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ESTA Mar 30. 2021

두 번째 사고

멘탈 KO패

2018년 6월 16일

 

"아빠 나는 분명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지금 이렇게 있지 않아도 되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는 게 너무 분하고 속상하지만 그래도 나는 좀 더 약자에 대해 돌아보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 라고 얘기한 바로 다음 날은 오빠네 둘째 돌잔치가 있어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준비 하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여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나는 불쑥 음주운전 교통사고 났을 때 혼자 끙끙 앓았던 그 잠깐의 기억과 공포가 내 동생이 겪는다고 생각하니까 끔찍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 중 하나는 내가 겪 아픔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똑같이 겪는 게 아닐까 싶다. 부랴부랴 차키와 옷을 챙겨입고 청심원을 사러 돌아다녔다. 이상하리만치 그날만큼은 가장 가까운 동네에 내가 알고 있던 24시간 하는 곳부터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아갔던 곳까지 모두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알고야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 갈 생각도 하지 않았던 약국으로 차를 돌렸다. 거의 도시 절반을 다 돌아다닌 것 같다.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다. 빨리 동생을 진정시키고 언니가 옆에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고 싶었을 뿐. 시간도 체력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기에 거의 우리 동네에서 반대쪽에 있는 동네에 약국에 다다라 청심원 두 개를 샀다. 그리고 도로 동생 집으로 곧장 달려갔다. 시간이 오래 걸려 연락도 안 오는 거 보니 자고 있나 싶어 조용히 문 앞에 걸어두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안도감이 흐르기도 했지만, 시간은 새벽 5시를 넘어가고 돌잔치가 12시였기에 일단 집으러 부지런히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일은 일어났다.



(심신미약자 및 임산부 어린이는 시청을 자제 부탁드립니다.)


이미 저 차가 시야에서 보이는 순간부터 내 차를 박겠구나하는 생각은 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피해보고자 저 차가 진행하는 우측 같은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기어이 쾅지지직 하는 소리가 나면서 내 차가 밀렸다. 그리곤 차를 멈춰 세웠는데 이미 정신이 나간 상황이라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그러곤 고개를 숙이고 숨이 가빠 심장이 또 터질 것 같았다. 발작이 온 것이다. 숨을 내 몰아쉬며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가해 차량이 괜찮으시냐며 문 좀 열어보라는데 나는 너무 무서워 소리를 계속 질렀다. 간신히 '가 정신적으로 좀 힘이 든다' 고 말하고 나니 가해자가 다급히 다시 자기 차로 가서 차를 멀리 주차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어떤 여자분이 조수석 쪽에 노크를 해왔다. 창문을 요만큼 열고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제가 뒤따라 오던 차거든요? 제가 다 보고 지금 경찰에 신고를 해둔 상태니까 마음 좀 추스르고 계세요"


아 경찰. 아빠한테 겨우 전화를 해서 자고 있는 아빠에게 사고 소식을 전했다. 결국 경찰이 왔고 아빠와 동생이 비슷한 무렵에 도착해서 도망치듯 달려 아빠차 뒷자석에 엎어졌다. 그나마도 운전석 쪽을 박아서 문이 잘 열리지 않는 데다 벌벌 떨리고 눈물 콧물 범벅에 숨도 못 쉬는 나를 보자 동생이 화가 났는지 문을 열어주곤 가해자에게 가려는 것을 아빠가 말렸다. 아빠 차로 미치광이처럼 걸어서 오는 길에 경찰관은 읊조리듯 이렇게 말했다.


"이거 아가씨가 속도 안 줄이고 핸들 안꺾었으면 뒤집어졌네."



오히려 그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을까. 머리가 흔들리고 토할 것 같았다. 경찰도 나의 상태가 이야기를 들을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아빠와 가해자, 경찰이 삼자 대면을 하며 이야기를 했다. 차는 레커차가 가져가고 나는 곧장 아빠와 병원에 검사를 받았다. 외상이 없었으나 그때 까지 진정이 되지 않아 덜덜 떨고 있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머리가 계속 아프냐며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검사 결과에 큰 이상이 발견되진 않았지만, 혹시 정밀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며 실금이라던가 다른 부분에서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입원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곳은 권역외상센터라 일단은 입원할 수 없어 소견서를 가지고 의사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다른 병원으로 향해 바로 입원을 했다.



시간이 거의 8시가 되어가고 있었고 나는 입원 복으로 갈아입고 차가운 입원실 침대에서 기절하듯 잠이 살짝 들었다. 그러다 문득 오빠에게 빨리 이 소식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오빠에게 약속을 못 지키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사 고소식을 전하고 오빠도 오늘은 행사 때문에 가 볼 수 없으니 마무리 되는 대로 곧장 오겠다고 했다. 그리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머릿속에 딱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혹시 지금쯤 난 죽었어야 했던 걸까? 왜 나만...


아빠가 다시 이불이랑 이것저것 챙겨서 올 동안. 떨리는 몸으로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집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건가?
그럼 죽이지 왜 자꾸 애매하게 살게 이렇게 두는 걸까?


보편적인 사람들이 듣기에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일지 모른다.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는 일이고 크게 안 다쳐 다행이고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니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제였고 분명 몇 시간 전이었다.

이전의 사고에 대해 돌아보고 다시 한 발짝 내 디뎌 보자고 다짐한 것이.

겨우 몇 시간 전이었다.

이제 나도 조금씩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조금씩 생긴 것이.





6인실. 사람이 많아 처음엔 커튼을 치고 안정제를 받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 밥을 먹었지만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씹어 넘기는 게 칼날마냥 쓰리고 아팠다. 더는 밥은 먹지 않고 병원에 14층에 옥상정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올라갔다. 시설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절대 다시는 살 수 없겠지.



작가의 이전글 말광량이에서 지박령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