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의 순간들
나는 사녀 일남의 첫째 장녀이다. 일남인 아들은 막내이자 장남이다.
우리는 세 살 터울인데 셋째와 넷째는 네 살 터울이다. 나와 막내는 띠동갑을 넘어 열세 살 차이다.
나는 동생들의 탄생의 순간들을 기억한다.
둘째인 여동생은 그 시절 재래식 화장실에서 태어났다.
산기가 있던 날 아침 소변이 마려운 엄마는 화장실을 갔다가 힘주는 바람에 그대로 똥통으로 빠져버렸다.
아침 일찍 산기가 있다는 소식에 가까이 살던 외숙모가 와 있었는데 요강에서 볼일 보라고 했지만 날도 밝은데 그러기 싫다고 엄마가 고집을 부려 화장실을 갔다가 그대로 순산을 하신 것이다.
정말 다행인 것은 똥통이 반 넘어 차 있었다 했다.
엄마의 외침소리에 외숙모가 세숫대야를 밀어 넣어 똥통에 빠진 신생아를 건져 올려 씻기고 닦이고 혹여 똥물이라도 들어갔을까 토해내게 토닥거리고 냄새나는 똥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손으로 닦아내며 다급하게 움직였을 외숙모님이 정말 대단하시고 감사하다.
동생에겐 태어나자마자 생명의 은인이 생긴 것이다.
만약에 똥통이 퍼낸 지 얼마 안 되어 깊었다면, 주위에 외숙모님이나 그 누구라도 그 순간에 없었다면 이라는 끔찍한 생각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얘기하며 얼마나 다행이었나는 한마디로 무서운 생각들을 덮었다.
태어난 장소 덕에 동생의 이름은 여자아이인데 '정용'이라고 동네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나의 고향 부산에서는 그때 화장실보다는 변소 뒷간이라고 불렀고 어른들은 정낭이라고도 했다.
정낭에서 용 났다고 그렇게 이름을 지어 주셨다. 여동생은 호랑이 띠인데..
가끔 동생이 힘들다 투정을 부리면 우리는 그런다. 너는 돈통에서 태어나 잘 살게 되어있다고.
정용이는 스스로 다시 새롭고 싶다는 개명신청 사유서를 써서 이쁜 이름으로 개명했다.
사실 동생의 특별한 탄생장소 덕에 하도 많이 들어서 환영 일까도 싶은데 시월의 따뜻한 아침햇살을 받으며 나는 두 무릎을 두 손으로 짚고 허리를 굽혀 마당 구석진 곳에 있는 화장실 앞에서 분주한 어른들을 본 듯하다.
그날 아침 날이 참 맑고 따뜻했다고 엄마가 그랬었다.
셋째는 유독 탄생의 영상이 없다.
급하게 약국으로 약사아저씨를 모시러 갔던 기억과 약심부름을 가면 '저 애 엄마도 큰일 날뻔했어'라는 걱정스린 말이 들렸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어머니들처럼 우리 엄마도 집에서 우리들을 낳으셨다.
든든한 외숙모와 이모들이 이웃에 살고 있었다.
약국에서도 처방받아 약을 탈 수 있었던 시절 칠성약국의 푸짐한 체격의 약사아저씨와 외숙모님이 다리부터 쑥 내밀었던 아가를 무사히 세상밖으로 인도하셨다고 했다.
첫째와 둘째를 힘들지 않게 낳아 방심했을 엄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래서인지 셋째와 넷째는 일 년이 더 걸려 네 살 터울인 걸까..
넷째가 태어났을 때 나는 열 살이었다.
비가 추적거리던 저녁 무렵 나와 동생들은 옆방에 있었다. 아버지는 우산을 들고 집 앞 골목에 있었다.
산통이 시작되면서 엄마는 아버지를 찾았다 안방과 문하나 사이인 옆방에서 문틈으로 진통을 겪는 엄마의 두 다리가 보였는데 엄마는 아버지를 찾았다. 열 살 꼬마가 뭘 알겠는가, 그냥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아버지를 못 들어오게 막으니 외숙모가 야단을 쳤었다. '가시나가 와 이라노.'
장남이자 막내 다섯째는 넷째와 같은 달 7월의 깊은 밤 한 시경 중학교 일 학년이었던 나는 기억에서 가까워서인지 나조차도 남동생이라 더 좋았는지 일기장에 시간까지 기록을 했었다.
사내아이라 하니 외삼촌과 아버지가 집 앞 골목에서 어깨춤을 추었다. 깊은 밤중에
'매제 이제 됐어' 하는 외삼촌의 외침이 울렸었다. 딸만 넷이어도 아들을 부러워하거나 딸 뿐이라 서운해한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아들이 그리우셨나 보았다.
그날 밤 어깨춤은 기쁨만큼 큰 엉거주춤 이었다.
아들을 바란 어른들의 그 마음을 깊이 헤아려 본다
딸 넷이 다 결혼을 하고 잠시 남동생이 방황하던 시간 엄마가 눈을 감으셨다. 갑자기..
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엄마를 절에 모셨었다.
곧 돌아온 아들은 놓친 시간을 통탄하며 엄마를 집으로 모셔와 우리는 다 함께 기일제사를 지낸다 남동생의 집에서.
우리 남매는 일남 사녀이다.
첫째인 나는 나 빼고 동생들의 탄생을 순간들을 기억한다.