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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엥 May 07. 2022

부활절 연휴에 어디 갈래

크로아티아 여행 전야

부다페스트에 살기 시작한 지 이제 두 달이 되었다. 

9시부터 5시, 대학교 초반에 한 달 반 정도 근무했던 콜센터 이후 처음으로 직장인이 되었다. 

일이 바쁘던 바쁘지 않던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일상은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렸다.

다음날의 무언가를 위해 오늘의 조금을 늘 남겨두는 느낌으로 잠에 들었다. 

깨워줄 누군가가 없는 부다페스트의 내 방에서 늦잠을 자 회사에 지각한다는 끔찍한 상황을 겪지 않으려고 매일 10시면 잠들었다. 사실 그 시간이 되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절할 것처럼 졸렸다. 


처음 입사해 작성한 계약서 위에는 올해에 맞이하게 될 몇 번의 휴일이 적혀 있었다. 

3월에 있었던 연휴는 임시 거주증이며 유럽 백신 패스며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어서 그냥저냥 집에서 보냈다. 

그때 즈음 다들 그런 서류들이 필요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혹여나 헝가리를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면 안 되니 얌전히 집에서 뜨개질이나 했다. 출근을 위해 곤란함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직장인의 삶이란 이런 걸까.


3월에는 연휴 전에 저렴한 털실을 파는 가게에 가서 알록달록한 트위드가 섞인 청록색 실을 잔뜩 샀었다. 

내 옷장에는 이제까지 없던 색깔이지만 밝은 색의 옷을 늘리는 것이 올해의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에 망설이다 골랐다. 4일의 연휴는 정말이지 짧지 않아서 쉬는 동안 스웨터 한 벌을 다 떠버렸다. 실수로 너무 커다랗게 떠서 어떻게든 수습하고자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 다 푸르고 다시 뜨는 중이다. 봄은 오는데 아직도 완성이 안되었다. 

그래서 따뜻했다가 추웠다가 해가 쨍했다가 지금은 비바람이 부는 부다페스트의 변덕스러운 봄에 조금 고마워하고 있다. 


스웨터는 완성해 놓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지오에게 줬다. 왜 인지 작게 떠진 사이즈마저도 딱 그 애를 위한 것처럼 꼭 맞았다. 물건을 줄 수 있을 때, 제 때 주는 것. 그 타이밍에 대한 연습은 내가 여행에서 얻은 스킬 중에 하나이다.



아무튼 4월의 부활절 연휴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어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교환학생으로 있던 네덜란드에서는 사방을 둘러봐도 물가 높고 사람 많은, 전통적인 '유럽여행 나라들' 밖에 없었는데 헝가리와 가까운 나라들은 생각보다 생소했다. 크로아티아, 체코,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보스니아 등 이렇다 할 만한 인상이 없고 그래서 더 궁금한 나라들 천지였다. 같이 인턴으로 온 제렁이와 함께 어디를 여행할지 고르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오스트리아였다가 그다음엔 체코였다가 슬로베니아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우리 둘이 고른 곳은 크로아티아였다. 

자매들과 함께 몇 차례 유럽여행을 다녀온 엄마가 꽤 오랫동안 이야기했던 나라가 크로아티아였기 때문일까. 

언젠가 다시 가게 되면 좋겠다고, 외국에서 한달살이를 한다면 거기가 좋겠다고. 

엄마가 그곳을 갔다 온 건 여름이라서 납작 복숭아 얘기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크로아티아에 가게 된 건 좋은데, 가깝다고 생각했던 그 나라를 플릭스 버스며 항공사 사이트에서 유로로 변환된 가격으로 마주하게 되자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가격도 비쌌다. 

사실 그 정도 교통비면 10만 원대의 항공권으로 더 멀리 나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왜인지 크로아티아에 안 간다는 선택지가 없었다. 딱히 보고 싶은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게 다 납작 복숭아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아직 복숭아가 나올 철도 아니었는데. 


연휴 직전에는 회사의 사람들이 서로와 이야기할 일이 있을 때 다들 연휴에는 뭘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제렁이랑 크로아티아에 가요. 하고 이야기를 하자 어디를 어떻게 언제 가냐며 물어보고 거긴 볼 게 없다, 거긴 너무 멀다, 차라리 여기를 가라 하는 말들이 우수수 돌아왔다. 조금 마음이 상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한 귀로 흘리면서도 나머지 한 귀로는 열심히 쏟아지는 정보들을 주워 담으며 구글맵을 오갔다. 


결국 정리된 일정은 부다페스트-자그레브-플리트비체-리예카-크르크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부다페스트-자그레브-플리트비체-자그레브-리예카-크르크-리예카-자그레브-부다페스트였지만. 

리턴 티켓을 사는 게 내심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것이 언제부터였지. 

딱 4일 만에 다시 여기로 돌아와서 다시 회사에 와야 하는 여행이라니. 

조금 구리다고 생각했고 정말 낯설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패키지여행 같은 건 '진짜'여행이 아니라고 했었지만 아무튼간에 나에게 낯선 여행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진짜 여행과 가짜 여행이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 구리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여행과 관광의 차이에 대해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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