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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카 Braka Dec 26. 2021

뉴욕에서 보내는 연말

미국 유학생의 겨울방학 뉴욕 여행(1)

드디어 종강을 했다.

미국에서 맞았던 첫 학기가 마무리된 것이다.


종강이 다가오면 몸도 마음도 훨씬 여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파이널 시험과 에세이, 포트폴리오 등등 마무리할 일이 산더미라 더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시카고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앞으로 학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과, 조금만 있으면 겨울방학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꼬박꼬박 운동도 가고, 과제도 늦지 않게 제출했다.


돌아보면 한 학기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을 겪고 감정의 변화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분명 힘들었지만 그 모든 상황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나는 처음 미국에 도착했던 나보다 한층 더 성장해 있다. 끝이 다가오니 끝까지 잘 버텨낸 나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 항상 옆에서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 사람들 한 분 한 분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이번 겨울은 나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겨울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보내는 겨울이자, 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져서 연말을 맞이하는 겨울이자,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미국 여행을 떠난 겨울이다.


미국 대학은 한국 대학과 다르게 겨울방학이 짧다. 약 한 달 정도. 그렇다 보니 겨울방학에 한국으로 돌아가려 들이는 비용에 비해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어떻게든 이곳이 지내는 기간 동안 충분이 그 시간들을 누리고 싶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짧은 겨울방학이 미국 여행을 하기에 알맞은 타이밍이라고 느껴졌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가장 먼저 뉴욕이 떠올랐다.

 

나에게 뉴욕은 너무나 멀고도 또 가까운 도시였다. 어렸을 때부터 미국 영화를 볼 때면 대부분의 배경이 뉴욕이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한창 빠져있었던 미국 시트콤 '프렌즈'는 뉴욕의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한 센트럴파크의 이름을 딴 카페가 배경이다. 영화나 드라마, 또는 유튜브로 자주 접했던 터라 한 번도 방문은 해본 적 없지만 마음만은 이미 뉴욕에 가있었던 적이 많았다. 


너무 익숙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영화로 접하는 뉴욕은 항상 반짝였고, 자유로운 사람들과 특유의 분위기가 내 세상의 분위기와는 또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욕으로 여행을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내가 진짜 뉴욕에 간다는 것이 잘 실감 나지 않았다.


이번 뉴욕 여행은 나의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했다. 나와 친구 모두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기도 하고, 둘 다 겨울방학에 한국에 들어가지 않게 되어 타이밍이 딱 맞았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나와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 특히 중국 연수기간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주말같이 자유시간이 주어질 때면 항상 둘이서 카메라와 가방을 챙겨서 베이징 이곳저곳을 다녔다. 핸드폰도, 차도 없는 상황에서 둘이 여행 다니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을 구석구석 잘도 찾아다녔다. 나중에 성인이 되면 해외여행도 꼭 같이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그렇게 상상만 했던 우리의 첫 해외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뉴욕의 첫인상은 상상했던 것보다 특별하진 않았던 것 같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지 한 학기 정도가 되니 길거리 풍경이나 건물의 모습이 눈에 꽤 익숙했다. 그렇게 나름 익숙하게 느껴지는 거리를 지나가면서 저 멀리 보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그 옆을 둘러싼 건물 숲의 모습을 봤을 때 그제야 내가 뉴욕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면서 느꼈던 특이점은 그래피티가 여기저기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현재 지내고 있는 밀워키에는 이 정도로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뉴욕은 건물마다 그래피티 천국이었다. 물론 관광객인 나에게는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걸어 다닐 때에도 볼거리가 많아서 좋았지만 정작 저 건물의 주인은 좋아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뉴욕에 도착해 처음으로 향했던 곳은 첼시마켓(Chelsea Market)이다. 처음 첼시마켓 이름을  들었을 때에는 마켓이라길래 야외에 이런저런 상점이 모여있는 장소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제법 큰 건물 안에 다양한 상점들이 입점해 있는 곳이었다.


마켓 안에는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예쁘게 꾸며져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인해 연말 특유의 따뜻하고 설레는 분위기와 복작복작 지나가는 사람들이 첼시마켓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첼시마켓(Chelsea Market)


우리는 먼저 첼시마켓에서도 유명하다는 로스타코(Los Tacos No. 1) 찾았다. 내가 시킨 메뉴는 치킨 타코와 포크 퀘사디아였는데, 옥수수 토르티아 안에 속이 알차고 여러 가지 양념과 고기가 잘 어우러져서 개인적으로 정말 맛있게 먹었다. 


로스타코(Los Tacos No. 1)


타코를 맛있게 먹고 난 후 한 손에는 따뜻한 커피를 들고 팻 위치 베이커리(Fat Witch Bakery)를 찾았다. 이곳도 로스타코 만큼 한국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브라우니 집이라고 해서 가기 전부터 매우 기대가 되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팻 위치 베이커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마녀 캐릭터를 볼 수 있는데, 대충 찍찍 그어서 그린 것 같은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여러 가지 브라우니 중에 우리는 Matcha baby Witch와 German Chocolate Witch 시켰다. 


오리지널 사이즈인 초콜릿 브라우니는 무겁고 맛도 진한 반면에 미니 사이즈로 나온 녹차 브라우니는 오리지널 사이즈보다 가볍고 꾸덕함도 덜했다. 둘 다 맛있었지만 나는 꾸덕하고 진한 오리지널 사이즈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달달한 브라우니와 함께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역시 환상의 조합이었다.


팻 위치 베이커리(Fat Witch Bakery)


첼시마켓을 둘러보고 우리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이라인(The High Line)으로 향했다. 하이라인은 뉴욕의 건물 숲 사이로 나 있는 선형 공원이다. 걸으면서 건물도 구경하고 사진 찍기에도 딱 좋아서 우리도 하이라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해지는 뉴욕의 도심을 구경했다. 더 이상 쓰지 않는 철도를 재활용하여 만든 공원이라고 하던데, 지상보다 길이 높이 떠있어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도시 곳곳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이라인(The High Line)


하이라인을 따라서 걷다 보면 뉴욕의 명소 중 하나인 베슬(Vessel)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전에 사진으로 보고 특이하게 생겨서 한번 꼭 방문해 보고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 특이해 보였다. 전체적인 모양은 교과서에서 봤던 빗살무늬토기 같기도 하고, 건물 자체가 벽 없이 계단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더더욱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찾아보니 이러한 특이점 때문에 안전사고가 최근에 잇따라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안에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조금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저녁이 되니 베슬 외벽을 따라 장식되어있는 빛 장식 덕분에 건물 자체가 하나의 대형 트리 같아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베슬(Vessel)




뉴욕의 연말은 상상했던 것처럼 반짝거렸다.


여기저기 지나는 상점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였고, 상점 안에서 울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연말을 더욱 연말스럽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 가지 느낀 것은 뉴욕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내가 평소에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가고 밥을 먹고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뉴욕의 사람들도 각자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뉴욕이라는 차이점 말고는 영화만큼 특별하거나 엄청난 일은 당연하게도 매일 일어나지 않는 듯 보였다. 


당연한 것이지만 뉴욕에 와서 직접 보고 경험을 하니 역시 더 특별하고 더 행복한 삶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면서 그 속에서 힘듦이 있고, 또 사소한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었다. 


뉴욕에서 보내는 연말이 먼 훗날의 나에게도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길. 학교로 돌아가고 내 삶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곳에서 여행자로서 느낄 수 있는 설렘을 맘껏 누리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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