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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댁민댕씨 Nov 04. 2023

아무튼, 떡볶이

하굣길에 시장을 지나오다 보니 길 끝에 자리 잡은 떡볶이 포장마차를 보고는 떡볶이와 사들고 집으로 갔다. 삼 남매였던 나는 몰래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는 먹을 수 있을 때를 기다렸다. 까맣게 잊고는 다음날 서랍을 열고는 쾌쾌해진 냄새를 풍기는 떡볶이를 꺼내 들고는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아쉬움을 쏟아낸다. 좋아한다는 이유 속에 나는 그 어릴 적부터도 식탐이 꽤 있었나 보다. 용돈으로 사들고 온 떡볶이를 동생들과는 나누고 싶지 않은 그런 음식이었나 보다. 나는 늘 말하고 곤 한다. “떡볶이는 질릴 수 없지.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질려 본 적이 없는 떡볶이.” 신이 내린 음식이니 욕심을 부리는 것도 조금은 당연한 일 아닌가, 비록 버리고 말았지만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친구는 부천역 뒤 어느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떡볶이 집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계란에 만두 두 개, 떡볶이 가득 담아 1,000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 두 눈이 흔들렸다. 그런 곳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부천역 뒷길을 걸으며 가보자고 했다. 초록색 분식집 접시 가득 담아낸 떡볶이 사이로 양념에 묻힌 군만두 두 개와 뽀얀 피부를 드러내는 계란이 눈의 띄었고, 초등학교 앞이어서 그런가 꽤 달고 고추장 양념은 희미해 보였다. 입안으로 떡볶이 하나를 집어넣고는 단돈 천 원으로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어떻게 이게 천 원이야?” 그 행복을 끊을 수 없어, 우리는 종종 그곳에서 떡볶이를 사 먹었다.


시장 앞에서 파는 접시 떡볶이, 학교 앞에서 보는 컵 떡볶이를 뒤로하고 즉석 떡볶이(즉떡)를 맛볼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비싸기도 비쌌던 즉떡에 마음이 빼앗겨 용돈 받는 날이면 일단 ‘즉떡’으로 시작한다. 하굣길 가게에 들러 어깨 가득 힘을 주고 주문을 한다. ‘오늘은 컵 떡볶이 아니고, 즉떡을 먹을 수 있는 돈이 있다고요!‘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서 끓고 있는 떡볶이와 당면 사리들을 먹다 보면 어느새 양념이 졸아들어 바닥을 보이기 직전이 된다. “이모, 여기 밥 두 개요.” 떡볶이 양념에 밥을 비벼 볶고 김가루로 마무리하고 나면 세상 다 가진 표정을 짓게 된다. 여학생 셋이 앉아 떡볶이 2인분에 밥 두 공기는 뚝딱 사라져 버린다. 덕분에 많이 걸어 다녔다. 회수권 살 돈으로 떡볶이랑 많이도 바꿔 먹었으니.


치솟는 떡볶이 값에 꽤 놀란다. 양도 예전 같진 않지만 맛도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은 위생법 때문에 학교 앞 떡볶이 가게들도 꼭 상가 안에 자리 잡은 모습이 꽤나 생소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떡볶이에 큰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놀라운 가격의 떡볶이, 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있는 곳까지 배달도 되지 않았던, 전태일 동상 앞에서 보란 듯이 줄 서서 받아 가는 사람들을 보며 다들 이 ‘매운맛’을 보겠다고 이러고 있는 일이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그 맛을 보고 나면 또 빠져나올 수 없으니 스트레스 좀 받는 날이면 “오늘 엽떡?” 하고 주의 사람들에게 말한다. 혼자는 절대 다 못 먹을 양이니 어쩔 수 없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과 있는 시간에도 떡볶이는 내 차지였다. 남편이라도 같이 있으면 또 같이 먹는 맛에 만들겠지만 혼자서는 미루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요즘은 첫째가 있어 든든하다. 덕분에 집에서 만드는 일도 늘고 있다. 어느새 이리 커서 엄마랑 떡볶이를 겸상하게 되었는지 놀라웠다. 맵다고 하면서도 같이 먹어줄 수 있는 즐거움이란. 엄마니까 느낄 수 있는 마음 중 하나가 아닐까. “엄마, 오늘 떡볶이 너무 맛있는데?” 고추장이 바뀐 걸 금세 알아차렸다. 막내들이 유치원 체험학습에서 만들어 온 고추장 맛이 좋은 것 같다. 어느덧 반도 남지 않아 좀 아쉬워지려 한다. 덕분에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었는데, 누군가의 추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떡볶이를 한 문장으로 말하라고 한다면 난 단연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을 음식‘이라 말하고 싶다. 가끔 냉동고에 봉지째 묶여있는 떡국떡을 꺼내 할머니는 떡볶이를 만들어 주셨다. 마늘맛이 강해서 반찬 같은 맛이 나곤 했는데, 떡볶이 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라서 그마저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 할머니는 맛만 본다며 선 채로 떡을 서너 점 입에 넣고는 나를 참 빤히도 바라보셨다. 그런 할머니가 이제는 세상에 없다. 어느덧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만들어주고 있는 나 역시 지긋이 아이들을 바라본다. 맵지만 맛있다고 쩝쩝거리는 아이들을 나도 그렇게 지긋이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아이들이 커가면서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음식이 되었으면 한다. ‘떡볶이’ 이게 얼마나 맛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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