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밥 해먹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파노 Mar 13. 2020

목화솜 탕수육, 고량주가 없어서 아쉽다.

홈런볼이 나올 줄 알았는데, 댕구알 버섯이 나왔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하나로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몇 가지를 나열하라고 하면 좀 더 쉬운데, 나는 그 몇 가지에 탕수육을 반드시 포함시킨다.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어려서부터 자주 들었다. 취미도 애늙은이 같아서 등산에 일찍 입문했다. 중년의 취미라고는 하지만 20대 중반부터 설악산과 지리산을 찾아다녔다. 취미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실제로는 상관이 있다. 20대 산악회는 없지만 50대 산악회는 지천에 널린 것이 그 반증이다. 자연스럽게 산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버지, 어머니, 삼촌, 이모 뻘이다.


 한편, 지리산, 설악산 같이 큰 국립공원에서는 산 정상에서 잠을 잘 수도 있다. 대피소가 설치되어 있어서 사전 예약을 하면 7000~10000원 정도 하는 저렴한 비용에 잠을 잘 수 있다.

 동네 뒷산이나 오르다가 지리산 종주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게 20대 중반 어느 즈음이었던 것 같다. 첫 월급으로 벙거지 모자를 샀고, 등산화를 샀다. 바람막이도 샀고, 등산용 바지도 샀다. 여름 방학 중 날을 잡아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고, 3박 4일 코스를 짰던 것 같다.

 처음 오른 지리산, 처음 해본 산에서의 숙박, 처음 해본 장거리 산행은 즐거웠다. 평생 취미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지리산 종주 마지막 날, 하산 길에 어떤 아저씨와 동행하게 되었다. 딱히 특별했던 부분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옆에 오셔서 앉으셨고, 약과를 권하시길래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먹었다. 같은 방향으로 하산하던 터라 동행했고, 대피소에 와서는 라면이나 끓여 먹고 내려가자고 하시길래 그러자고 했다. 각자의 코펠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 고량주라는 걸 먹어봤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 아저씨는 t.o.p. 커피 캔에 고량주를 담아 오셨다. 그분은 '고량주 한잔 할래?'라고 물으시더니 그 뚜껑에 한잔을 따라 주셨었다. 하산 길이라 잠시 주저하다가 홀짝 들이켰다.

 강렬했던 알코올과 독특한 향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술이라고는 맥주, 소주밖에 마셔본 게 없었는데, 고량주라는 술은 인상이 강했다. '나는 독한 술이야'라는 메시지를 입과 목에 분명하게 전했고, 향은 꽃 냄새 같기도 하고 과일 냄새 같기도 한 것이 낯선 것이었다.

 맛있었다. 술이 맛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지점이었던 것 같다. 별것 아닌 기억이지만, 내가 최초로 술에게 음식의 지위를 부여했던 날이었고, 맛있고 가성비 좋은 술을 찾아 마시기 시작한 출발점인 것으로 기억한다.


 고량주 맛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종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당시 만나던 여자 친구와 중국집에 갔다. 탕수육을 시켰고, 고량주를 시켜 먹었다. 탕수육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겠지만,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게 된 날이었다. 탕수육은 고량주와 먹을 때 궁합이 최상이라고 확신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탕수육을 해 봤다. 목화솜 탕수육이라는 게 예뻐 보여서 해 봤는데, 모양이 예쁘게 되지는 안더라. 전분 반죽으로 동그랗게 뭉치는 건 쉽지 않았고, 상당한 노력을 요했다.


 홈런볼처럼 한 입 크기의 탕수육을 예쁘장하게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당구공 만한 게 나와버렸다.

 '감자전분이라는 건 튀기면 이렇게 찐득해지는구나'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튀김옷이 너무 두꺼워서 턱이 뻐근할 정도로 씹어야만 했다.


 한 접시만 모양을 내서 튀기고 나머지는 대충 전분가루만 묻혀다 튀겼다. 이건 평소에 먹던 익숙한 그 질감이었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https://kopanobw.blogspot.com/


매거진의 이전글 체리맛 제로 코카콜라, 에그타르트, 해물 없는 짬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