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편입하고 2학기가 지났다.
두 학기를 보내며 내 나름대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단연 '전공'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대학교 3학년에 전과를 했다.
나는 지금 학교로 편입을 준비하면서 경제학과를 희망했고, 편입 후에도 경제학과로 전공선언을 하기 위해 어드바이저와 상의 후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편입 후 처음으로 들었던 전공 수업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이다. 그 수업을 들으며 난생처음으로 R(통계를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을 배웠다. 프로그래밍은 물론 통계도 아직 미숙했던 나에겐 매 수업시간이 고통이었다. 수업은 교수님이 수업 전 과제로 내주시는 pre-lecture를 듣고, 수업에서는 pre-lecture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를 푸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교수님이 내주시는 과제를 아무리 열심히 듣고 노트 테이킹을 해도 매 수업 마지막으로 남는 학생은 나였다. 마지막으로 남는다는 의미가 '잘해서 더 질문하겠다'가 아닌 '수업시간 안에 문제를 다 풀지 못해서 다른 학생들은 다 가고 혼자 남았다'였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뚝딱뚝딱 잘 해내는 학생들 사이에서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고, 매 수업 마지막에 엉성한 답안지와 함께 교수님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부끄러웠다. 그래도 나에게는 '뭐든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수업을 끝까지 수강했다.
그러나 내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최종적으로 그 수업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한 학기 동안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기에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점수를 보는 순간 말 그대로 '현타'가 왔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일에 능숙하지 못해도 열심히 하다 보면 돌아봤을 때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학교 수업은 '최종 성적'으로 내가 얼마나 성장했나 알 수 있었는데, 이번의 경우에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처럼 점수가 나오지 않아 당황했다.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경제학과에 의문을 가지게 된 순간이었다.
막연하게 낮은 점수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 과를 바꾸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시간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점수가 낮게 나온다면 앞으로의 수업들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내 주변에는 경제학과를 전공하려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 친구들과 수업이나 진로에 대한 이야기할 때면 괜히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 과를 전공해서 과와 관련된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며 나는 이 과를 전공해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내 자신에게 의문이 생겼다.
학기 말에는 경제학과로 전공을 선언하기 위해서 필수로 들어야 하는 프레젠테이션에도 참석했다. 학과 관련된 정보를 정리한 파일을 받아 앉아 한창 발표를 듣고 있는데 경제 어드바이저 한 분이 '학과 관련 직업'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하셨다. 그분이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며 나눠주신 직업 리스트를 쭉 훑어보는데 문득, 이 리스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단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자꾸만 과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전과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나 선뜻 ‘나 전과할 거야!'하고 말하기엔 나는 이미 3학년 2학기를 지나고 있었다. 이 말은 즉슨 졸업까지 앞으로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전과를 했을 때 졸업이 얼마나 미뤄지게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과로 전과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그 시점부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내가 하면서 행복한 일이 뭐지?
내가 어떤 상황에도 몰입할 수 있는 일이 뭐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지?
내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공부가 뭘까?
나는 나름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막상 큰 변화(전과)를 고려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니 내가 나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질 만큼 판단하기 어려웠다.
다양한 전공의 어드바이저와 만나 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학기의 반을 고민하며 보내다 보니 어느 정도 생각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듣고 있던 수업 중 두 개가 Asian American Studies 수업이었다. 아시안 아메리칸, 예를 들면 한국계 미국인과 같이 미국에서 미국 국적으로 살고 있는 다양한 인종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수업이었다.
교양 학점을 채우기 위해서 듣게 된 수업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 수업에 꽤나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배운 적 없는 새로운 개념과 문화를 배우는 것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뭔가를 외워도 쉽게 까먹는 내가 이 수업에서 배운 개념만큼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했다.
읽어야 하는 과제 분량도, 페이퍼를 적는 횟수도 다른 수업보다 많았기에 힘들었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 이 학문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안 아메리칸 수업들을 계기로 이 쪽 관련된 전공에 대해 찾아보았다. 여러 과를 고민하면서 내 관심은 '국제학과'로 향하게 되었다.
국제학과는 내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경제를 포함해서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문화, 국제 관계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과였다. 내가 받았던 학점도 전공학점과 겹치는 게 많아서 전과를 해도 내년 봄학기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국제학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다.
전과를 하고 난 후 지금 나는 매우 만족스럽다. 내가 배우고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요즘 새삼 깨닫고 있다. 공부가 어렵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나름 재미있게 잘하고 있다. 또 이 공부로 졸업 후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고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있다.
누군가 전과를 고민하며 이 글을 읽는다면 나는 먼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전과가 항상 답이 될 순 없다. 전과를 한다고 한들, 바꾼 과가 또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공부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고 주변 다양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선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정말 사람의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고 지칠 때도 많지만, 또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궁금하고 더욱 기대되는 것 같다. 미래의 나를 기대하며 나는 오늘의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