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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Aug 17. 2023

첫 유럽여행은 원래 그래

이제 대학을 졸업하기 앞둔, 나보다 한참 어린 친한 동생이

생애 처음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MZ의 짜릿한 후기를 기대했으나

런던, 파리, 베네치아, 피렌체 중에서 런던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잉? 그럴 리가.

파리에는 에펠탑과 센강이 있고 피렌체에는 두오모와 명품이 즐비한데 

물가도 비싸고 가장 점잖은 런던이 원탑인 이유는 청결해서라고 한다. 

오래전 그곳을 다녀온 내 기억에도 파리나 이탈리아 쪽보다는 런던이 쾌적했던 것 같긴 하다. 

거기에 하나 더, 

뒤로 갈수록 점점 체력저하가 왔단다. 고로 첫 번째 방문도시인 런던에서의 기억이 아름다워졌나 보다. 


체력저하라는 말에 타임머신을 탄 듯 급속도로 나의 첫 유럽배낭여행의 기억이 살아났다. 

28박 29일의 유럽 10개국 여행. 


그렇다. 이것은 엄청난 유행이었으나 사실 체력적으로 무언가를 즐기기가 상당히 어려운 스케줄이었다. 

가성비가 좋아서 아마도 이런 스케줄이 나왔겠지?

가봐야 할 곳은 많고 나라 당 머무르는 시간은 짧고, 시차는 존재하는 데다가 

집 떠난 지 일주일이 되어가면서 인간이 피폐해지기 시작한다. 

어리숙한 빨래에 행색은 점점 꼬질꼬질 해지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의 향연.

국경을 넘을 때마다 긴장도 하고 

소매치기 안 당하려면 배에 찬 전대를 지키기 위해 정신도 바짝 차려야 하는 여러 상황 속에서 

태연하게 여행을 즐기려면 강심장이거나 여행이 익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첫 유럽여행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이런 것이구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들이 마냥 짜릿하고 능숙할 수는 없는 법이구나. 

부모님이 보내주신 비싼 여행 후에 왜 나는 유럽여행이 행복하지가 않았을까 자책하기도 했다. 

첫 방문 도시였던 런던에서 나는 첫날밤 울었다. 집에 가고 싶어. 엄마 보고 싶어. 


이제 나는 조만간 유럽을 세 번째 방문하게 된다. 

유명한 장소들은 대충 예전에 훑은 적이 있고 

그곳을 모두 다 다시 가볼 생각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할 수 있는 여행을 계획한다. 

맛있는 음식점을 검색하고 좋은 동선의 숙소를 우선으로 둔다. 

시차와 체력을 모두 고려한 일정으로 여행동안 건강하려고 한다. 


첫 번째 유럽여행을 갔던 시절, 공중전화박스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유럽여행 책자를 들고, 도착한 나라마다 기차역에서 지도를 구해서 들고 다녔다. 

어쩐지 여행이 돈 쓴 거에 비해 즐겁지가 않더라. 고됨의 연속.


그래서 한참 어린 동생이 하는 새로운 첫 경험들이 그렇게 기특하고 격려해 주고 싶다. 

그것은 참 고되기도 했지만 설레기도 했고 

돈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기도 했다.

혹시라도 주춤하고 움츠려 들려하면 기를 팍 펴줘야지.

끊임없는 첫 도전을 다시금 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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