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화창한 날들도 분명 있었는데 그날도 역시 날이 흐렸다.
늦가을, 해가 없는 날.
어느새 안 지도 1년이 넘은 아이 친구 엄마들이 토요일 오전 공동육아에 나도 불러줬다.
그 아파트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방이 있었는데 나는 그 앞에 있는 다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놀이방에서 함께 놀자고 나와 아이를 불러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냥 당연히 얼마든지 가서 놀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왠지 그 아파트의 놀이방을 남의 아파트의 내가 쓴다는 미안함에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네 잔 샀다. 평소에는 늘 라테를 마시지만 그날따라 두통도 조금 있고 당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아마도 엄마들과 수다를 떨면 당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도- 바닐라 라테를 주문했다.
그 커피를 마시고 나는 된통 체했다. 2시간쯤 놀다가 집에 가려고 하는데 일어나자마자 속이 완전 뒤집어졌다. '아냐. 괜찮을 거야. 지금 먹은 게 없는데 모.'
한참 논 아이들이 배가 고플 것 같아 근처 돈가스 집으로 가려던 길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한 걸음 한 걸음 태연하게 옮겨 우리 무리가 향하는 곳으로 함께 갔다.
음식 냄새를 맡자 메슥거리는 속이 정말
"저 화장실 좀." 문장도 끝맺을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가서 변기와 마주하여 커피를 다 토해냈지만 두통은 더욱 심해지고 이제는 태연하고자 하는 의지조차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집에는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두웠던 그날의 오전 날씨와 을씨년스럽게 불던 바람을 헤치고 잘 지내보려고 사간 애쓰던 커피들과 화장실 한 칸이 기억 속에 남은 장면이다.
내가 대학생 때부터 한참을 살아온 동네였다. 우리 엄마와 우리 강아지와 함께 했던 날들엔 늘 햇빛이 드리웠는데 나와 아이와 남편이 함께 한 날들엔 해가 나질 않는 기억뿐이다.
결혼 전 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 남편과의 갈등, 아이 유치원 엄마들에게 느끼는 자격지심, 누군가로 부터 받은 호의를 갚아야만 한다는 강박, 그런 것들이 먹구름처럼 늘 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