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발전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나였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버티는 것이 답이라는 나름의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버티는 중이다. 힘들고 피곤하지만 무조건 버티고 있다. 유학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오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역시 상상만 하는 것과 실제로 살아내는 것은 다른 것 같다. 내가 지금 버티는 것에 가장 힘든 부분은 다른 외부적인 요인보다도 내 안에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동시에 성적을 잘 받고, 새로운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또 멀리 온 만큼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 잘 해내고 싶은데 어떤 날에는 다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부담으로 다가와서 나를 무겁게 짓누른다.


때로는 어두운 감정이 나를 가두고 한없이 갉아먹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내가 유학을 와서, 혼자라서 힘든 게 아니라 매번 내가 어떤 곳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종종 느꼈던 감정이다.


예전에는 이 감정을 회피하고 싶었다. 항상 밝고 바른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길 바랬고, 나 자신에게도 나는 이런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한 가지 깨달았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다양하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다양한 만큼 한 사람 안에는 다양한 모습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햇빛처럼 밝은 모습이 있다면, 어떨 때는 비 오는 날처럼 축 처질 때도 있고, 새벽의 잔잔한 공기처럼 차분하고 생각이 많은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안의 이러한 모습들을 인정하기로 했다. 힘들 때는 힘듦을 부정하지 않고 그만큼 푹 쉬고, 또 사소한 것에 갑자기 행복해졌다면 그 행복을 충분히 누리기로 했다. 무작정 모든 것을 무시하고 이 상황을 버티겠다! 가 아니라, 매번 새롭게 발견하는 나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며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다.




요즘 혼자 외롭거나 지치는 마음이 들 때 하는 하는 생각이 있다.


"내가! 18시간 비행기 타고!   나라까지 와서 혼자! 밥도  챙겨 먹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장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에 축쳐저있다가도 조금이나마 힘이 난다.


이 유학의 끝에 어떤 결과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있는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매일 최선의 한걸음을 내딛고 있다.


학교에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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